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전 대표는 자서전을 통해 가족과 함께 한 청와대 시절, 스물 두 살에 맡게 된 퍼스트레이디 역할, 청와대를 떠나 세상의 무서움을 절감한 시절, 정치에 입문해 야당 대표로서 남긴 2년여 간의 족적 그리고 대선주자로서의 포부 등을 비교적 상세하게 담았다.
특히 선친인 고 박정희 대통령과 관련된 비사가 눈길을 끌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자서전에서 “아버지는 70년대 중반부터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생각을 하고 계셨다. 한 번은 9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채 1년도 안되었을 때 ‘차기 대통령으로는 누가 적합할까’라고 물은 적이 있다”고 술회했다. 또 지난 73년 ‘김대중 납치 사건’이 언론에 보도됐을 당시에는 “아버지가 쓸데없는 짓을 했다며 아주 못마땅해 했다. 그 때 아버지는 북한이 한국 정부를 궁지로 몰려고 벌인 일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학창시절과 관련한 아련한 추억도 언급했다. 서강대 전자공학과 70학번으로 미팅 한번 못하고 공부에 빠져 이공학부를 수석 졸업할 정도로 모범생이었지만 딱 한 차례 ‘일탈’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강의실에 들어가는 척 하다 경호팀의 눈을 피해 명동으로 향한 뒤 ‘천일의 앤’이라는 영화를 보고 ‘윈도 쇼핑’도 하며 찻집에서 차를 마시는 여유를 즐겼다고 박 전 대표는 회고했다.
선친 서거 후 청와대를 떠나 생활할 당시에는 ‘세상 인심’에 대한 슬픔과 분노의 감정도 싹텄다고 적었다. 그는 “아버지와 가까웠던 사람들조차 싸늘하게 변해가는 현실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며 “사람이 사람을 배신하는 일만큼 슬프고 흉한 일도 없을 것이다. 상대의 믿음과 신의를 한번 배신하고 나면 그 다음 배신은 더 쉬워지면서 결국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한 상태로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고 주장했다.
‘정치인 박근혜’와 관련해서는 2005년 4·30 재·보선 당시 여당 후보에 비해 30% 포인트나 뒤졌던 경북 영천에서 ‘잠은 집에서’라는 원칙까지 어겨가며 ‘올인’한 덕분에 승리한 일과 2005년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 통과와 관련해 박세일 전 정책위의장이 의원직을 사퇴한 것을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꼽았다.
박 전 대표는 자서전 말미에 “나의 인생에 또 다른 운명의 길이 펼쳐지고 있다. 나는 그것을 피하지 않을 것”이라며 “나에게 주어진 사명은 바로 ‘새로운 희망을 만드는 일’”이라는 말로 대선경선 출마의 변을 대신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