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영희의 당시 모습으로 일본<주간포스트>가 최초로 공개했다. | ||
북한에서는 김정일의 가족이나 자택에 관한 정보는 모두 ‘국가기밀정보’에 속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공표된 바가 없다. 그중에서도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퍼스트 레이디로 불리는 고영희에 대한 정보는 극비 중의 극비로 정보자체가 한정되어 있는 형편이다. 그런 고영희의 옛날 사진과 근황 등이 최근 일본의 <주간포스트>에 공개됐다.
고영희는 놀랍게도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교포다. 김정일의 처조카이자 로열 패밀리의 일원이었던 이한영씨(한국에 망명 후 97년에 암살)가 쓴 저서에는 고영희에 관해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고영희는 1953년에 일본에서 태어나 60년대 전반에 가족 모두가 북한으로 귀향한 재일교포다. 고영희는 72년에 무용수로 만수대예술단에 입단했고, 73년과 74년에 열린 만수대예술단 일본공연에서 뛰어난 미모와 춤솜씨로 각광을 받기도 했다. 이외에도, 단편영화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다.”
53년생이라면 그녀 나이 올해로 50세가 된다. 고영희의 출신지는 오사카(교토나 도쿄라는 설도 있다)로 전해지고 있다. 일본은 1959년부터 일본에 거주하던 재일교포들을 북한으로 송환하는 귀국사업을 승인했다.
이 사업을 통해 9만3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북한으로 건너가게 됐는데, 이때 북한으로 건너간 고영희의 부친은 ‘북한 유도의 창시자’로 유명한 인물이기도 하다.
“고영희의 부친 고태문은 평양시 체육단 유도 감독을 역임했고, 북한 유도 교육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귀국한 대다수의 경우 북한의 수도인 평양으로는 갈 수 없고, 지방에서 생활해야만 했는데, 고씨 일가는 예외였다. 아이들과 함께 평양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허가가 난 것이다. 이것은 다름아닌 고영희의 부친 고태문이 유도 지도자로서 북한으로부터 인정받아, 특별대우를 받았기 때문이다”라고 이한영씨는 기술하고 있다.
이렇게 북한으로 건너간 고영희가 그후 북한을 대표하는 ‘만수대예술단’에 입단을 허락받아 수석무용수로서 두각을 나타냈고, 이후 김정일과 70년대 후반이 되어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의 만남은 김정일이 밤마다 열었던 ‘비밀파티’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 고영희(오른쪽)는 70년대 후반 ‘비밀파티’에서 김정일을 처음 만나 총애를 한몸에 받았다. | ||
고영희를 한눈에 마음에 들어한 김정일은 이후 연습실까지 직접 찾아와 연습장면을 관람하는 등 그녀에게 서서히 열을 올렸다. 이렇게 70년대 후반부터 고영희는 김정일의 총애를 한몸에 받게 된다.
재일교포 출신의 고영희가 ‘김정일의 애인’이 되자 일본에서 귀국한 귀국자사회에도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다. 그전까지는 일본에서 북한으로 귀국한 사람들의 경우 조총련 간부 등을 제외하고는 조선노동당에 입당하는 것이 허가되지 않는 등 여러 가지로 냉대를 받아왔다. 그러나 고영희가 김정일의 애인이 된 70년대 후반부터는 귀국자의 입당이 받아들여졌으며, 또한 간부로 등용되는 길도 열렸다. 그만큼 고영희라는 존재는 컸다.
그러던 고영희는 81년 김정일의 아이를 낳는다. 김정일의 ‘차남’이 되는 ‘김정철’. 고영희가 낳은 이 김정철이라는 존재가 최근 ‘김정일 왕조’ 내부 권력균형을 크게 좌우하는 존재로 주목받고 있다.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은 2001년 5월, 일본 나리타공항으로 불법입국하려다 적발되어 국외추방되는 바람에 일약 전세계 유명인이 된 적이 있다.
