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허재는 KCC전을 끝으로 농구생활 30년에 마침표를 찍었다. 사진은 선물받은 액자를 들고 팬들에게 인사하는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지난 10일 2003~2004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7차전 마지막 날, 경기 시작 20분을 남겨 놓고 선수대기실에서 기자들과 편하게 대화를 나눈 허재는 여유가 있어 보였다. 유니폼을 입고 뛰는 마지막 경기라는 의미를 애써 희석시키려는 듯 얼굴엔 웃음꽃이 가득했다.
그러나 TG삼보가 4쿼터에서 KCC를 상대로 허무하게 무너지자 허재는 경기 종료 직전 벤치에서 일어났고 경기 후 김주성 등 후배들이 대기실 앞에서 울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며 라커룸에서 쓴 담배를 피워댔다.
기자가 소감을 묻자 그는 “맨날 우승만 할 수 있나. 질 수도 있는 거지. 괜찮다”면서 애써 위안을 삼았다. 허재의 ‘30년 농구 인생’은 이렇게 끝이 났다.
아들을 ‘농구 대통령’으로 만든 허재의 아버지 허준씨는 경기 전 기자를 만나 감회 어린 표정을 지으며 지난해 TG가 우승을 차지했을 때를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 꼽았다. 다른 한편으론 과거 허재가 음주 파문으로 구설수에 올랐을 때 가장 가슴이 아팠다고 털어놓았다.
아내 이미수씨는 “매일 오전 8시40분에 전화(허재는 아들 등교 시간에 맞춰 매일 전화하는 습성이 있다)하는 남편이 오늘따라 7시에 전화해선 큰아들 웅이 목소리가 듣고 싶다고 해 자는 아이를 깨워 통화하게 해줬다”면서 “겉으론 태연한 척하지만 심적으론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많이 긴장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비록 ‘우승하면 허재를 무동 태우고 코트를 한 바퀴 돌겠다’는 후배들의 약속은 실현되지 못했지만 코트 위의 허재는 여전히 ‘농구천재’ ‘농구 대통령’이었다. 그는 ‘백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라는 최고의 찬사를 가슴에 안고 그날 저녁 선수단 회식에서 정말 오랜만에 사연 많은 술자리를 즐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