보통 병원에서 장이 좋지 않다고 하면 심각한 질병은 아닐까 싶어 미리 걱정을 하게 된다. 하지만 다행히 과민성 대장증후군이 있더라도 궤양성 대장염이나 대장암 같은 병으로 진행하지는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과민성 대장증후군은 병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대장이 과민해져서 생기는 증상일 뿐이다. 내시경 검사나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해도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 일종의 ‘꾀병’에 가깝다.
문제는 소화기내과 외래를 찾는 환자의 10명 중 3명이 과민성 대장증후군으로 고생할 정도로 흔하고 많은 불편이 따른다는 점이다. 음식만 먹었다 하면 복통(특히 왼쪽 아랫배의 통증이 많은 편이다)과 변비, 설사 같은 증상이 예고 없이 나타나서 곤란하기 짝이 없다. 이 중 어느 한 가지만 나타날 수도 있고, 여러 가지가 번갈아서 나타나기도 한다. 종종 대변에 코를 풀어놓은 것 같은 점액이 섞여 나올 수도 있다.
매일 아침마다 화장실에서 끙끙대노라면 지각하기도 일쑤다. 직장인 결근사유 2위를 차지하는 원인이 과민성 대장증후군이라는 조사결과가 있을 정도이다.
원래 장이 건강하면 장의 바깥층을 형성하는 근육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음식물을 소장에서 직장을 거쳐 항문 밖으로 이동시킨다. 하지만 과민성 대장증후군을 보이는 경우에는 근육의 수축과 이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서 여러 가지 증상을 만들게 된다.
주로 어떤 사람들에게 과민성 대장증후군이 잘 나타날까. 아직까지 과민성 대장증후군의 원인은 뚜렷하게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심한 스트레스나 기름진 음식, 술, 담배, 카페인 등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운동부족, 불규칙한 식사, 패스트푸드 같은 가공식품 섭취도 한 원인이 된다. 이런 요인들은 이미 생긴 과민성 대장증후군을 더 악화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똑같이 스트레스를 받고 자극적인 음식을 섭취한다고 해서 누구나 과민성 대장증후군이 되지는 않는다. 성격적으로 사소한 일에도 스트레스를 잘 받거나 내성적인 사람, 꼼꼼해서 매사 빈틈이 없는 사람일수록 과민성 대장증후군에 걸리기 쉽다. 직장인 중에는 긴장도가 높은 업무를 맡고 있거나 시험 때문에 늘 신경이 곤두서 있는 수험생들에게 흔한 편이다. 식중독, 장염 등의 후유증으로 일시적으로 과민성 대장증후군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일단 과민성 대장증후군이 의심될 때는 대변검사나 엑스레이, 내시경 등의 검사를 통해 대장에 특별한 이상이 없는지 확인을 하는 게 좋다.
“드물게는 단순한 과민성 대장증후군이 아니라 대장암 같은 중한 질병으로 비슷한 증상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 을지대학병원 소화기내과 정성희 교수의 조언이다.
특히 △검은 변을 보거나 △변에 피가 섞여 나오는 경우 △잠에서 깰 정도로 배가 심하게 아픈 경우 △열이 나고 체중이 계속 감소하는 경우 △빈혈이나 지방변이 있을 때는 대장암이나 염증성 질환 등의 질병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증상을 보이면서 대장암 환자가 있거나 50세 이상의 연령일 때, 약을 먹어도 전혀 증상이 좋아지지 않을 때는 더욱 주의해야 한다.
이런 이상신호를 체크하기 위해서는 평소 대변의 상태를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검은 색의 음식을 먹지 않았는데도 대변이 검다면 위궤양, 용종 심하면 위암일 우려도 있다. 소화기관 위쪽에서 출혈이 있을 때는 식도, 위, 십이지장을 통과하면서 검은 색을 보이게 된다. 선명한 붉은색 또는 자주색일 때는 항문이나 대장, 직장의 이상을 의심해야 한다.
갑자기 대변이 가늘어져도 잘 살펴야 한다. 과민성 대장증후군인 경우가 많지만 대변이 가늘어지면서 피, 점액이 섞여 나올 때는 대장의 염증이나 대장암 등이 원인일 수 있다.
