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담 후세인 | ||
그녀의 이름은 팔리소우라 랍소스(54). 바레인에 살고 있던 그리스 대부호의 외동딸로 태어난 그녀는 30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대통령의 정부로 지내왔다. 그랬던 그녀가 작년 7월 이라크 국내 반체제조직인 ‘이라크국민의회’의 도움으로 국외로 탈출, 이후 이라크 정보기관의 수색을 피해 도망다니면서 이곳저곳을 전전하는 망명생활을 계속해오고 있다. 그런 그녀가 도망지 중 하나였던 태국에서 극비리에 충격인터뷰를 나누었다.
그녀가 사담 후세인을 처음 만났던 것은 그녀 나이 18세의 일, 후세인이 29세 되던 해였다. 아버지의 사업차 세 살 때 바그다드로 이주해온 그녀는, 그곳에서 아직은 젊었던 사담 후세인을 처음 만나게 된다. 그녀는 무엇보다 그의 잘생긴 외모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검은색 머리와 빛나는 눈동자.
물론 후세인 또한 그녀에게 끌렸던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눈길로 그녀를 주시했다고 한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후세인은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멋진 매너와, 자상함을 가진 그가 그녀가 마음을 사로잡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만난 지 2주째 되던 어느 날 밤, 그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밤의 스트레인저’를 틀어놓고, 위스키를 마시고 있던 그녀를 달콤한 말로 유혹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취중이었고, 두 사람 모두 상당히 기분이 고양되어 있었으므로 자연스럽게 둘은 잠자리로 이어졌다. 그녀에게는 후세인이 첫남자였는데, 이에 반해 후세인은 이미 여자 다루는 법을 잘 알고있는 듯 능숙하게 그녀를 리드해나갔다고 한다.
문제는 그녀는 크리스천이었고, 후세인은 이슬람교도라는 종교의 벽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된 그녀의 부모가 후세인과 떼어놓기 위해 그녀를 잠시 레바논으로 가게 한다. 이렇게 바그다드를 떠난다는 말도 전하지 못하고 그녀는 일단 후세인과 헤어지게 된다.
70년에 다시 바그다드로 돌아온 그녀는 한 미국인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고, 그 사이에 두 딸을 낳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행복도 잠시. 그녀를 포기하고 있지 않았던 후세인이 그녀를 찾아낸 것이다.
어느 날 밤 그녀의 집으로 낯선 남자들이 들이닥쳤다. 그녀에게는 남편이 국외추방당했다는 소식만 알려준 채 매일 밤 자택에서 감시를 당하는 생활이 시작됐다. 두 딸은 아직 어렸고, 남편은 백방으로 수소문해봐도 전혀 소식불통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그녀는 변호사를 찾아갔지만, 오히려 비밀경찰의 감시를 피하는 길은 남편과 이혼하는 일밖에 없다는 기가 막힌 대답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2주일 후 그녀를 재판소로 데려간 변호사는 그녀의 이혼수속을 밟았고, 그녀를 이슬람교도로 개종까지 시켰다. 그것이 1972년의 일. 영문도 모르는 채 당하기만 하던 그녀가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는 후세인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 이듬해가 되어서였다. 당시 바스당의 부당수를 지내고 있던 후세인이 그녀를 찾아왔던 것. 그리고 첫인사가 “이혼 축하해”였다.
▲ 팔리소우라 랍소스 | ||
이렇게 해서 그녀는 다시 후세인의 정부가 되었다. 그가 밤일이 생각나서 그녀를 찾아오는 날이면, 그녀는 침대로 향하는 수밖에 달리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녀가 그를 두려워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그에게 만족감을 주는 것이라 생각한 그녀는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매번 노력했었다고 덧붙였다.
