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2일 뉴욕에서 회고록 <마이 라이프> 출간 기념 사인회를 갖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57)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지난 22일 전세계 동시 출간된 회고록 <마이 라이프>에서 재임기간 내내 그를 괴롭혔던 ‘섹스 스캔들’에 대해 부분적으로 언급한 그는 대부분 ‘후회스럽고 창피한 일’이라고 술회하면서 착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초판으로 1백50만 부가 발행됐지만 이미 예약주문이 2백만 부를 넘어설 정도로 미 서점가를 강타하고 있는 9백57쪽 분량의 이 책은 ‘해리 포터 열풍’과 비교되는 등 많은 관심 속에서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은 그의 정치적 역량이나 대통령으로서의 성과 등 그의 ‘성공 스토리’보다는 ‘섹스 스캔들’에 더 쏠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문제는 그가 회고록에서 ‘얼마나 솔직했는가’하는 점이다. 수많은 스캔들 중 그가 비교적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은 모니카 르윈스키와 제니퍼 플라워스 스캔들로서 각각 5쪽, 16쪽에 걸쳐 자신의 당시 심경과 상황에 대해 적고 있다.
모니카 르윈스키
르윈스키 스캔들 내용 중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그가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고 밝힌 시점이다. 이에 대해 클린턴은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995년 말 의회 휴회 기간 동안 백악관에는 매우 적은 인원만이 출입할 수 있었고, 대부분은 밤 늦은 시간까지 일했다. 나는 그 무렵 모니카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고, 그후 11월부터 그녀가 백악관에서 국방성으로 자리를 옮겼던 4월까지 다시 몇 차례 관계를 가졌다. … 그후 10개월 동안 가끔 전화 통화만 했을 뿐 나는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클린턴이 언제 처음으로 르윈스키와 관계를 가졌는가 하는 점은 지난 1998년 탄핵 여부를 결정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부분이었다.
당시 르윈스키는 “클린턴과 처음 관계를 가졌던 것은 의회가 예산안 논쟁으로 인해 잠시 휴회하고 있던 1995년 11월15일이었다”며 비교적 구체적인 주장을 했던 데 반해 클린턴은 “그렇지 않다. 르윈스키와는 1996년 초, 그리고 1997년 초에 각각 한 차례씩 만났다”고 엇갈리는 주장을 했던 것.
이에 대해 당시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는 “엄연한 위증죄”라고 클린턴을 몰아 붙였으며, 결국 이 부분은 중요한 탄핵 사유 중 하나에 포함되었다. 또한 스타 검사는 “클린턴이 스캔들 시점에 관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부하 직원인 스물두 살 먹은 젊은 인턴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였다”고 주장했다. 즉 20대 초반의 풋내기 인턴을 유혹해 관계를 가졌다는 것과 이미 인턴을 마친 정직원과 관계를 가졌다는 것 사이에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는 것.
클린턴은 결국 회고록에서 자신의 거짓 증언은 인정했지만 스타 검사에 대한 불편한 심기는 여전히 누그러지지 않은 듯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모나카 르윈스키,폴라존스,제니퍼 플라워스(왼쪽부터) | ||
또한 그는 “1998년 탄핵은 공화당 지도자들이 나의 거짓이나 부도덕성을 문제삼은 게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정치적 목표에 동의하지 않는 일종의 권력다툼이었다. 탄핵은 불법이었기 때문에 나는 이 과정을 오점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싸우는 과정은 영광의 상징이었다”고 술회했다.
또한 그는 르윈스키와의 관계에 대해서 “모두 내 실수였고, 잘못이었다”면서 자책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에 대해 나는 스스로에게 화가 났으며, 이듬해 봄 르윈스키를 다시 만났을 때 이건 나에게도 옳은 일이 아니고, 내 가족에게도 옳은 일이 아니며, 또 그녀에게도 옳은 일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더 이상 이 짓을 못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그의 고백이 진실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BBC는 클린턴이 ‘성적인 관계(sexual relations)’라는 다소 형식적인 의미 자체에만 국한되어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르윈스키 스캔들 이후에 관해서는 마치 다른 사람의 일인 양 “왜 그런 실수를 저질렀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는 등 설득력 없는 ‘자기 연구’에 관해서만 묘사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르윈스키와의 관계로 시달리는 동안 나는 신약성경 요한복음 8장7절(‘사람들이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 죽이고자 하자 예수는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했고, 사람들은 흩어졌다’)이 새겨진 돌을 갖고 있었다. 나는 너무나 많은 돌을 맞았고, 내가 자초한 상처들을 통해 전세계에 노출되었다. … 어떤 점에서 이것은 오히려 해방을 의미했다. 이제 더 이상 숨길 것이 없었다.”
