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 ||
우선 신문에 나오는 총리의 동정을 근거로 1년간 고이즈미 총리의 노동시간을 계산해봤다. 외국에 나가 있어서 하루 스케줄을 확실히 알 수 없는 22일을 빼면, 총 노동시간은 약 2천3백 시간. 일반 노동자의 평균노동시간인 약 2천 시간을 웃돌고 있다. 한 정치부 기자에 따르면 “2004년은 참의원 선거 때문에 유세를 다니느라 총리에게는 비교적 바쁜 한 해였다”는 것.
휴일은 78일. 하루 노동시간이 3시간 이하인 날(주말에 이벤트에 참석하는 등)은 22일이었다. 이것을 반휴일로 계산하면 1년에 89일을 쉬는 것으로, 한 달에 7.8일을 쉰다는 계산이 나온다. 앞서 나온 정치부 기자는 “고이즈미 총리는 제대로 휴식을 취하는 편이다. 지난 8월에는 모두 합쳐 19일간 휴가를 냈다”고 한다.
국내 정치나 외교로 늘 긴장해야 하는 총리의 일을 노동시간이나 휴일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총리의 동정을 자세히 확인해보면 또 다른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총리관저 출근시간. 10시 이후에 출근하는 날이 올 한 해 1백 일이나 되었다.
하시모토 전 총리의 비서관을 지낸 에다는 “총리대신이라는 자리는 격무에 시달리기 때문에 쉴 수 있을 때 확실히 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도 고이즈미 총리는 지나치다. 각료회의가 있는 날을 빼고는 10시 이후에 스케줄을 잡도록 비서관에게 말해두는 것 같다. 나는 세 분의 총리를 모셨지만 이런 총리는 본 적이 없다”고 지적한다.
매주 두 차례 열리는 각료회의는 국회가 폐회중일 때는 9시, 개회중일 때는 10시에 시작한다. 그리고 총리는 예산안 심의 등 아침 9시부터 국회에 출석해야 할 때도 많다. 그런 총리의 일상을 생각하면, 10시 이후에 출근하는 날이 1백 일이 넘는다는 것은 이상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하시모토나 오부치, 모리 등의 역대총리들에게 10시 이후에 출근했다는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더구나 늦게 출근하는 이유가 총리의 늦잠 자는 습관 때문이다. 이런 습관은 나라의 위기관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중국의 원자력잠수함이 일본 영해를 침범한 11월10일, 고이즈미 총리가 관저에 나온 것은 10시48분이었다. 이라크에서 일본인 인질 납치사건이 발생한 직후인 10월28일에는 10시22분, 니가타현의 지진이 난 직후인 10월25일에는 10시46분이었다.
에다는 “(출근시간이) 너무 늦다. 공저에 있을 때는 비서관을 통한 전화나 팩스로 연락을 취한다. 관저에는 위기관리, 정보집약 센터가 있어 24시간 체제로 자위대나 경찰, 소방 등의 정보가 즉시 들어온다. 지진이 발생했을 때 영화제 회장에서 즉시 돌아온 것은 좋았지만, 곧바로 관저로 갔어야 했다”고 말했다.
중국 원자력잠수함 사건 때는 늦은 정보전달이 문제가 됐다. 고이즈미 총리에게 소식이 전해진 것은 사건 발생으로부터 두 시간 후였다. 해상경비행동이 발령됐을 때 잠수함은 이미 공해상에 있었던 것.
관저 출입기자에 따르면 “아침에 약한 것은 분명하다. 아침 일찍 공저를 나설 때는 누가 봐도 비실비실한 모습으로 차에 오른다. 하루에 두 번, 오전과 오후에 회견이 있는데, 오전 회견 때는 늘 저기압”이라고 한다.
한 자민당 의원은 총리가 의원 시절부터 아침에 약했다며 다음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우리는 선배의원들로부터 아침에는 자민당 집회에서 공부를 하고, 저녁에는 정·관·재계의 관계자들과 인맥을 만들기 위해 회식을 하는 것이 장관이나 총리가 되는 길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당시 고이즈미는 아침 집회에는 나타나지 않았고, 밤에는 언제나 제멋대로 술을 마시고 다녔다. 점심이 지나서야 의원회관에 나와서는, 국회 안에 있는 도서관에서 늘 스포츠신문을 보고 있었다. 주말에도 선거구로 돌아가지 않고 오페라나 가부키를 즐기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아무도 고이즈미가 총리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런 습관들은 총리가 되어서도 바뀌지 않는 모양이다. 늦잠뿐만 아니라 ‘예술생활’도 계속되고 있다고. 고이즈미 총리가 올해에 본 영화는 <라스트 사무라이> 등 다섯 편. 가부키나 오페라도 있다. 더구나 여름휴가 때는 고교야구와 아테네올림픽 때문에 TV에 빠져 살았고, 마술쇼를 보러 가기도 했다.
앞서 나온 정치부 기자에 따르면 “예술을 접하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지만, 고이즈미 총리의 경우 정치가의 본분인 정책 연구를 너무 소홀히 하고 있다. 관료들이 총리에게 정책에 대해 브리핑을 할 때에도 ‘모두 A4 한 장에 정리해오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제는 ‘A4 총리’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 관료의 입장에서 보자면 고이즈미 총리만큼 속이기 쉬운 사람도 없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그럴듯해 보이면 자세한 부분은 지적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그렇다면 오페라나 가부키를 보러 가지 않는 휴일에는 하루종일 공저에 있으면서 도대체 무엇을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관저 출입기자는 “음악을 듣거나 TV를 본다. 여행이나 동물에 관한 프로그램을 좋아하는데, 버라이어티쇼도 본다고 한다.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시작하는 시간까지 공저로 돌아갈 수 없을 때는 총리 집무실에 남아 끝까지 보고 돌아간다. 휴일에는 자명종 시계도 꺼놓고 자거나, 일어나도 하루 종일 잠옷차림으로 지내는 일도 많다”고 말했다.
앞서 나온 자민당 의원은 “역대 총리들은 훨씬 긴장감이 있었고, 여러 가지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시모토 전 총리는 아침 6시에는 일어나 뉴스를 체크했고, 오부치 전 총리도 CNN을 즐겨 보았다. 모리 전 총리조차도 여러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의견을 듣고자 했다. 그에 비해 고이즈미 총리는 남에게 무엇을 배우고자 하는 자세가 너무 결여돼 있다”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논픽션 작가인 호사카는 “고이즈미 총리가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다양한 독서나 공부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말에 깊이도 없고, 어휘도 적다. 직관적으로 말하는 타입으로, 상대를 설득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대화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 부분이 오히려 지금과 같은 TV 시대에는 어울리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시대적인 지적 쇠퇴가 고이즈미 총리를 낳았다고 생각하니 한심할 따름”이라며 날카롭게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