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승환, 꼭 필요한 선수인데…
“그런데 72경기 출전 정지 징계 받은 선수가 대표팀에서 뛸 수 있겠어요?”
지난 7월 초, 미국 세인트루이스 출장 중에 만났던 오승환이 기자에게 던진 질문이다. 당시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오승환은 내년 3월에 열리는 WBC대회 출전 관련해서 기자와 편하게 얘기를 나누다 자신이 해외 원정 도박 혐의 관련 약식기소된 데 대해 한국야구위원회(KBO)가 ‘품위 손상’을 근거로 국내 복귀 시 72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내린 결정을 떠올렸다. 정규리그의 절반에 해당하는 출전 정지 징계를 받은 선수가 어떻게 대표팀에 나갈 수 있느냐는 설명이었던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승환은 대표팀에서 자신을 불러준다면 최선을 다해 맡은 역할을 소화해내고 싶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2017 WBC대회를 앞두고 가장 뜨거운 이슈를 불러일으킨 이가 오승환이다. 여론은 오승환의 대표팀 합류를 놓고 찬반양론을 벌이고 있고, 미디어들도 앞다퉈 오승환의 대표팀 출전 여부에 다양한 해석을 곁들이는 중이다.
김인식 감독이 오승환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잘 알면서도 그를 부를 수밖에 없다고 말한 이유는 오른손 투수의 부재 때문이다. 지난 몇 년 동안 KBO리그에 특급 우완 투수가 나오지 않았고, 그로 인해 프리미어12 때도 활용 가치가 높은 우완 투수의 부족으로 팀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메이저리그 첫 해부터 팀 주전 마무리 대신 부동의 클로저로 맹활약 중인 우완 투수 오승환이야말로 대표팀에 꼭 필요한 선수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오승환은 사타구니 부상이 있었던 지난 프리미어12대회 때를 제외하곤 2006·2009·2013 WBC와 2008 베이징올림픽, 2010 도하아시안게임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했다.
오승환과 추신수.
# 추신수의 각오 “팀과 대표팀 위해 재활 서둘러”
“승환이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우완 투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승환이는 대표팀에 꼭 필요한 선수인데….”
왼 팔목 골절 부상으로 재활 중인 추신수는 시애틀 원정 경기에서 만난 기자에게 오승환의 대표팀 합류 여부에 대해 궁금증을 나타냈다. 그는 “국제대회는 단기전이고, 단기전은 투수의 마운드 운영 능력이 굉장히 중요하다”면서 “이런저런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출전하는 WBC대회에서 오승환은 꼭 필요한 선수”라고 조심스런 입장을 나타냈다.
추신수가 오승환의 합류를 바라는 가장 큰 이유는 82년생 동기들이 대표팀에서 만나 마지막 불꽃을 태워보자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6월 중순 지나 세인트루이스로 원정 경기를 갔던 적이 있다. 그때 승환이랑 경기 후 따로 식사하며 다양한 얘기를 주고받았고, 만약 우리가 WBC 대표팀에 뽑힌다면 멋진 활약을 펼쳐보자고 다짐했었다. 이후 승환이는 팀 마무리로 자리를 잡았고 엄청난 활약을 펼치며 메이저리그 데뷔 해를 장식하고 있다. 내가 부상당하는 바람에 약속 이행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몸 상태만 회복된다면 동기들과 다 같이 대표팀에서 만나 의미 있는 추억을 만들고 싶다.”
추신수는 이번 WBC대회 출전과 관련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그는 김인식 감독이 5일(한국시간) 진행했던 기자회견을 거론하며 “대표팀에서 불러만 준다면 당연히 (WBC대회에) 참가하고 싶다”는 생각을 거듭 밝혔다.
