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출근준비로 바빠 못 먹는 날이 대부분이고 점심도 늘 먹던 식당에서 대충 때운 직장인들에게 그나마 편안한 시간은 저녁식사. 저녁식사만 푸짐하게 먹는 데서 그치면 다행이지만 잠들기 전에 다시 뭔가를 먹어야만 한다면 문제가 있다. 자신의 건강은 물론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이른 아이들까지 야식을 찾게 되면 가족의 건강까지 위협하는 습관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야식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야식이 습관이 되면 식사 조절이 힘든 야식증후군(Night Eating Syndrome)으로 발전한다.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박용우 교수는 “야식증후군은 단순한 습관이 아닌 내분비 장애로 인한 질환”이라며 “이때는 치료가 필요한 섭식장애의 하나로 본다”고 설명했다.
만약 △하루 동안 섭취한 열량의 50% 이상을 저녁 7시 이후에 먹는다. △밤에 자다가 배가 고파서 잠을 깬 경험이 있다. △아침에 식욕이 없다. 이 세 가지 증상을 경험했다면 이미 야식증후군일 가능성이 크다.
야식을 즐기면 우선 고스란히 살로 간다. 칼로리를 곧바로 소비하지 못하고 지방으로 바뀌어 우리 몸에 쌓이기 때문이다. 잠자는 동안 분비되는 성장호르몬은 남은 칼로리를 지방으로 저장하는 작용을 강화시켜 비만을 부른다.
실제로 강북삼성병원 비만체형관리클리닉이 비만 환자들의 식습관을 조사한 결과, 폭식 습관을 가진 사람보다 야식을 즐기는 사람들이 3배가량 많은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2004년 9월부터 2005년 8월까지 비만클리닉을 처음 방문한 성인 516명을 대상으로 식생활 태도를 조사했더니 오후 7시 이후에 하루 섭취열량의 50% 이상을 섭취하는 야식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40%로 나타난 것.
이에 비해 한 번에 많은 양의 음식을 먹는 폭식습관이 있는 사람들은 조사 대상의 14%에 그쳤다. 참고로 폭식은 일정시간 동안(2시간 이내) 다른 사람이 동일한 환경에서 먹는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의 음식을 먹고, 먹는 동안 먹는 것을 조절할 수 없다고 느끼거나 먹는 양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갖는 상태를 말한다.
또 야식은 당뇨가 있는 경우에는 합병증에 걸릴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워싱턴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당뇨병 환자가 야식을 할 경우 심장병이나 신경 장애와 같은 합병증에 걸릴 확률이 2~3배 높은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야식을 먹고 소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잠자리에 들면 위와 식도의 괄약근이 열리면서 위안의 음식이 식도로 역류해 식도염이 생기기도 한다. 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상태에서 지나치게 맵거나 뜨거운 야식을 섭취하면 위궤양에 걸리기 쉽다.
야식은 또한 정상적인 생체리듬을 망가뜨린다. 야식으로 숙면을 취하지 못하면 만성피로가 나타나고 수면호르몬인 멜라토닌, 식욕억제 호르몬인 렙틴이 제대로 분비되지 못한다. 우리 몸은 호르몬의 균형이 깨지면 여러 가지 이상증세를 보이는데, 한 예로 멜라토닌이 오랜 기간 제대로 분비되지 않으면 유방암 발병률이 50% 증가한다.
야식증후군은 심하면 약물치료가 필요하지만 가벼운 경우에는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다.
“세로토닌 분비를 돕는 충분한 수면, 그리고 세로토닌의 원료가 되는 양질의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고 아침식사를 챙겨 먹으면 야식의 유혹을 물리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 박용우 교수의 조언이다.
특히 아무리 입맛이 없고 바쁘더라도 아침식사를 반드시 해서 하루 세 끼를 모두 규칙적으로 먹는 게 좋다. 가벼운 간식을 한두 번 정도 적게 먹는 것도 괜찮다. 저녁식사는 다른 끼니보다 가볍게 먹되, 먹기 위해 잠을 깰 정도라면 위에 부담이 가지 않는 수준에서 든든히 먹는 것이 오히려 낫다. 일단 저녁식사를 하고 나면 늦어도 밤 8시 이후엔 아무 것도 먹지 않고, 12시 이전에 잠자리에 드는 게 좋다.
야식을 하게 만드는 진짜 원인을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직장의 업무나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불안, 우울 등으로 야식증후군을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들은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불리는 코르티솔의 분비량이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특징을 보인다.
최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았는지 차분히 생각해보고, “그렇다”는 판단이 든다면 좋아하는 운동, 취미 등으로 스트레스를 그때그때 풀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마련하는 게 좋다.
야식을 먹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물을 마시고 심호흡을 하면서 ‘5분만’ 참아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식의 유혹을 참기 힘들다면? 또는 야근, 밤샘근무 등으로 야식을 피할 수 없다면 어떤 야식을 고르는 게 좋을까.
치킨이나 피자, 라면, 보쌈, 족발, 탕수육 등은 인기 높은 야식 메뉴들이다. 하지만 건강을 생각한다면 이런 푸짐한 고지방, 고칼로리 음식은 금물이다. 특히 조미료와 기름이 많이 들어가는 중국요리는 피해야 한다. 자장면의 경우 660㎉, 짬뽕은 540㎉, 볶음밥은 720㎉, 탕수육은 1780㎉로 고칼로리인 만큼 많게는 하루 권장 섭취량의 70%를 차지한다. 소금, 간장 등이 많이 들어간 짠 메뉴도 피한다. 수분 섭취를 늘려 부종의 원인이 된다.
대신 위장에 부담을 적게 주면서 소화흡수가 빠른 메뉴를 고르는 게 바람직하다. 지방보다는 탄수화물이 소화면에서 나은 만큼 죽, 미숫가루를 먹거나 우유, 플레인 요구르트를 마시는 것도 좋다. 부종을 없애고 기름기를 제거하는 효과가 있는 율무차를 마시거나 삶은 달걀도 부담이 적다.
식이섬유가 풍부한 과일이나 야채로 먹고 싶은 욕구를 해소해 주는 것도 좋다. 식이섬유가 풍부하면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부르고, 야식을 먹은 다음날 아침 배변도 시원하게 만들어 준다. 특히 과일은 다른 음식에 비해 인슐린을 ⅓정도만 적당히 분비시켜 소화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과도한 인슐린은 몸에 지방이 쌓이는 것을 돕는다. 과일을 먹을 때는 생과일 그대로 먹는 게 좋고, 주스나 과일 통조림 등으로 먹는 것은 피한다. 야채는 오이나 당근처럼 딱딱해서 씹다 보면 적은 양으로도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을 고른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박용우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