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화학물질은 식품에만 들어 있는 게 아니다. 별 의심 없이 매일 입는 옷이나 화장품 등 우리 주변의 생활용품 가운데에도 알고 보면 유해 화학물질이 숨어 있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유해 화학물질이 체내에 흡수되면 가볍게는 두통, 어지럼증, 피부 알레르기 등을 보이는가 하면 암 같은 중한 질환의 발병에 나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많아도 너무 많은 생활 속의 화학물질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본다.
만약 아침 출근길에 드라이클리닝해서 찾아온 옷을 바로 입고 나왔다면 여러 가지 석유화학 물질이 옷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드라이클리닝을 할 때 쓰는 유기용제가 벤젠이나 솔벤트 같은 여러 가지 여러 석유화학 물질의 혼합물이기 때문이다. 이런 물질들은 대부분 암을 유발하는 등 유해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벤젠은 1급 발암물질로 분류돼 있고, 솔벤트 역시 노출 시간이나 양에 따라 신경과 호흡기에 해를 줄 수 있는 성분이다. 참고로 솔벤트는 타이어를 만드는 과정에서 천연고무와 합성고무를 섞을 때도 사용돼, 최근 한 타이어업체 근로자들의 잇단 돌연사와도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여성, 남성 할 것 없이 자신의 매일 피부에 바르는 화장품에도 화학물질이 숨어 있다. 최근 미국의 ‘환경실무그룹’이라는 비영리기구가 미국과 유럽에서 판매되는 7500여 종의 화장품과 세정용품을 분석한 연구 결과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있다.
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성인들은 화장품이나 보습제, 샴푸 등을 포함 하루 평균 아홉 가지 정도의 화장품을 사용하는데 몸에 직접 바르는 이 화장품들 속에 사실은 포름알데히드나 벤젠, 콜타르 등의 화학물질이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런 화학물질이 들어 있는 화장품을 오래 사용하면 피부 알레르기는 물론 호르몬 이상, 암 등의 발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유해 화학물질의 위험에 더 주의해야 하는 유아들이 쓰는 베이비로션이나 파우더, 샴푸 역시 마찬가지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워싱턴 주립대 연구팀은 미국 소아과 학회지에 “유아용 샴푸와 로션, 기저귀 등에서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데 쓰이는 ‘프탈레이트’라는 화학물질이 다량으로 검출됐다”는 내용의 논문을 게재한 바 있다.
인하대 산업의학과 임종한 교수는“프탈레이트는 호르몬을 교란시키는 환경호르몬으로 밝혀진 화학물질”이라며 “남성들의 경우 정자의 수와 운동성 감소로 이어져 불임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만큼 노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많은 화장품이나 샴푸, 바디 제품 등에는 석유화학 성분인 계면활성제 역시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때를 빼는 작용을 하는 계면활성제는 여러 번 헹궈도 잘 없어지지 않아 주부습진, 아토피성 피부염, 천식, 신경기능 장애 등의 위험을 높인다. 또한 파라벤 계열(파락옥신안식향산에스텔)의 방부제 성분도 들어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구입하기 전에 확인하는 것이 좋다.
여름에 많이 사용하는 각종 스프레이식의 살충제도 주의해야 한다. 파리나 모기, 바퀴벌레 등의 해충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살충제지만 피부나 호흡기 등을 통해 인체로 흡수되면 사람에게도 잠재적인 독성이 생기게 마련이다.
뿌리는 살충제 외에도 액체나 전자모기향, 몸에 바르는 모기약 모두 마찬가지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살충 효과가 있는 성분이 들어 있는 제품들이므로 적게 사용하는 게 좋다. 뿌리는 제품을 쓴 후에는 환기를 잘 시키고 액체나 전자모기향은 머리맡 반대편에 두도록 한다.
실제로 지난해 모기 퇴치를 위해 어린이 몸에 직접 뿌리는 모기약에 영·유아에게는 사용이 금지된 디에칠톨루마이드라는 화학물질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참고로 예전에 쓰던 녹색 모기향은 양식어류에 사용된 발암 유발 물질, 말라카이트그린 성분이 들어 있어 지난해 9월 이후에는 생산이 금지됐다. 현재는 말라카이트그린을 조경용과 섬유 염색용 염료로만 이용할 수 있도록 규정이 개정됐다.
또한 모기약의 피레스로이드라는 살충제 성분도 환경호르몬으로 작용하는 성분으로, 밀폐된 공간에서 피레스로이드 성분이 든 모기약을 오래 사용하지 않도록 한다.
매일 쓰는 그릇이나 물병 중에도 유해 화학물질이 들어 있는 것들이 있다. 플라스틱 그릇에 대한 논란은 계속 있어왔는데 PE(폴리에틸렌), PP(폴리프로필렌)보다는 PC(폴리카보네이트), PVC(염화비닐) 같은 플라스틱 제품이 더 논란이 많다. 플라스틱을 보다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접착력을 높이는 가소제, 즉 DHEP(디이에틸헥실프탈레이트)를 넣기 때문이다.
생수를 담는 플라스틱 병도 주의하는 것이 좋다. 일본의 경우에는 1ℓ 미만의 음료용 생수용기는 아예 PET병을 사용하지 않도록 돼 있다고 한다. PET, PC 같은 플라스틱 제품은 특히 뜨거운 액체를 담을 경우 가소제가 용출될 가능성이 있다.
알루미늄으로 만든 냄비나 호일, 캔 등에 있는 알루미늄 성분도 주의가 필요하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설정한 알루미늄 섭취 상한선은 체중 1㎏당 하루 1㎎ 이하다. 이걸 기준으로 삼으면 체중이 70㎏인 성인의 경우는 하루 70㎎ 이하로 섭취해야 된다는 결론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체중 1㎏당 하루 0.034~0.078㎎ 정도로 이보다 적게 섭취하는 만큼 전체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지만 알루미늄 그릇을 유난히 항시적으로 많이 쓰는 집안은 경계를 하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알루미늄은 체내 흡수율이 낮아 대부분 몸 밖으로 배설된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알루미늄이 피부 알레르기나 기억력 감퇴, 학습장애, 치매, 파킨슨병 등과 관련이 있다는 보고가 있는 만큼 몸속에 쌓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어린이나 노인, 신장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참고로 알루미늄은 베이킹파우더처럼 알루미늄 성분이 든 식품첨가물을 넣어 만든 과자나 밀가루 식품은 물론 자연 식품에도 많이 들어 있다. 예를 들어 과일, 채소에는 적게 들어 있지만 멸치의 알루미늄 함량은 118ppm, 김은 88ppm, 바지락은 58ppm, 굴은 47ppm이다.
호일과 함께 음식을 포장하는 데 많이 쓰는 것이 랩. 랩도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다. 가능하면 사용 횟수를 줄이고,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경우에는 유해성이 적은 제품을 고르는 것이 좋다.
테프론 코팅이 된 밥솥이나 냄비, 프라이팬 등도 인체오염 경로는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지만 유해성에 대한 논란이 있다. 미국 환경보호국(EPA)은 테프론의 필수 원료인 PFOA가 암과 각종 독성을 일으킨다는 동물실험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