추신수
“만약 내가 우리 팀의 포스트시즌 경기에 나가게 된다면 대표팀 출전은 당연하다. 김인식 감독님이 불러주신다면 주저 없이 달려가겠다. 감독님 입장에선 내 부상 상태를 먼저 지켜보시겠지만 팀에서 선수로 시즌 마칠 때까지 뛰다가 겨울 동안 체력을 회복한 이후 내년 소집되는 대표팀 훈련에 합류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조만간 김인식 감독님에게 전화를 드려 내 의사를 제대로 전할 예정이다.”
2009 WBC대회에 출전했던 추신수는 2013 WBC대회는 팀 이적과 맞물려 어렵게 고사한 바 있다. 그가 현재 재활 중임에도 대표팀 출전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는 건 이전처럼 대표팀에 출전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클리블랜드에서 신시내티로 트레이드됐을 때는 새로운 팀에 적응해야 했고, 오랜만에 중견수라는 포지션을 익혀야 하는 상황인 데다 대회가 끝나면 스프링캠프도 정리가 되는 터라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새로운 팀에 적응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팀에서 못 가게 막는 것도 아니다. 몸만 건강하다면 못 나갈 이유가 없다. 앞으로 내가 대표팀에서 뛸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나 오겠나. 이번엔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2000년 시애틀 매리너스 마이너리그에서부터 미국 생활을 시작한 추신수로선 한국말로 대화할 수 있는 대표팀 생활을 오랫동안 그리워했다. 더욱이 야구선수로 뛰며 다시 한 번 정근우, 김태균, 오승환, 이대호 등 친구들과 함께 대표팀에서 뛰어보는 걸 소원했을 정도다.
“해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에게 대표팀, 태극마크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더욱이 82년생 친구들과 함께하는 대표팀은 쉽지 않은 경험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친구들과 통화할 때마다 우리 모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같이 뛰어보자고 말한 적이 있다. 이번이 그 기회라고 생각한다.”
추신수는 최근 왼팔목 골절 부상을 당한 수술 부위의 실밥을 풀었고, 팔을 돌리는데 약간의 뻐근함 정도만 느끼는 중이다. 9월 7일 시애틀 홈구장인 세이프코필드에서 수술 후 처음으로 워닝트랙을 달리고 수비 훈련에 나서는 등 본격적인 복귀 프로그램을 가동 중인 그는 어느 때보다 부상 회복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월 18일 수술한 걸 떠올리면 실로 엄청난 회복 속도를 보이는 셈이다.
“만약 팀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고, 대표팀에 나갈 기회가 없다면 이렇게 빨리 재활을 서두르지 않았을 것이다. 팀을 위해, 또 대표팀에 나가고 싶어 몸을 만드는 터라 재활을 하면서도 지루하지가 않다.”
추신수와 이대호
시애틀에서 만난 이대호도 대표팀 합류에 대해 솔직한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82년생 동기들이 2000년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세계청소년대회 이후 마지막으로 대표팀에서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고 예상했다.
“일본을 거쳐 미국에서 야구하며 친구들이 많이 그리웠다. 다행히 메이저리그에서 오승환, 추신수를 만나게 되며 그 그리움을 조금 해소하고 있는 편이다. 우리들끼리 만나면 이전 대표팀에서 보낸 일화들을 자주 끄집어낸다. 모두에게 추억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대표팀에서 불러주고, 우리가 갈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이번 대표팀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대표팀에서 함께 뛰자고 약속했다. 좋은 선수들이 다 같이 모여 한국 야구를 세계에 알릴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나.”
이대호는 김인식 감독이 전날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거론한 부분을 언급했다.
“기사를 통해 감독님의 메시지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내가 대표팀에 합류하는 것과 관련해 도장을 찍었다고 하셨는데 대표팀 가는데 도장이 무슨 필요가 있겠나. 능력이 되면 가는 거지. 몸도 마음도 준비 잘해서 좋은 모습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사실 이대호는 체력적으로 힘든 상태다. 지난 프리미어12대회 이후 곧장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 쉼 없이 몸을 만들었고 다른 선수들보다 일찍 시애틀 매리너스 스프링캠프에 합류하면서 계속 긴장 상태를 유지했었다.
