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욱 감독(오른쪽)과 배우 최민식. 로이터/뉴시스 | ||
이번 수상을 통해 세계적인 거장으로 우뚝 선 박찬욱 감독은 독특한 필모그래피(작품 목록)의 소유자다. 영화계 입문 17년, 감독 데뷔 13년 동안 고작 5편의 장편 영화만을 연출한 그의 필모그래피는 상당히 초라해 보지만 이것은 한국 영화계가 B급 장르 영화에 문을 열어가는 과정이 그만큼 험난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박 감독 역시 “나만큼 많은 영화를 만들고 싶은 이도 없었을 것”이라며 “그런 사람이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현실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고 회상할 정도다.
감독 데뷔는 잔인한 순간이었다. 데뷔작 <달은 해가 꾸는 꿈>은 당시 잘나가던 이승철을 주연으로 내세웠지만 미국의 유명 코미디 영화 감독인 주커 형제의 <골치 아픈 여자>를 살짝 베껴서 제작하는 바람에 흥행 참패로 이어졌다.
이후 5년여 후 박 감독이 어렵게 다시 메가폰을 잡은 두 번째 작품은 97년작 <삼인조>. 그러나 이 역시 또 한 번의 실패작으로 기록됐다.
다시 3년이 지난 2000년, 당시 박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 일이 절실했던 나에게 더 이상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며 애절함을 갖고 만든 영화가 5백83만 명의 관객을 기록한 <공동경비구역 JSA>. 그를 흥행 감독으로 거듭나게 만든 영화였지만 박 감독은 여전히 자신만의 스타일과는 동떨어진 이 영화를 어색한 성공으로 받아들였다.
1년여의 공백을 두고 그가 2003년 발표한 <올드보이>는 <복수는 나의 것>에서 보여준 그의 작품 세계를 한 단계 격상시킨 영화다. 다만 문제가 된 부분은 <복수는 나의 것>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제작비가 쉽게 모이지 않았다는 점. 이 영화를 제작한 쇼 이스트의 김동주 대표는 “5천만원, 1억원씩 여기저기서 투자자들을 끌어와 겨우 34억원의 제작비를 맞췄다”고 제작 이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사실 <올드보이>는 진정한 ‘박찬욱 영화’의 시작선상에 서있는 두 번째 작품일 뿐이다. 과연 그가 앞으로 또 어떤 영화를 만들어 낼 것인지, 이제는 전 세계 영화팬들이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