섹스가 끝나고, 그가 침대에서 사라지고 나면 그녀는 후세인을 볼 수가 없었다. 물론 그는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고 한다. 그녀는 후세인으로부터 ‘너는 젊은 시절부터 쭉 나의 여자’라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다고 한다. 망명 후 후세인도 비아그라를 사용하고 있다는 보도를 읽은 적이 있는데, 후세인은 매우 정정하기 때문에 그런 약은 절대 필요하지 않다고도 덧붙였다.
77년부터 80년까지 후세인은 국내외 정치문제로 상당히 바쁜 나날들을 보내게 된다. 그녀를 신경쓸 수 없게 되자, 그가 찾아낸 묘책은 다름아닌 그녀를 자신의 사촌과 재혼하도록 하는 것. 그녀는 그대신 그리스로 돌아가 살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녀의 뜻대로 그리스로 돌아가 두 번째 남편 사이에서 장남을 낳았는데, 그 사실을 안 후세인은 그녀의 남편에게 그녀와 성관계를 갖지 않도록 명령을 내렸다.
평온한 일상은 다시 깨졌다. 군인이었던 남편이 80년부터 발발한 이란이라크 전쟁터로 불려가게 된 것. 그것과 동시에 그녀는 다시 바그다드에 있는 후세인의 곁으로 불려오게 된다. 후세인은 자신의 궁전 한곳에 그녀를 살게 했다. 그때부터 그의 일상생활은 그녀의 눈으로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
후세인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반드시 궁전에 있는 풀장에서 수영하는 것이 일과다. 정력적인 남자다움을 과시하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했던 그에게는 그녀말고도 많은 정부들이 있다고 했다. 후세인은 또한 위스키를 자주 마셨는데, 취하면 형편없는 사내로 바뀌었고, 더욱 더 잔혹해졌다고 한다. 어떤 때는 80명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그리고나서 그는 자신의 방에 돌아와 사람들을 고문하고 있는 모습을 담은 비디오를 감상하기도 했다.
후세인의 아내는 성품이 거칠지만 과묵한 사람으로서 수많은 정부를 거느리고 있는 남편의 행동에 대해서는 묵인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도 자신의 입장에는 상당히 불만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충족되지 않은 남편에 대한 마음을 돈과 장남인 우다이에 대한 집착으로 채워나갔다.
그의 장남인 우다이 후세인은 아버지 대통령의 후계자로 지목되었으며, 일설에는 아버지 이상으로 잔혹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전해진다. 실제 우다이는 그런 소문대로 지금까지 수도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그녀의 딸들을 강간해오고 있다고 한다. 큰딸은 15세 때, 우다이의 꼬임에 넘어가 약물을 마시고 강간당하고 말았다. 둘째 딸은 우다이의 남동생인 쿠사이에게 강간당했다. 이 두 형제는 그녀에게 잊지못할 고통만을 안겨준 것.
장남 우다이는 사담 후세인조차 두려워하고 있는 존재라고. 후세인도 혹시 아들에게 자신이 잠들어 있는 새 죽임을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는 정도이며, 심지어 아들을 암살하려고조차 했었다고 한다.
사담 후세인에게 있어 우상은 쿠바의 카스트로, 리비아의 카다피, 빈 라덴 단 3명. 그는 이들에 이어 4번째 영웅으로 등극하고자 계획하고 있다.
그저 자유가 갖고 싶어 그녀는 작년 7월 죽을 각오를 하고 후세인으로부터 도망쳐 나왔다고 한다. 혹시라도 들킬까봐 모든 것을 그대로 두고 옷만 입은 채 탈출했을 정도라고.
한편 그녀의 모국인 그리스는 그녀를 귀찮은 존재로만 보고 있기 때문에 도와줄 생각을 전혀 하고 있지 않다. 요르단의 암만을 경유해 탈출해서 지금 있는 곳까지 어찌됐건 무사히 지내고는 있지만, 항상 공포를 떨쳐 버릴 수 없는 것이 망명자인 그녀의 신세라고 한다. 나운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