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식 감독(70)은 야구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2009년 WBC 준우승, 2015년 프리미어12 우승의 신화가 모두 김 감독 지휘 아래서 나왔다. 그러나 2017 WBC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이후 이런 푸념을 종종 하곤 했다. 실제로 이번 대표팀은 28인 엔트리 확정까지 이르는 과정이 유독 험난하다. 지난해 11월 초 일찌감치 최종 엔트리를 공개했지만, 이탈자가 속출하고 있다. 결국 세인트루이스 오승환을 마무리 투수로 선발하는 모험까지 감행했다.
이번 WBC는 최초로 서울의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다. 한국에서 열리는 첫 대회다. 그러나 이미 최상의 대표팀 구성은 물 건너갔다. 또 총대를 멘 김인식 감독은 다시 한 번 하늘의 도움을 바라야 할 처지다. 두 달 뒤 WBC에서 한국이 기댈 곳은 우리 야구 대표팀 특유의 투지와 팀워크뿐이다.
2009년 WBC 출정식 당시 선수들에게 취재진의 질문이 어이지는 가운데 김인식 감독이 깊은 생각에 빠져있는 모습이다. 김 감독은 올해 한국에서 열리는 WBC 대표팀을 또다시 이끈다. 일요신문 DB
# 오승환은 왜 대표팀에 필요했나
지난해 11월 최초로 공개한 28인 엔트리에선 이미 부상으로 뛸 수 없는 선수들이 빠져 있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끊임없이 비보가 날아들었다. 소방수 후보였던 두산 이용찬이 팔꿈치 뼛조각 수술을 받아 출전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왔고, 그 다음에는 붙박이 왼손 에이스인 SK 김광현이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로 이탈했다. 그 다음 악재는 더 컸다. 주전 유격수인 피츠버그 강정호가 음주운전 뺑소니 사고라는 물의를 일으켰다. 그 과정에서 이미 세 번째 음주운전 적발이라는 사실까지 알려졌다. 설상가상으로 대표팀에서 잔뼈가 굵은 롯데 포수 강민호는 무릎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빠져야 했다.
메이저리거들의 사정도 좋지 않았다. 외야의 주축이 돼줘야 할 텍사스 추신수와 볼티모어 김현수는 선수 본인의 의지와는 별개로 소속팀의 반대가 완강했다. 최고의 마무리 투수인 세인트루이스 오승환은 몸 상태도 좋고 구단도 출전을 허가한다는 입장. 그러나 결정적인 걸림돌이 존재했다. 지난해 1월 해외원정 도박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 받았고, KBO도 오승환에게 한국 복귀시 한 시즌의 절반을 뛸 수 없다는 징계를 내렸다. 오승환은 그 후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KBO 징계를 소화할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여론의 반대가 거셌다.
설상가상에 사면초가. 이들 모두가 대표팀 핵심 전력으로 활약해야 할 최고 기량의 선수들이라 더 그랬다. 그야말로 ‘역대급’ 난관이었다. 결국 김 감독은 결단을 내렸다. WBC 선수단이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인 1월 11일,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마무리 투수 오승환을 선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강정호의 음주 사고 이후 다시 불거졌던 오승환의 대표팀 발탁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동안 김응용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과 김성근 한화 감독을 비롯한 야구계 원로들이 공개적으로 오승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특히 김응용 회장은 “메이저리그에서도 문제없이 뛴 선수가 한국 리그 징계 탓에 국가대표로 나설 수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이러다가는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도 오승환은 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승환과 함께 도박 사건에 연루됐던 임창용이 KBO 징계를 완료했다는 이유로 대표팀 엔트리에 포함된 것도 논란을 재점화시켰다. “오승환을 발탁할 수 없는 기준이 애매하다”는 의미였다.
