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주인공인 마루야마 다카미씨(52)는 마약거래법 위반과 총기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90년부터 97년까지 미국의 감옥에서 생활했다. 미국의 형무소는 죄질의 무게에 따라 1단계부터 4단계까지 분류되어 있다. 마루야마씨가 수용된 곳은 살인을 저지르고 종신형을 선고받은 이른바 가장 위험한 흉악범을 수감하는 4단계의 중범죄 형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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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루야마 다카미씨 | ||
그 결과 미루야마씨는 매해 수십억이라는 검은 돈을 수중에서 주무르면서 ‘지하세계’에서 ‘일본인 마약왕’으로 화려하게 등극했다. 그러던 중 마약조사관이 벌인 함정수사에 그만 덜미를 잡혀 90년 10월25일 미국 경찰에 체포되었다. 거래로 위장한 조사관들이 현장을 덮친 것이다. 마루야마씨는 자신의 페라리 승용차를 타고 전력질주했다. 28대의 경찰차가 그를 뒤쫓았고 헬리콥터가 출동했다. 그의 도주행각은 ‘채널4’를 통해 전미국으로 생중계됐다.
경찰에 잡힌 마루야마씨는 징역 13년을 언도받고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 남쪽에 있는 ‘뮤크리크 스테이트’ 형무소에 수용되었다. 이곳에는 종신형을 언도받은 죄수들과 금고10년형을 선고받은 흉악범 3천 명이 수용되어 있었다. 사막 한가운데 자리한 이 형무소는 여름이면 45℃를 웃돌았다. 울타리는 이중보안이 되어 있었고, 그 사이에는 고압전류가 흐르고 있어 누구라도 손만 대면 그 자리에서 검게 타버리고 마는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형무소 내에는 총기사용구역이 있었는데, 죄수들이 조금이라도 규칙에 어긋나는 짓을 하면 여지없이 간수가 총을 뽑아들었다. 4단계의 감옥답게 ‘사전경고’조차 없었다. 총소리는 거의 매일 들려왔다.
중범죄자 3천 명이 같이 있다보니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싸움이 일어났다. 싸움이 벌어지면 제일 먼저 형무소 안의 사이렌이 울린다. 그것은 ‘움직이는 것은 모두 쏴 버린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때는 바닥에 엎드려야만 살 수 있었다.
간수들은 사이에는 이런 허점을 이용해 이른바 ‘죄수 죽이기 게임’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간수들은 사전에 ‘개’로 불리는 심복죄수에게 자신이 지정한 죄수와 싸움을 하라고 시킨다. 그리고 싸웠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지목한 죄수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다. 이 모든 과정은 다른 동료 간수들로부터 5달러씩의 관람료를 받은 후, 감시탑에서 모두가 보는 가운데 진행됐다.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지켜야할 세 가지 항목이 있다네. 첫째 그 누구도 믿지 말게나, 그리고 앞은 안 봐도 좋으니 뒤를 조심하게. 마지막으로 눈은 감고 있더라도 귀만은 깨어있어야 한다네.”마루야마씨에게 들려준 한 80세 노죄수의 주의사항이었다.
형무소 안은 그야말로 상대에게 한번 얕보이면 끝장이었다. 하루는 부루터스라는 이름의 거구가 마루야마씨에게 일본의 전통기예인 가라테를 아느냐고 접근해 왔다. 마루야마씨는 겁내지 않고 가라테의 기초를 보여주겠다며 재빨리 부루터스의 숨통을 조였다.
“일본인은 한번 싸우면 끝장을 보지. 이렇게 수도(手刀)로 숨통을 조이고 상대를 죽인다네. 나는 사람을 어떻게 하면 죽이는지 알고 있거든.어때 한번 죽어보겠나?”
그 이후로는 마루야마씨를 건드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간수 한 명에게 상습적으로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다. 간수는 마루야마씨와 마주칠 때마다 신체검사를 하겠다며 즉석에서 옷을 벗게 했다. 그리고 간수가 보는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항문을 보여줘야만 했다. 식당에서도 운동장에서도 여자간수가 보는 앞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실로 치욕적인 학대였지만, 형무소에서 지내려면 보통의 정신상태로는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포기하고 즐겁게 당하기로 마음먹었다.
형무소 안에는 마약거래도 만연되어 있었다. 간수들은 용돈벌이로 죄수들에게 얼마간의 돈을 받고 몰래몰래 마약을 반입시켜 주었다. 감옥 안이었지만 돈만 손에 쥐어주면 술, 칼, 라이터 등 구할 수 없는 것이 없었다. 여자문제 또한 ‘남자 매춘부’ 몇 명이 해결해 주었다. 오럴섹스는 5달러, 10∼20달러만 내면 항문 성교를 할 수 있었다.
마루야마씨는 운 좋게도 그후 학력과 능력을 인정받아 캘리포니아에 있는 2단계의 형무소로 이송됐다. 그곳은 간수들이 난사하는 총탄도, 싸움도 존재하지 않는 ‘천국’이었다. 미루야마씨는 97년 4월에 만기 출소 후 국외추방돼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는 앞으로는 자연 속에서 제3의 인생을 살고 싶다고 털어놓는다. 나운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