“솔직히 (체력적으로) 힘들다. 몸이 많이 지쳐 있는 상태다. 올 시즌을 앞두고 빨리 몸을 만들면서 조금 일찍 슬럼프가 찾아오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걸 핑계대고 싶진 않다. 몸이 허락한다면 동기들과 함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싶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WBC대회 일정 어떻게 되나…내년 3월 조별리그 ‘플레이볼’ 2017 WBC대회 최종 엔트리는 언제 발표될까. KBO(한국야구위원회)가 김인식 기술위원장을 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한 가운데 조만간 대표팀 코치진이 구성될 예정이다. 대표팀 감독 분야에선 레전드 급인 김 감독은 항상 그랬듯이 최강 전력으로 대회를 치르길 희망한다. 일단 9월 이내에 1차 엔트리 60명이 발표될 예정이고, 최종 엔트리는 2016 KBO리그 한국시리즈까지 모두 끝난 뒤인 오는 11월 말∼12월 초에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16개 나라가 참가하는 2017 WBC대회는 4개조로 나뉘어 내년 3월 초 서울 고척 스카이돔과 일본 도쿄돔, 미국 마이애미 말린스파크, 멕시코 과달라하라 등 4곳에서 조별 리그 1라운드를 치른다. 한국은 대만, 네덜란드 등과 함께 B조에 이름을 올렸다. B조 1라운드는 내년 3월 7일부터 10일까지 한국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경기를 펼친다. 1라운드 각 조 상위 두 팀은 3월 12~15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리는 2라운드에 진출한다. 2라운드에서 2위안에 오르면 3월 20~2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으로 이동해 준결승과 결승전을 치른다. WBC대회 참가를 위한 대표팀 소집은 2013 WBC대회를 기준으로 했을 때 2월 중순에 첫 소집이 이뤄질 전망이다. [영] |
김인식 감독 ‘대표팀 운용’ 철학…큰 대회선 베테랑이 필요해~ 김인식 감독이 또 다시 대표팀 사령탑에 올랐다. ‘국민감독’으로 불릴 정도로 국제대회에서 그 실력을 결과로 입증시켰던 그는 모두가 비관적으로 예상했던 프리미어12대회에서 대표팀을 세계 정상에 오르게 하며 그 지도력을 재평가받기도 했다. 김 감독은 다른 대회도 아닌 국제대회에서만큼은 최고의 실력을 가진 선수들을 뽑는 걸 우선시했다. 이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김 감독은 프리미어12대회를 예로 든 적이 있다. “프리미어12대회 때 정근우랑 이대호가 팀을 이끌어갔다. 기자들은 종종 세대교체를 운운하며 젊은 선수들에게 대표팀 기회를 주라고 얘기하지만 국제대회는 결과로 보여주는 것이지 과정으로 이해를 구하는 것이 아니다. 즉 팀이 단단하려면 선수층이 다양해야 하는 것은 물론 그중에서도 베스트의 실력을 보일 수 있는 선수 위주로 선발해야 한다. 베스트 선수들을 이끄는 건 감독, 코치가 아닌 베테랑 선수들이다. 프리미어12대회에선 선수들이 이대호, 정근우를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 김 감독은 국제대회 나갈 때마다 일본 야구의 성장을 보고 느끼며 속이 쓰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야구에서 제일 중요한 건 투수다. 현재 한국 선수들의 공격력은 이전보다 많이 좋아진 데 반해 투수는 상대적으로 실력이 떨어졌다. 반대로 일본 투수들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이고 있다. 그런 점은 우리가 배워야 한다. 일본대표팀 투수들을 보면 오타니 외에는 체격이 큰 투수가 없다. 그런데도 체중을 실어 엄청난 스피드의 공을 뿌려대더라. 선수 자원이 풍부한 일본의 투수 조련 방법을 배워야 한다. 앞으로 이렇게 계속 가게 되면 한국의 투수난은 심각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