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인이 된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왼쪽)와 케네디 주니어의 러브스토리가 화제가 되고 있다. | ||
상대에 대한 자신의 호의를 먼저 표시한 측은 의외로 여자인 다이애나였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의 언론들은 다이애나가 케네디 주니어에게 보낸 수차례의 편지를 ‘영혼의 레터’라고 표현하고 있다. 실제로 처녀 적부터 다이애나 왕세자비에게 케네디 주니어는 늘 꿈이었고 동경의 남성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결혼이 캄캄한 암흑속으로 빠져 들자 그에게 편지를 보내 비참한 삶에서 자신을 구출해 달라고 애원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은 최근 새로 나온 사이먼 시몬스의 <다이애나:마지막 이야기(Diana:The Last Word)>라는 책에 자세히 나와 있다. 이 책의 작가 시몬스는 다이애나의 친구였던 사람이다. 그녀에 따르면 1995년에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뉴욕의 한 호텔에서 케네디 주니어를 처음 만났다고 한다.
케네디 주니어는 자신이 창간한 <조지(George)>라는 잡지의 표지 모델로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생각하고 있었고 그래서 만남은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그러나 이 매력적인 남녀의 만남은 급격하게 공적인 목적에서 사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다. 케네디 주니어를 만난 후 다이애나는 사이먼에게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우리는 계속 얘기를 했고 그러다 보니까 어느 순간 침대에 같이 있더라. 정말로 순수한 마음이었고 그는 놀라운 사람이었어.”
사이먼은 “다이애나가 케네디 주니어를 만난 것은 그녀의 일생에서 단 한 번뿐인 순수한 사랑이었다”고 강조했다.
케네디 가문의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케네디 주니어는 다이애나 왕세자비같이 금발의 키 큰 미녀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기회가 되었다면 무조건 사귀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이애나와 만났던 1995년 1월에는 케네디 주니어가 나중에 아내가 되는 캐롤린 베셋을 설득해서 같이 살자고 했을 때이기 때문에 다이애나와 본격적으로 사귀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호텔에서의 만남 이후 두 사람은 편지 왕래를 계속했다고 한다. 영국 왕실의 한 소식통은 “만약 상황이 달랐다면 두 사람은 세기의 커플이 되었을 것이다. 다이애나는 가까운 친구에게 케네디 주니어는 10점 만점에 10점이라고 평가했다. 그녀는 찰스 왕세자에 대해서는 안간힘을 써야 겨우 10점 만점의 1점을 얻을 수 있는 남자라고 평가했다”고 밝혔다.
다이애나는 첫 번째 만남 이후 계속해서 케네디 주니어와 만나려 했지만 기회를 잡지 못했다고 한다. 남편 찰스로부터 버림을 받으면 받을수록 다이애나는 케네디 주니어와의 열정적인 밤을 꿈꾸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케네디 주니어는 다이애나와 자신은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라고 결론을 내렸다. 캐롤린 베셋과의 관계와 아버지에 이은 미국 대통령에 대한 희망 등이 겹쳐서 ‘불가’라는 판정을 내린 것이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그럼에도 케네디 주니어는 다이애나에게 너무 매료돼 그의 아내였던 캐롤린 베셋을 ‘미국판 다이애나’로 만들려고 애를 썼다는 사실이다.
케네디 집안 정보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1996년에 캐롤린과 결혼을 했을 때 그는 캐롤린에게 다이애나처럼 행동하라고 했다. 자원봉사도 하고 언론과도 친해지라고 했다. 케네디 주니어는 아버지처럼 대통령을 하려고 했으며 그는 다이애나가 대중을 끌어당기는 힘이 엄청났듯 아내인 캐롤린도 그러하길 바랐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캐롤린에게 다이애나에 관한 모든 책들을 읽도록 끈질기게 권유했다”고 밝혔다.
1997년 8월 다이애나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케네디 주니어는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느꼈다고 한다. 그로부터 2년도 채 안되어 그는 비행기 사고로 다이애나가 먼저 간 저 세상으로 떠났다.
문암 해외정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