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당뇨 진단을 받은 30대 후반의 직장인 K 씨(경기도 부천시 상동). 다행히 당뇨가 심하지 않아 식사에 신경 쓰면서 운동을 하면 빨리 약을 끊을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그동안 미루었던 운동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K 씨가 선택한 운동은 걷기. 뱃살을 빼려고 헬스클럽에 몇 번 등록했지만 매번 운동을 거르는 날이 많아 별 효과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퇴근 후에 저녁식사를 마치고 운동복 차림으로 집 근처 공원을 찾은 K씨는 깜짝 놀랐다. 밤 9시가 되어가는 시간이었지만 혼자서 또는 가족끼리 걷기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던 것.
요즘 아침, 저녁으로 공원에 가보면 열심히 걷는 사람들이 많다. 관련 인터넷 동호회 수도 크게 늘었고, 올 한 해만 300여 개에 이르는 걷기대회가 열릴 정도다. 이런 걷기 열풍은 별다른 장비가 필요하지도 않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어서 걷기운동이 이른바 ‘국민운동’으로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도 최근 걷기운동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문화관광부는 내년에 150억 원을 시작으로 2012년까지 모두 860억 원을 걷기 활성화에 지원할 방침이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오늘 9월 서울 등 6개 지역에서 걷기를 중심으로 한 건강축제를 열기로 했다. 사실 걷기운동으로 국민들이 건강해지면 나라 살림에도 득이 된다. 국민들의 질병이 10%만 줄어도 연간 2조 2000억 원의 의료비는 물론 1조 6000억 원의 간접비용이 절감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효과도 과연 ‘국민운동’으로 손색이 없을까. 소문난 걷기운동 예찬론자인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윤방부 교수(한국워킹협회 회장)는 “신체적인 건강은 물론 정신적·사회적인 건강을 함께 지킬 수 있다는 것이 걷기운동의 매력”이라며 “비만·당뇨 등의 성인병이 있거나 가족 중에 성인병이 있는 경우, 또는 우울증으로 고생하거나 인생을 즐겁게 살고 싶다면 걷기운동을 한번 시작해 보라”고 권했다. 25년 전부터 걷기운동을 시작한 윤 교수는 지금도 월~금요일까지는 러닝머신을 이용해 매일 한 시간씩 걷고 뛰다가, 토·일요일에는 밖으로 나가 7㎞를 걷는다고 한다.
우선 신체적인 면에서는 천천히 걸어도 1시간에 120㎉, 빨리 걸으면 300㎉의 열량이 소모돼 뱃살이 두툼하게 잡히거나 전신비만인 경우에 다이어트에 좋다. 당뇨나 고혈압을 예방·개선시키는 데도 효과만점. 예를 들어 꾸준히 걸으면 혈관에 쌓인 나쁜 콜레스테롤이 줄어들고 좋은 콜레스테롤이 늘어나 혈액순환이 잘 되는 만큼 혈압이 쉽게 올라가지 않는다.
또 걸으면 걸을수록 심장이 튼튼해지고 폐활량이 늘어나 호흡기가 좋아진다. 일주일에 5일 매일 30분 이상 걷는다면 심장마비의 37%를 예방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영국에서 나오기도 했다. 특히 심장질환의 회복기인 경우에는 걷기가 심장기능을 되찾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다리가 잘 붓는 사람에게도 걷기만한 운동이 드물고, 걷기운동으로 뼈와 근육이 강해지면 골다공증 예방 효과도 기대된다. 지팡이를 짚어야 거동이 가능한 90대 노인에게 2개월간 걷기운동을 시켰더니 근력이 70%, 걷는 속도는 50% 빨라졌다는 미국의 연구논문도 있다.
정신건강도 향상시킨다. 걸으면서 마음속 생각들을 차분히 정리할 수 있고 차곡차곡 쌓여있던 스트레스를 싸악~ 떨칠 수 있다. 우울증, 불안증 등이 있는 경우에도 계속 약에만 의지하기보다는 가벼운 걷기운동을 하면 빨리 좋아진다.
사회적인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긍정적이다. 걷는 동안 쓰레기장이 눈에 띄면 자연스럽게 환경파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고, 어려운 이웃을 만날 때는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이라는 것을 새삼 새겨볼 수도 있다.
걷기는 이렇게 좋은 운동이지만 도대체 어떤 식으로, 얼마나 걸어야 좋까. 처음 운동을 시작하거나 비만인 경우에는 너무 성급하게 속도, 거리를 늘리면 근육, 관절에 통증이 생길 수 있다.
윤방부 교수가 강조하는 걷기운동의 원칙은 ‘6S’. 신발(Shoes)ㆍ속도(Speed)ㆍ강도(Strength)ㆍ표면(Surface)ㆍ구조물(Structure)ㆍ스트레칭(Stretching) 여섯 가지를 말한다.
△신발=관절, 허리를 보호해주는 편한 것을 고른다. 바닥의 두께가 1.5∼2㎝ 정도 되는, 가볍고 편한 운동화를 고르는 것이 좋다.
△속도=시속 6.5㎞가 넘어야 심폐기능을 튼튼하게 만들 수 있다. 이보다 느리면 칼로리 소모 효과만 있다. 초보자라면 시속 3㎞로 걷다가 차츰 속도를 올려 6개월 후엔 시속 6.5㎞ 정도의 빠른 속도를 내는 것이 요령이다.
