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를 하고 이를 닦은 후에 오렌지주스를 마시면 맛이 영 이상하다. 왜 그럴까.
범인은 대부분의 치약에 사용되는 포말성 세제인 라우릴황산나트륨이다. 오렌지 주스에서는 보통 3가지 맛을 느낄 수 있다. 단맛과 신맛, 그리고 약간의 쓴맛이 그것이다. 그런데 라우릴황산나트륨이 단맛을 느끼는 미각 수용체를 둔화시켜 오렌지주스 속에 들어있는 과당의 단맛을 차단해 버린다.
반면 신맛과 쓴맛을 느끼는 미각 수용체는 손상되지 않는다. 오렌지주스 속에는 약간의 신맛을 내는 구연산이 들어 있는데, 치약 때문에 과당의 단맛을 느끼지 못하면 구연산의 신맛이 훨씬 강하게 느껴지면서 주스 맛이 달라진다. 오렌지주스뿐만 아니라 오렌지, 귤 등의 과일 역시 이를 닦은 후에 먹으면 맛이 거북해진다.
남자는 단맛에, 여자는 쓴맛에 민감하다는데?
예일대 의대의 린다 바르토셕 교수팀이 유전적으로 미각이 민감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맛의 차이를 연구한 결과,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미각에 민감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여성의 25%가량은 매우 민감한 미각을 갖고 있었다. 연구팀은 “5번 염색체에 있는 유전자가 미각에 관여한다”며 “이 유전자의 차이에 따라 혀에서 맛을 감지하는 부분인 미뢰의 밀도에 차이가 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특이한 점은 여성들이 단맛보다 쓴맛에 민감한 반면 남성들은 단맛에 민감하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여성은 왜 쓴맛에 민감할까. 연구팀은‘여성이 임신 중에 태아를 보호하기 위해 쓴맛에 더 민감하도록 진화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쓴맛을 내는 물질은 크고 작은 독성이 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성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쓴맛을 더 잘 느끼게 되고, 임신 중에 민감도가 더욱 높다는 관련 연구도 나와 있다. 그러다 폐경기가 되면 쓴맛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장에도 맛을 느끼는 세포가 있다고?
혀가 아닌 소장에도 맛을 느끼는 세포가 있다. 미국 마운트 시나이 의과대학 로버트 마골스키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섭취한 음식물 속의 영양소를 흡수하는 소장에 단맛을 감지하는 세포가 있어서 당분의 흡수를 조절한다는 것이다.
소장의 미각세포는 혀의 미각세포와 같은 메커니즘으로 단맛을 포착하고, 음식으로 섭취하는 포도당을 감지해 포도당의 흡수를 조절함으로써 혈당도 조절하게 된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
따라서 소장의 미각수용체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한다면 마치 조명의 밝기를 조절하는 것처럼 체내에 흡수되는 포도당의 양을 조절할 수도 있지 않을까.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