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더우면 왜 깊은 잠을 자기 힘들까. 을지대학병원 정신과 최경숙 교수는 “기온이 높으면 잠자는 동안에도 체내의 온도조절 중추가 활동을 계속해 중추신경계가 흥분한다. 따라서 몸을 자꾸만 뒤척이고 꿈을 꾸면서 깊은 수면을 취하는 렘수면이 줄어든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열대야를 건강하게 극복하는 노하우를 알아본다.
열대야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지면 우선 생체리듬이 엉망이 된다. 밤에 제대로 자지 못하니 다음날 낮에는 수시로 졸려서 힘들고, 다시 밤에는 쉬 잠이 오지 않는다. 업무에 지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집중력이 떨어져 크고 작은 사고의 위험마저 있다. 이렇게 생체리듬이 어긋나면 우리 몸의 지키는 파수꾼인 면역력이 떨어지게 된다.
열대야가 시작되면 더위와 부족한 잠 때문에 피로, 집중력 저하를 호소하는 ‘수면지연증후군’을 많이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체온 조절, 물질 대사, 수면 등에 관여하는 뇌의 시상하부가 외부의 기온 변화에 대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나타나는 증상이다. 무더위가 시작되는 첫날이나 둘째 날에 더위로 인한 사망자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열대야 기간에는 특히 심장질환이나 폐질환이 있거나 이뇨제를 복용하는 경우에는 더위가 시작될 때 체온이 지나치게 올라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자율신경계에 이상이 있는 알코올 중독자나 신경계 이상 환자, 당뇨병, 갑상선 기능항진증 등이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1 지나친 낮잠은 금물
다소 밤잠을 설치더라도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서 활동하고, 정 졸립다면 점심식사 후에 짧은 토막잠을 자면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길어도 20~30분 정도가 좋다. 이보다 긴 낮잠은 다시 밤의 숙면을 해치기 쉽다.
2 해진 후 가벼운 운동
새벽이나 해가 지고 난 저녁 시간을 이용해 20~30분 정도 자전거타기, 산책 같은 가벼운 운동을 하면 좋다. 격한 운동은 아드레날린이나 노르아드레날린 등의 호르몬을 증가시켜 흥분 상태를 만든다.
또 운동을 마치고 잠자기 전에 샤워를 할 때는 차가운 물보다는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하는 것이 긴장을 푸는 데 좋다.
3 선풍기 에어컨 ‘No’
덥다고 밤새 선풍기나 에어컨을 켜고 자는 것은 삼가야 한다. 선풍기를 켠 채 잘 때는 반드시 창문을 열고 일정한 시간만 타이머를 맞추어 둔다. 밤새 틀면 저체온증, 호흡곤란, 안면신경 마비 등을 일으킬 수 있다. 천식, 폐질환 등이 있거나 어린이, 노인이 있는 가정에서는 직접 바람을 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에어컨도 냉방병, 여름감기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잠자기 1~2시간 정도만 지나치게 낮지 않은 온도로 튼다.
4 세끼 식사가 ‘보약’
밤낮으로 계속되는 무더위에 기력을 잃지 않으려면 식사를 거르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굳이 몸에 좋다는 비싼 보양식품을 찾아다니며 먹을 필요는 없다. 특히 저녁을 거르면 공복감 때문에 숙면이 어렵다. 저녁식사를 하되 적어도 잠자기 3시간 전까지는 마친다. 더 늦은 시간에 시장할 때는 우유 한 잔 등으로 가볍게 한다. 우유가 공복감을 없애주고, 트리토판 성분이 숙면을 유도한다. 참고 참다가 자기 직전에 식사를 하면 소화를 시키느라 몸에서 열이 더 난다.
카페인이 들어간 커피나 홍차, 콜라 또는 수분이 많은 수박, 음료수는 피한다. 담배도 각성효과가 있어서 수면을 방해하고, 취침 전 시원한 맥주를 한 잔 하는 습관 역시 갈증을 유발하거나 체온을 높이기 때문에 삼가는 것이 좋다.
흔히 먹는 식품 중에서 잠을 잘 오게 하는 식품도 있다. 강남경희한방병원 이경섭 병원장은 “호박·차조기·호두 등이 숙면을 돕는 효과가 뛰어나다”고 조언했다.
이뇨작용과 함께 해독작용을 하는 호박은 삶거나 구워서 또는 죽, 즙으로 먹으면 숙면을 돕는다. 들깨와 비슷하게 생긴 차조기는 항스트레스 작용을 하는 식품이다. 차조기 20g에 물을 붓고 달여 식후나 잠자기 1시간 전에 차처럼 마시면 잠이 잘 온다. 귤껍질 20g을 함께 넣어 끓이면 신경안정 효과가 있어 더욱 좋다.
견과류 중에서는 호두를 많이 쓴다. 신경쇠약으로 인한 불면증에 껍질을 벗겨서 살짝 볶은 호두를 가루 내 매일 식후 1~2스푼씩 끓인 물에 타 마시면 된다. 불면증이 심할 때는 대추를 푹 달인 물에 으깬 호두, 쌀을 넣어 죽을 쑤어 먹으면 효과가 있다.
이경섭 병원장에 따르면 더위로 기력이 떨어진다 싶을 때는 한방차인 ‘생맥산’을 만들어 마시면 좋다. ‘맥을 샘처럼 솟게 해준다’는 생맥산은 맥문동 8g, 인삼과 오미자 각 4g, 물 600㏄를 붓고 달이면 된다. 이것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물처럼 수시로 마신다.
5 풍지혈을 자극하라
앉아서 무릎 아래에 쿠션을 댄 다음 양 다리를 쭉 뻗는다. 그런 다음 발가락을 몸 쪽으로 꺾어 10초 동안 힘을 줬다가 빼는 동작을 반복하면 숙면에 좋다. 발가락을 꺾을 때는 숨을 들이마시고, 힘을 뺄 때에는 숨을 내쉰다.
이때 뒷머리와 목덜미가 만나는 곳의 양쪽에 오목하게 파인 ‘풍지혈’이라는 경혈을 양쪽 엄지손가락으로 눌러주고, 발가락 끝에서부터 장딴지까지 부드럽게 마사지하면 더욱 잠이 잘 온다. 발바닥 중앙의 움푹 파인 곳인 용천혈을 지그시 눌러도 좋다.
만약 여러 방법을 동원해도 불면증이 오래 간다면 열대야가 원인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수면무호흡증 등이 있어도 불면증이 오기 쉽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강남경희한방병원 이경섭 병원장, 을지대학병원 정신과 최경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