△강도=하루에 300㎉를 소모하는 정도가 적당하다. 시속 6.5㎞로 1시간 걷거나 달리면 320㎉가 소모된다.
보통 최대 심박수의 60∼80% 수준이면 적당한 운동 강도로 본다. 최대 심박수는 ‘220 - 나이’로 계산한다. 예를 들어서 40세인 사람은 ‘220-40=180’이므로 최대 심박수는 약 180회다. 10분 정도 걷다가 잠시 멈추고 손가락으로 눌러 손목의 맥박을 재면 심박수를 알 수 있다. 목표 심박수에 도달했으면 그 정도 강도로 30분 이상 걷고, 목표 심박수에 못 미치면 걷는 속도를 조금 더 빠르게 한다.
△표면=운동 장소로는 지표면이 잔디나 흙 등 쿠션이 있어야 좋다.
△구조물=구조물이 없어 걷기 좋은 곳을 고른다. 운동장 같은 곳이 좋다.
△스트레칭=걷기운동 전후로 5~10분씩 반드시 스트레칭을 해야 운동효과가 크고 무리가 적다. 걷기가 무리 없는 운동이라고 해서 준비운동을 빠뜨리는 것은 금물이다. 갑자기 걷기 운동을 시작해 발이 아플 때는 족욕, 발마사지 등을 해주면 빨리 풀린다.
물론 연령, 건강상태에 따라 조금씩 원칙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50~60대에 걷기운동을 시작한다면 숨이 가쁘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걷다 3주 정도 지나서 속도를 차츰 올린다.
올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보폭은 60㎝ 이내로 평소보다 5㎝ 정도 크게 벌린다. 이렇게 걸으면 자연스럽게 가슴이 쫙 펴지고 양손을 앞뒤로 크게 흔들게 된다. 앞다리는 발끝을 들어 뒤꿈치부터 땅에 닿도록 하고, 뒷다리는 힘을 주어 지면을 딛고 무릎은 펴야 한다.
운동효과를 보려면 1회에 30분~1시간씩 1주일에 5회 이상 걷는 게 좋다. 흔히 하루 1만보 정도를 걸어야 건강에 좋다는 이야기는 칼로리 때문에 나왔다. 성인이 하루 음식에서 섭취하는 칼로리는 2500∼3000㎉. 이 중 일상생활을 통해 소비하는 것이 1500㎉이므로 나머지는 운동으로 그때그때 써버려야 쌓이지 않는다. 1만보를 걷는 데는 대략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한꺼번에 이 시간을 내기 힘들 때는 조금씩 나눠서 걷는다. 예를 들어 아침 출근시간에 버스를 한두 정거장 미리 내려 30분 걷고, 저녁식사 후에 1시간 걸으면 된다.
만보계를 가지고 다니면 운동거리 계산이 쉽다. 보행수에 보폭을 곱해 운동거리가 나오고, 칼로리 소비량까지 계산 가능한 것도 있다.
하지만 걷기 초보자라면 여러 가지를 일일이 따지기 번거로운 게 사실. 처음에는 걷는 습관을 들인다는 생각으로 매일 30분만 시간을 내서 무조건 걷는다. 좀 더 제대로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6S’원칙을 지키면서 올바른 자세로 걷는 데 신경 쓴다.
그런 다음 마사이워킹, 노르딕워킹 등 요즘 유행하는 워킹방법을 배워보는 것도 좋다. 마사이워킹의 경우 관절·근육에 무리가 적어서 요통 등에 시달리는 40세 이후에 권할 만하다. 아프리카 케냐의 중앙 고지대에서 탄자니아 중부 평원에 걸쳐 살고 있는 마사이족은 육식을 주로 하는데도 불구하고 성인병이 거의 없고 대부분 180㎝가 넘는 큰 키에 늘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목축민족. 이들의 생활을 연구한 결과 걸음걸이가 그들의 건강비결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명해졌다. 보통 걸을 때 무게 중심이 발바닥의 중앙을 생략하고 발뒤꿈치에서 앞꿈치로 넘어가는 것과는 달리, 마사이족은 걸을 때 발뒤꿈치 바깥쪽부터 닿기 시작해 무게중심이 발 바깥쪽을 거쳐 새끼발가락과 엄지발가락 순으로 이동한다. 마사이워킹을 쉽게 할 수 있는 신발도 나와 있다.
노르딕워킹은 양손에 특수 막대를 잡고 하는 워킹이다. 핀란드의 스키 선수와 바이애슬론 선수들이 여름에 훈련할 수 있도록 고안된 운동으로, 특히 상체의 주요 근육을 단련할 수 있고 뱃살을 빼는 데 효과가 크다.
한 가지, 요즘 걷기 운동을 하면서 이어폰을 꽂고 하는 경우에는 주의해야 한다. 음악소리가 너무 크면 주변 사물에 대한 인지 능력이 떨어져 사고의 위험이 커진다. 외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정도로 이어폰 음량을 줄이는 게 좋다. 뒤로 걷기도 삼가는 게 좋다. 앞으로 걸을 때와는 다른 근육을 사용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뒤로 걷기를 하다 넘어지거나 부딪칠 수 있어 위험하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윤방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