또한 그는 르윈스키 사건에 대해서 “도덕적으로 끔찍한 잘못이었다. 늙은 악마의 소행이었다”고 묘사하면서 “나는 피곤하거나 화가 나거나 외로울 때면 더욱 자기파괴적이거나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털어 놓았다.
한편 스캔들 이후 힐러리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짧게 언급했던 그는 결과적으로 “적들 때문에 힐러리와 다시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또한 “수개월간의 공식적인 부인 끝에 힐러리에게 르윈스키와의 관계에 대해 인정하자 그녀는 마치 복부를 강타당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고 말했으며, “주위에 카메라가 없으면 아내와 딸은 나에게 거의 말을 붙이지 않았다”면서 처음에는 가족과의 관계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나타냈다.
“이후 두 달 정도를 백악관 침실 옆의 거실에 있는 소파에서 잠을 잤다”고 말한 클린턴은 탄핵 과정이 끝난 후 “마침내 힐러리는 기분을 풀었으며, 다시 웃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탄핵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세 명의 목사와 함께 백악관에서 상담 시간을 가졌으며, 자신과 힐러리가 1년 동안 ‘진지한’ 상담 프로그램을 받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제니퍼 플라워스
르윈스키 스캔들에 비하면 다소 구체적이지 않지만 클린턴은 플라워스 스캔들에 관한 내용도 5쪽 가량에 걸쳐 언급하고 있다. 1992년 민주당 경선이 한창일 무렵 불거진 플라워스 사건에 대해 클린턴은 책에서 단호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사실 12년간의 불륜 관계는 없었다.”
클린턴이 플라워스를 처음 만난 것은 법무장관 재직시절이던 1977년 무렵이었다. 방송국 기자로 클린턴을 자주 인터뷰했던 플라워스는 당시 “클린턴과 12년간 불륜 관계를 가졌다”는 폭탄 선언을 함으로써 클린턴을 궁지에 몰아 넣은 바 있다.
하지만 클린턴은 책에서 “나는 그녀를 가엾게 여겼다. … 나는 플라워스가 이상적이지 못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자신의 일에서도 좌절을 겪었지만 계속 열심히 살아가는 강인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면서 비록 자신을 흔들긴 했지만 그녀에 대한 적대감은 없다는 뜻을 나타냈다.
“우리는 스캔들 보도에 대하여 방어하고, 우리의 품위를 떨어뜨리거나 인신공격이라는 불놀이에 석유를 더 붓는 일이 없이 제대로 된 쟁점으로 넘어가고 싶었다. … 진행자 크로프트는 먼저 플라워스의 이야기가 사실이냐고 물었다. 내가 사실이 아니라고 하자, 그는 나에게 불륜 관계가 없었냐고 물었다. … 그의 유일한 인터뷰 목적은 구체적인 사실 인정을 얻어내려는 것이었다. 마침내 제니퍼 플라워스에 대한 일련의 질문들 뒤에 그는 힐러리와 내 문제로 돌아와, 우리의 결혼을 ‘협정’이라고 불렀다. 나는 한 대 치고 싶었다. 그러나 대신 이렇게 말했다. ‘잠깐만요. 크로프트씨는 지금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을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협정이나 양해가 아닙니다. 이것은 결혼입니다.’”
폴라 존스
클린턴은 아칸소 주지자 재직시절이었던 1991년, 당시 주정부 직원이었던 폴라 존스를 호텔방으로 불러 성희롱한 혐의로 지난 1998년 피소된 바 있다. 당시 4년 동안 지리하게 이어졌던 송사 끝에 클린턴은 85만달러(약 9억원)의 합의금으로 사건을 종결시켰으며, 당시 이와 같은 결정을 내렸던 배경에 대해 책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는 거액의 돈으로 폴라 존스 사건을 종결지었지만 사과는 하지 않았다. … 나는 이렇게 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왜냐하면 나는 법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인 동기에 의한 사건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국민들에게 남은 2년 동안은 그들을 위해서 일하겠노라고 약속했었다. 존스 사건으로 단 5분도 더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4년 동안의 법적 공방이 진행되는 동안 그는 오히려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고 술회하면서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집무실에서 두세 시간 정도 홀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때 성경책이나 믿음과 용서에 관한 책을 읽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