71년, 김정일의 또 다른 내연의 처인 성혜림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김정남은 그때까지만 해도 ‘김정일 왕조’의 후계자로 확실시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약속된 지위가 별안간 위태위태해지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는 고영희의 아들 김정철의 이름이 새로운 후계자로 들려오고 있다. 재일교포 출신의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 흠이라면 흠이지만, 그렇게 치자면 김정남의 가계도 북한 사회에서 가장 낮은 출신성분인 남한의 지주 출신이다. 그러나 양쪽 모두 김정일의 결정이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므로, 서로간에 필사적으로 경쟁을 해야 하는 셈이다.
이는 장남 ‘김정남’ 대 차남 ‘김정철’이라는 이복형제의 경쟁일뿐만 아니라 ‘김정남’ 대 ‘고영희’의 대결로도 이어져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고영희는 장남 김정남의 존재에 대해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한다.
“정철이 태어난 후 고영희는 강한 영향력을 갖기 시작했으며, 성혜림에게 라이벌 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말로는 표현하고 있지 않지만, 고영희의 꿈은 정남이 아닌 자신이 배 아파 낳은 정철이 후계자가 되는 것일 것이다. 고영희는 그 꿈을 위해 자신의 심복들을 하나둘 늘려 나가고 있으며, 서서히 성혜림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다. 그런 모습에 우리 어머니는 크게 반발했고, 그녀에 대한 나쁜 감정을 애써 감추지 않았다”고 이한영씨 또한 묘사하고 있다.
▲ 평양시 교외에 외치한 55호 관저. | ||
이 ‘김현 후계자설’이 나온 것은 지난해 일본에 온 북한 당간부 강연회에서 선전선동부담당 서기에 ‘김현’이 취임했다고 전해지면서부터였다. 이 자리는 과거 김정일이 담당했던 자리로 후계자에 오르기 위한 제1직위이다. 그러나 정작 김현 본인은 지도자가 될 그릇이 아니라며 야심을 겉으로 드러내고 있지는 않다고 한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내정된 것은 김일성 주석이 환갑을 맞이하던 해. 지난해 2월16일 환갑을 맞이한 김정일이 다음 후계자를 결정하지 않을까 기대를 모았지만 후계자 발표없이 김정일의 환갑잔치는 끝이 났다. 따라서 김정일의 뒤를 이을 후계자들의 3파전은 더욱 혼미를 더해가고 있다.
“김정남은 이미 당과 군의 강력한 지도자와 측근 세력이 있기 때문에, 만약 김정남이 후계자에서 제외되고 김정철이나 김현 등 다른 인물이 후계자가 된다면 파벌이 형성될 것이다. 그리고 항쟁도 같이 일어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간단하게 김정남을 안된다고만도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만약 김정남이 후계자로 지명되고 김정철이 추방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고영희는 가만히 앉아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평양에서는 우리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격렬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의 현대코리아연구소 실장은 덧붙였다.
김정철에 관해서는 95년 당시, 스위스 베른국제학교에 다닌다는 사실이 여러 망명자들이 쓴 수기를 통해 확인되었지만, 그외의 소식은 거의 전해지고 있지 않다. 현재 20세가 지난 젊은 김정철이 어느 만큼의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인물일지는 미지수이다.
고영희는 현재 김정일이 살고 있는 평양시 교외에 자리한 ‘55호관저’에 살고 있다. 저택 부지만 10만 평, 담장으로 둘러싸인 주변은 출입금지지역으로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만약 그곳까지 포함한다면 실제 규모는 2백50만 평이라는 어마어마한 크기에 달하는 말 그래도 궁전이다.
광대한 부지 안에는 수영장, 유원지, 경마장, 골프장, 사격장 등이 건설되어 있으며, 1천5백 명이 넘는 경호부대가 상주하고 있다. 이 정도의 삼엄한 경비와 호화로움만 보더라도 고영희가 김정일로부터 얼마나 총애를 받고 있는지를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김정일 왕국의 차세대 주자가 누구에 손에 돌아가느냐에 따라 55호관저의 호화로움을 계속 고영희가 누릴지 아니면 새로운 주인에게 넘겨야 할지가 결정될 것이다. 나운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