김 감독은 결국 ‘실리’를 택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히는 구원 투수인 오승환을 품고 가기로 결정했다. 오승환 스스로도 “국가에서 부른다면 뛰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개인 훈련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내가 출전 여부를 언급할 입장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만약을 위해 선수로서 철저하게 준비해 놓겠다”고 했다. 김 감독 역시 “많이 고심했다. 오승환도 WBC에서 나라를 위해 뛰면서 실수를 만회하려는 마음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여전히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대표팀은 어쨌든 확실한 마무리 투수 한 명을 얻었다.
# 외야에 추신수와 김현수가 없다?
물론 오승환 한 명이 합류한다고 해서 전력이 완벽해진 것은 아니다. 오승환의 발탁이 결정된 바로 그 날, 볼티모어 김현수는 결국 WBC에서 뛰지 못하게 됐다. “야구장에 있는 게 가장 즐겁다”는 김현수는 지금까지 그 어떤 국가대표 차출도 거부한 적 없는 단골 멤버다. 그러나 이번 대회 참가는 구단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 때문에 국가대표 엔트리 확정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상황도 부담이 됐다. 결국 김인식 감독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내가 계속 시간을 끌면 대표팀에 더 폐가 될 것 같다. 이번에는 대회 참가가 어렵게 됐다. 정말 죄송하다”는 입장을 확실히 했다.
김현수는 아직 볼티모어에서 확실하게 자신의 자리를 굳힌 상태가 아니다. 지난해 인상적인 활약을 했지만, 올해는 좀 더 분명하게 주전 선수로 자리를 잡아야 하는 시기다. 김현수의 야구 인생에서 무척 중요한 1년이다. 구단이 흔쾌히 허락했다면 당연히 문제가 없다. 그러나 구단은 우회적으로 김현수의 출전을 계속 반대해왔다. 벅 쇼월터 감독도 최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팬들은 WBC에 흥미를 가질지 모르겠지만, 나는 반대한다. 루틴에서 벗어나는 도전이기 때문에 출전 선수에게 큰 부담이 된다”고 강조했다. 볼티모어의 한 지역 언론은 “김현수는 WBC에 불참하는 게 자신에게 이득”이라고 쓰기도 했다.
결국 김현수는 힘겹게 불참 결정을 내렸다. 대표팀 외야에 큰 구멍이 뚫렸다. 게다가 추신수 역시 참가가 불투명한 상태다. 텍사스 구단은 부상 전력이 있는 추신수의 WBC 출전을 공식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KBO가 직접 참가 협조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추신수와 김현수가 없는 대표팀 외야 전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 지금처럼 골치 아팠던 2009년
과거에도 야구 국가대표팀이 구성되기까지는 늘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2003년 삿포로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선 당시 주축 선수였던 투수 이승호, 내야수 심정수와 김한수가 부상으로 이탈했다. 그 결과 한국은 일본과 대만에 잇따라 패하면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또 2006년 11월 열린 도하 아시안게임 때는 다시 구대성과 김동주, 홍성흔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군 미필자 위주의 젊은 대표팀이 출범했다. 결과는 역시 좋지 않았다. 대만과 일본에 또 져 동메달에 머물렀다. 일본이 아시안게임에는 프로 최정예 멤버를 파견하지 않기에 더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가장 선수 구성이 어려웠던 대회는 역시 2009년 WBC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스갯소리로 대표팀을 ‘거북선 코리아’, 김인식 감독을 ‘이순신 장군’으로 표현하는 야구팬들이 많았을 정도다. 일본이 자신 있게 내세운 ‘사무라이 재팬’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이름이었지만, 2009년 WBC 대표팀의 어려운 상황을 반영하는 별명이기도 했다. 당시 많은 야구전문가들은 WBC 대표팀을 ‘역대 최약체’로 평가했다.
