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일성(왼쪽), 김태촌. | ||
<일요신문>의 인터뷰 요청에 당초 하 위원은 “지금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놓인 그 친구의 입장에서는 사회에서 그 자신이 이제 관심의 대상에서 잊혀져 가기를 간절히 원할 것”이라며 조심스러워 했다. 하지만 그는 “김씨와는 지난 80년대 중반에 만난 이후 지금까지 서로 남다른 우정을 나누고 있다”면서 “사회적 평가나 인식이 어떻든 누가 뭐라 하든 김씨는 나의 절친한 친구”라고 말했다.
선뜻 썩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인기 방송인과 조폭 두목의 우정은 80년대 중반 야구장에서부터 시작된다. 야구를 좋아했던 김씨는 당시 고향 연고팀인 해태의 열혈 팬이었다고 한다. 당시 주먹세계 3대 패밀리의 하나였던 범서방파 보스 김씨는 폭력단체 결성 등의 혐의로 신군부 정권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86년 1월에 출소한 상태였다.
두 사람이 서로 친분을 갖게 된 것은 이 무렵. 인천에서 사업을 준비하던 김씨는 당시 인천 연고팀이었던 청보 핀토스의 구단 고위층과 가까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인연으로 야구장을 자주 찾은 김씨는 거기서 당시 KBS 야구 해설위원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하 위원을 만나게 된 것.
하 위원은 “당시 일반인들은 김태촌이라는 이름 석자만 들어도 무서워할 정도의 건달 세계 두목 아니었나. 그런 사람이 내게 ‘하 위원님, 해설 정말 좋아한다. 정말 반갑다’며 스스럼없이 다가서는 모습이 솔직히 처음에는 충격이었고 의외였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그 무서운 보스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그는 소탈하고 순수하게 나를 대했다. 그런 면에 솔직히 나도 호감이 갔다”고 밝혔다.
이후 김씨는 인천뉴송도호텔 사건으로 그해 7월 다시 구속됐다가, 89년 1월 폐암 판정을 받고 형집행정지로 풀려나오고, 다시 이듬해인 90년 5월 범죄조직 결성의 죄목으로 수감되는 생활을 반복했다. 이 시기에도 하 위원과 김씨는 몇 차례 만나 서로 우정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 위원은 “방송인인 내가 당시 범죄의 온상으로 지목받는 조폭 두목을 만난다는 것에 대해 주변에서는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솔직히 난 그가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최소한 나와 있을 때만큼은 진솔하게 얘기했고, 그냥 부담 없는 친구로서 나를 좋아했다. 그런 그를 나도 조건 없이 그냥 좋아했을 뿐이다. 사람을 꼭 필요해야만 만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사회적 평판이나 인식이 어떻다는 것은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김씨가 90년 재수감된 이후부터는 서로 조금씩 잊혀질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이후 전혀 사회의 빛을 보지 못했고, 하 위원은 방송 생활로 바쁜 나날들을 보내야 했다.
그러던 중 두 사람이 다시 끈끈한 우정을 확인하게 된 계기는 지난 2001년 말 하 위원이 심근경색증으로 쓰러져 사경을 헤맬 때였다. 김씨 역시 교도소 안에서 폐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던 처지인지라 주변 지인을 통해 하 위원에게 “술과 담배를 끊고 운동을 많이 해서 꼭 건강을 회복하라”며 남다른 걱정과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하 위원은 “그 친구는 자신이 절망의 나날을 보내는 그 속에서도 내게 정기적으로 엽서를 보내며 내 건강을 물어왔다”면서 “아픈 몸이 되어 보니까 다시 한번 그 친구의 심정이 와 닿았다”고 전했다.
얼마 전 하 위원은 김씨가 현재 인천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직접 면회를 갔다. 그는 “나는 전혀 거리낄 것이 없었는데, 오히려 그 친구가 ‘유명한 방송인이 나 같은 사람을 만나고 다니면 주변에서 나쁘게 볼 것’이라며 자꾸 걱정을 하더라. 참 불쌍하고도 순수한 친구다. 그가 내게 ‘이보게 친구, 난 실질적인 사회 생활은 10년도 채 못한 사회 초년병이야. 앞으로 날 많이 가르쳐주고 도와 줘’라고 말할 때는 말할 수 없는 연민을 느꼈다”고 밝혔다. 그래서 그는 김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결혼식 축사를 직접 맡겠다고 나섰다.
하 위원은 “그와 같은 친구에게는 우리들도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멀리하거나 기피만 할 것이 아니라 따뜻이 감싸안아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요즘 가끔 연락할 때면 내가 ‘앞으로 사회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부분의 일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애써 강조하곤 한다. 그 친구는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는 얘기를 들려줄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다. 사회생활 10년짜리 초년병이지만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계속 도와주고 싶다. 그게 친구 아닌가”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