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요일 아침에 있는 회의, 7년차 직장인 Y 씨는 부하 직원이 내놓은 기획안을 검토하기 위해 첫 장을 펼쳤다. 하지만 몇 줄 읽지 않아 오타가 보였다. 눈살을 찌푸린 Y 씨, 하지만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몇 개의 오타가 속속 발견됐다. 그때부터 기획안 내용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오타에만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기획안을 내놓은 부하 직원을 향해 자신도 모르게 ‘다시 해오라’며 서류를 휙 던지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갑작스런 Y 씨의 행동에 해당 직원은 물론 회의 중이던 직원들의 얼굴이 영문을 몰라 모두 굳어졌다. 그때서야 ‘아차’ 싶어진 Y 씨, 오자에만 신경이 쓰여 빨리 진행해야 되는 건인데도 회의를 마무리 못한 데다 이 일로 연일 야근을 해온 부하 직원들의 사기마저 떨어질까 걱정이 크다.
요즘 Y 씨처럼 중요한 것은 제쳐두고 사소한 부분, 즉 디테일한 부분에 너무 신경을 쓰는 ‘디테일 증후군’을 보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른바 숲은 못 보고 나무만 보는 사람들로, 그 결과 다른 사람들이 이해 못할 행동으로 스스로 난감한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정식 의학용어가 아니고 최근에 등장한 용어인 만큼 디테일 증후군을 보이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어떤 직업에 많은지 등의 관련 연구는 아직 거의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회사 상사나 동료, 가족 중에도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흔하다.
디테일 증후군은 지나치게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이나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에게 나타나기 쉽다. Y 씨 같은 디테일 증후군 증상을 보이는 상사를 둔 직장인이라면 지금은 상사가 ‘도대체 왜 그럴까?’ 싶어 스트레스를 받지만 나중에는 자신도 어느 정도 닮아갈 수 있다. 상사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사소한 부분에도 잔뜩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또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가족의 영향도 크다. 만약 가족 중에 디테일 증후군을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부모가 디테일 증후군이라면 자녀들도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디테일 증후군을 보일 확률이 높아진다.
나이로 보면 직장에서 책임감을 많이 느끼기 시작하는 30~40대에 디테일 증후군이 많다. 성별로는 여성보다는 남성에게 더 많은 편이다.
그렇다면 디테일 증후군이 병일까 아닐까. 자신이 디테일 증후군이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디테일 증후군이라고 다 나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지 않는다면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실수를 줄여 세밀한 부분까지 하나하나 일을 한번에 잘 처리하면 업무에서는 일의 능률을 남보다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의식적으로 어떤 일을 할 때 전체적인 흐름을 짚어보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좋다. 을지병원 정신과 김의중 교수는 “일의 우선순위를 고려해서 신경을 쓰는 부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확인하라”며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면 빨리 처리해야 되는 문제부터 해결하면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일을 할 때 시간을 정해놓고 하는 것도 좋다. 사소한 것에 무한정 시간을 뺏기느라 정작 중요한 일을 처리하지 못하는 상황을 막을 수가 있다.
그렇다고 매사 일에, 시간에 쫓기듯 생활하지는 말자.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나무뿐만 아니라 숲도 보인다. 명상, 요가 등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것도 좋다.
그렇지만 디테일 증후군이 심해지면 마음자세만으로는 쉽게 좋아지지 않는다. 김의중 교수는 “디테일 증후군이 심해 강박장애로 이어지면 병원을 찾는 게 좋다”고 말했다.
강박장애는 자신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을 자꾸 반복해서 생각하게 되는 강박적인 생각, 하고 싶지 않은 행동인데도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강박 행동을 보일 때 의심된다.
예를 들어 외출할 때마다 현관문을 제대로 잘 잠갔는지, 가스불은 껐는지 한 번 확인하고 안심이 되면 정상이다. 하지만 몇 번씩 확인하고도 불안하다면 확인 강박행동을 보이는 강박장애일 가능성이 크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보면 유명한 로맨스 소설 작가로 나오는 잭 니컬슨이 바로 이런 행동을 반복한다. 잭 니컬슨은 집에 들어가면 반드시 5번씩 자물쇠를 확인하고, 길을 걸을 땐 보도블록의 선을 절대로 밟지 않는다. 식당에서도 항상 같은 테이블에만 앉고, 미리 챙겨온 나이프와 포크로만 음식을 먹는다.
손을 너무 자꾸 씻는 청결 강박행동, 자꾸 성기나 성적인 충동 등이 연상되는 성적 강박행동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또 물건이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참을 수 없거나, 반대로 불필요한 것도 필요할 것 같아 버리지 못하고 주변을 지저분해지게 만드는 경우도 강박행동에 속한다. ‘4’나 ‘13’ 같은 숫자를 보면 나쁜 일이 생길 것 같아서 이런 숫자가 연상되는 모든 일을 피하는 숫자에 대한 강박사고도 의외로 많다.
이런 다양한 강박적인 행동, 사고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다면 의사와 상의해서 약물치료를 고려하는 것이 좋다. 약물치료는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강박증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우울증 치료제로 개발된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를 사용해서 신경을 안정시킨다.
노출요법이나 사고 중지법 같은 행동치료를 병행해야 효과적이다. 노출요법은 환자가 강박적으로 기피하는 행동에 의도적으로 더 노출을 시킴으로써 그렇게 해도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손을 자주 씻는 사람은 일부러 더러운 물이나 휴지통에 손을 넣었다 뺀 후에도 손을 안 씻고 참도록 하는 것이다. 사고 중지법은 강박적인 생각이 들 때 마음속으로, 또는 소리 내어 스스로에게 “그만”이라고 말하거나, 좀 더 강한 다른 생각을 떠올려 강박적인 생각을 멈추게 하는 훈련방법이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을지병원 정신과 김의중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