이때도 대표팀 구성단계부터 난항을 겪었다. 김 감독은 당시 “하나부터 열까지 다 순조롭게 되는 게 없다”며 고개를 내젓곤 했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고, 영원히 국가대표 4번 타자를 맡을 것 같았던 ‘해결사’ 이승엽과 김동주도 참가하지 못했다. 또 다른 해외파 김병현은 공항에서 여권을 분실해 대표팀 전지훈련에 합류하지 못했다. ‘국민 유격수’ 박진만도 대표팀의 간곡한 요청에 부상을 안고 훈련지에 도착했지만, 차도가 없어 대회 직전 결국 하차했다.
어렵게 메이저리거 추신수를 부르는 데는 성공했지만, 당시 소속팀인 클리블랜드에서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었다. 외야수로 출전할 수 있는 경기수를 제한하고, 나머지 경기에는 지명타자로 나서야 한다는 조항이었다. 이 때문에 대표팀 코칭스태프는 이대호, 김태균, 추신수를 한 경기에 활용하기 위한 묘안을 짜내느라 고심을 거듭했다. 중심타자 이대호가 국가대표팀 훈련에서 3루 수비를 집중적으로 훈련하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다. 이런 난관을 뚫고 일궈낸 결과가 준우승이라 더 값졌던 대회였다.
# 메이저리거 차출은 왜 어렵나
페르난도 로드니(애리조나)는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이다. 그는 탬파베이 소속이던 2013년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출전을 선언하면서 “나는 조국을 대표하고 싶다. 국가를 대표하는데 구단의 동의는 필요하지 않다”고 당당한 입장을 밝혔다. 많은 이가 그의 소신에 박수를 보냈고, 도미니카공화국은 그 대회에서 우승했다. 그러나 리그 최정상급 마무리 투수였던 로드니는 정작 그해 정규시즌에 부진을 거듭했다. 소속팀 탬파베이를 위해서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WBC 출전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다시 고개를 들었다. 선수들에게 천문학적 몸값을 안기는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가장 중요한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종종 반기를 들고 나선다.
실제로 올해 메이저리거 선발에 난항을 겪고 있는 국가는 한국뿐만이 아니다. 1회와 2회 대회 우승팀 일본은 최종 엔트리 28인을 다 구성하지도 못했다. 아예 국내 선수들로만 구성된 1차 엔트리 18명을 발표한 뒤, 메이저리거들의 합류 상황에 따라 10개의 자리를 하나씩 채워가고 있을 정도다.
아오키 노리치카(시애틀)가 참가를 확정하면서 고쿠보 히로키 대표팀 감독의 짐을 덜어줬지만, 여전히 핵심 전력들의 출전 결정은 쉽지가 않다. 다르빗슈 유(텍사스)는 같은 팀 소속인 추신수와 마찬가지로 팔꿈치 수술 탓에 구단이 출전을 만류하고 있다. 다나카 마사히로(뉴욕 양키스), 마에다 겐타(LA 다저스)도 출전을 유보한 상태다. 우에하라 고지(시카고 컵스)는 스스로 출전을 원했지만, 구단이 허가하지 않아 불참이 확정됐다. 상대적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성적이 좋거나 몸값이 높은 선수일수록, 그리고 양키스나 다저스, 텍사스 같은 부자 구단 소속일수록 더 참가 허락을 받아내는 게 어렵다.
