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행사를 주관한 사람은 이용택 전 국회의원(77). 그는 3공화국 때 중앙정보부 6국장을 맡아 주요 시국 사건을 총지휘했던 인물로 최근 과거사 진상 규명 논란으로 언론의 집중적인 인터뷰 대상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5공 때 11, 12대 국회의원(무소속)을 지낸 그는 97년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특보를 역임한 이후 정치권에서 은퇴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그는 해외희생동포추념사업회 회장을 맡아 이와 같은 활발한 대외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1978년부터 50~60여 차례 팔라우를 왕래해온 이 전 의원은 일제 강점기 때 그곳에서 우리 동포들에게 행해진 일본의 만행에 대한 진상조사를 실시하는 동시에 유골수집, 추념탑 건립과 추념행사 봉행 등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업적을 평가 받아 이 전 의원은 2004년 12월 28일 팔라우 공화국 대통령으로부터 주한 팔라우공화국 명예대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이번 행사 역시 국가적 차원에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추모행사를 몇몇 뜻있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이 전 의원이 직접 추진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의원은 “국내에서 자행된 일제의 만행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해외에서 희생된 동포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팔라우는 2차 세계대전 발생 전 일본이 자신들의 남방개척 중심부로 삼으려는 목적 으로 남방개발청을 설치했던 곳으로, 당시 수많은 한국인들이 징집되어 노동력을 착취당하다 목숨을 잃었던 곳이다. 당시 팔라우에 징용 징집당한 한국인들은 약 6000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 전 의원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남태평양의 외딴 섬으로 끌려간 한국인들은 가축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며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혹사를 당했다. 이들은 매일같이 살인적인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으며 그중 무려 2000여 명 이상이 질병과 굶주림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특히 상당수의 여성들은 이곳까지 끌려와서도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일제의 성노리개 노릇까지 해야 하는 ‘기막힌’ 일들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팔라우에는 당시 한국인이 이곳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운 경험을 했는지를 드러내주는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팔라우 중심을 잇는 다리가 좋은 예. 이 전 의원은 “다리를 지을 당시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다리 이름이 ‘아이고 브릿지’로 불리고 있다는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살인적인 더위와 노동, 배고픔에 시달리며 노동력을 착복당한 한국인들이 공사현장에서 ‘아이고, 이러다 죽겠네’는 말을 노래처럼 했던 탓에 현지인들까지도 이 다리를 ‘아이고 브릿지’로 부르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국내에서 이들을 기억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