여러 검사 결과, 단순한 과민성 대장증후군이라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복통, 복부팽만 등이 심하고 많은 불편을 느낄 때는 보통 1~3개월 정도 약물치료를 한다. 주된 증상에 따라 쓰는 약이 조금씩 달라진다. 설사가 주증상일 때에는 지사제가 도움이 되고 변비에는 장관운동 촉진제, 복통이나 복부팽만감 등의 증상에는 항콜린제를 쓰는 것이다.
한방치료 역시 환자에 따라 치료방법이 다르다. “비장 또는 간, 담 중 어디에 원인이 있는지를 살펴서 한약과 침으로 대장, 위장의 기능을 회복시켜 주면 자연스럽게 치료된다”는 것이 미래한의원 이충순 원장의 설명이다.
만약 증상이 가벼울 때는 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신경성’이려니 하고 그대로 두다가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씩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우선 스트레스가 과도한 경우에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적절히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대장 안에서 음식물의 이동속도가 빨라지고 비정상적으로 대장운동이 활발해지기 마련이다.
이와 함께 장을 자극하는 식습관을 바꿔야 한다. 우선 술, 담배를 멀리 하면서 고지방, 고단백 식품을 줄이는 게 좋다. 예를 들어 지방은 대장운동을 더 자극하고, 단백질이 분해된 아미노산은 과민성 대장증후군 환자는 물론 정상일 경우에도 대장운동을 저하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내에서 가스를 많이 발생시키는 콩이나 커피·초콜릿처럼 카페인이 많은 식품, 우유·유제품처럼 유당이 많은 식품도 줄이는 것이 좋다. 이외에도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먹었다 하면 복통이 있거나 설사를 하는 음식이 있다면 미리미리 주의해서 먹지 않도록 한다. 사람에 따라서 밀가루 음식이나 알코올, 토마토, 옥수수, 양파, 소고기, 오트밀, 백포도주 등에 장이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이런 음식을 먹을 때는 조금씩 소량으로 여러 번 나눠서 먹는 것이 요령이다.
반면 섬유질이 많은 야채나 과일을 잘 섭취하면 대장운동이 원활해진다. 변비가 주된 증상인 경우에는 물도 많이 마시도록 한다.
과민성 대장증후군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의 배는 유난히 차가운 게 특징. 평소 배를 따뜻하게 해주면 정상적인 장의 기능을 보다 빨리 되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단전호흡이나 명상 등을 꾸준히 하면 전신의 혈액순환이 좋아져서 도움이 된다. 또한 과민성 대장증후군 환자의 8∼15%는 불안 또는 우울증세를 보이는 만큼 평소 긴장을 완화시켜 주는 것도 좋다.
나도 혹시…자가진단 |
배변습관이나 대변의 상태가 예전과 크게 달라졌다면 과민성 대장증후군인지 봐야 한다. 다음의 항목에서 세 가지 이상 해당될 때는 과민성 대장증후군을 의심해 볼 수 있다. 대변을 하루 두 번 이상 본다. 설사 또는 변비 증세가 있다. 변의를 느껴서 배변을 해도 왠지 변이 남아있는 것처럼 시원하지 않다. 방귀가 늘고 대변에 점액이 많이 섞여 있다. 헛배가 부르고 가스가 차는 등 소화가 잘 안 된다. 배에서 부글거리는 소리가 나고 사르르 아프다가도 변을 보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편해진다. 두통, 피로, 불면, 어깨 결림 같은 증상이 있다. |
건강한 장 유지 7계명 |
[1] 명상 등으로 정신적인 긴장상태나 스트레스에 익숙해지는 훈련을 한다. [2] 산보, 조깅, 등산, 빨리 걷기 등 규칙적인 운동으로 대장의 긴장을 풀어준다. [3] 지방이 많이 함유된 음식을 줄인다. [4] 야채와 과일, 해조류 등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품을 충분히 섭취한다. [5] 가능하면 카페인이 많은 커피, 콜라 그리고 알코올 섭취를 줄인다. [6] 규칙적인 배변습관을 갖는다. [7] 틈틈이 아랫배를 두 주먹으로 가볍게 두드려 준다. |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미래한의원 이충순 원장, 을지대학병원 소화기내과 정성희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