아시아 국가만의 문제도 아니다. 캐나다 역시 조이 보토(신시내티)가 불참을 선언해 고민에 빠졌다. 지난해 리그 출루율 1위에 올랐던 보토는 2009년과 2013년 대회에 나섰지만, 올해는 “스프링캠프에서 보완할 점이 많다”며 출전을 고사했다. 도미니카 공화국의 주포인 에드윈 엔카나시온(클리블랜드)도 막 팀을 이적해 적응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출전 불가 방침을 알렸다. 캐나다와 도미니카공화국은 이번 대회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미국과 한 조에 편성됐기에 더 고민이 깊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범가너 출격 확정…미국 드림팀 “올해는 우승할래” 많은 국가들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에 자국 출신 메이저리거들을 부르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다르다. 내로라하는 빅리그의 스타플레이어들이 WBC 출전 소식을 속속 알리고 있다. 지난 3번의 WBC에서는 일본과 도미니카공화국에게 왕관을 내줬지만, 올해는 진짜 우승을 노려볼 만한 ‘드림팀’을 꾸렸다. 에이스부터 확실하다. 샌프란시스코 에이스 매디슨 범가너가 대회 참가를 결정하면서 미국 대표팀에 큰 날개를 달았다. 범가너는 클레이튼 커쇼(LA 다저스)와 함께 메이저리그 최고의 좌완 선발 투수로 평가받고 있다. 2009년 빅리그에 데뷔해 통산 271경기에서 1212이닝을 소화하면서 100승 67패 평균자책점 2.99를 기록 중이다. 통산 평균자책점은 커쇼(2.37)에 이어 현역 2위. 특히 큰 경기에 강하다. 포스트시즌 통산 16경기에서 8승 3패 평균자책점 2.11을 올렸고, 월드시리즈에서만 5경기에서 4승 1패 평균자책점 0.25를 기록한 최고의 강심장이다. 강타자 폴 골드슈미트(애리조나)도 미국 대표팀 유니폼을 입는다. 골드슈미트는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올스타에 선정됐고, 2013년과 2015년에는 리그 MVP 투표에서 2위를 차지했다. 유대계 미국인이라 당초 이스라엘 대표팀 합류가 점쳐졌다. 이스라엘과 1라운드 A조 예선부터 만나야 하는 한국도 내심 긴장했다. 결국 골드슈미트는 이스라엘이 아닌 미국 대표팀을 선택했다. 한국 대표팀에게는 희소식이지만, 미국 대표팀은 조금 더 강해졌다. 이뿐만 아니다. 대니얼 머피(워싱턴)도 골드슈미트와 같은 날 WBC 출전을 결정했다. 머피는 2015년 포스트시즌에서 뉴욕 메츠 소속으로 6경기 연속 홈런을 터트렸다. 그리고 지난해 워싱턴으로 이적해 타율(0.347), 홈런(25개), 타점(104점) 모두 데뷔 후 최고 성적을 냈다. 이 외에도 크리스 아처(탬파베이), 놀란 아레나도(콜로라도), 버스터 포지(샌프란시스코), 조나단 루크로이(텍사스), 브랜든 크로포드(샌프란시스코), 루크 그레거슨(휴스턴), 이안 킨슬러(디트로이트)까지 초호화 멤버들이 포진했다. 올해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수상자인 맥스 슈어저(워싱턴)가 손가락 피로 골절로 출전 의사를 철회했는데도 이 정도다. 그런가하면 네덜란드 대표팀에는 반가운(?) 얼굴이 합류했다. 삼성 외국인 투수였던 릭 밴덴헐크(소프트뱅크)다. 밴덴헐크는 2013년과 2014년 삼성에서 2년을 뛰었다. 2014년에는 13승을 올리면서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이끌었다. 그 활약을 발판 삼아 2015년 소프트뱅크로 이적했다. 그 후에도 주가를 높였다. 지난해 부상으로 7승에 그쳤지만, 시즌 도중 3년 총액 12억 엔(한화 약 122억 원)에 계약을 연장할 정도로 진가를 인정받았다. 그런 밴덴헐크가 2009년 2회 대회에 이어 8년 만에 다시 WBC 참가를 결정했다. 문제는 네덜란드 역시 이스라엘처럼 한국과 1라운드 예선 같은 조에 편성됐다는 점이다. 고척스카이돔에서 1차전을 이스라엘, 2차전을 네덜란드와 치른다. 일본 진출 후에도 삼성의 한국시리즈를 보러 한국을 다시 찾을 정도로 좋은 기억을 남겼던 밴덴헐크. 그러나 적진에서 만난다면 기쁜 소식만은 아니다. 밴덴헐크는 이미 네덜란드를 4강으로 이끌겠다는 각오를 불태우고 있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