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미 무어와 브루스 윌리스. | ||
지금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이혼 파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특히 ‘이혼 파티’가 처음 시작된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국에서는 이미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은 지 오래. ‘이혼 파티 플래너’ ‘이혼 전문가’ 등 신종 직업도 등장했다. 고객들도 ‘이혼녀’ ‘이혼남’이라는 꼬리표 대신 스스로를 ‘되찾은 싱글’ ‘돌아온 싱글’이라고 말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당하게 “나 방금 이혼했어요!”라고 외치면서 가까운 친구들과 친척들을 불러 조촐한 파티를 즐기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지난 2000년 데미 무어(46)와 이혼한 후 다시 싱글이 된 브루스 윌리스(50)의 경우를 보자. 무어와의 이혼이 서류상으로 공식화되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스트립걸’들을 불러 모아 축하 파티를 즐겼다. 그는 마치 ‘유부남’이라는 압박감을 털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가까운 친구들을 초대한 후 수십 명의 스트립걸들과 함께 질펀한 밤을 보냈다. 대낮부터 시작됐던 이 파티는 밤새도록 이어졌으며, 아침이 밝은 후에야 끝이 났다.
지난 2002년 남편 대니 모더와 결혼하는 데 성공한 줄리아 로버츠(37)의 경우에는 조금 달랐다. 자신의 이혼을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시 유부남이었던 남편을 이혼시키는 데 성공한 것을 자축하기 위한 파티였던 것.
이처럼 미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혼 후 친구들과 함께 술자리를 즐기는 것은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비단 젊은이들만 즐기는 것도 아니다.
<뉴욕타임스>는 유명인사들의 이혼을 전문으로 하는 도미니크 바바라 변호사의 말을 빌어 다음과 같은 중년 부부의 실례를 소개했다.
양쪽 모두 투자 은행가였던 한 재력가 부부가 합의 이혼 후 함께 모여 성대한 ‘이혼 파티’를 벌였다. 양쪽의 하객(?)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의 이혼을 축하해주세요!”라고 말한 이들은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2천만달러(약 2백억원)의 재산 분할 문제가 매끄럽게 진행된 것을 자축한다고 밝혔다.
영국도 사정은 마찬가지. ‘이혼 파티’를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서비스업체들도 속속 등장했다. 고객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 다양한 옵션을 선택할 수 있으며, 기호에 맞도록 1 대 1 상담도 가능하다. 서빙을 돕는 남녀 도우미의 의상 컨셉트를 선택하거나 더 화려한 파티를 원할 경우에는 불꽃놀이를 추가할 수도 있다.
▲ 줄리아 로버츠와 남편 대니 모더. | ||
베이커리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보통 웨딩 케이크나 생일 케이크를 주문받던 베이커리에서 언제부턴가 ‘이혼 축하 케이크’ 주문이 늘어난 것이다. 베를린에서 베이커리를 운영하고 있는 제빵사 스텔라 안드레아도우는 “몇 년 전부터 이혼 축하 케이크 주문이 부쩍 늘었다. 보통 고객들이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어서 판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인기가 있는 케이크의 모양은 반으로 쪼개진 하트나 눈물 모양의 케이크. 한번은 30대 중반의 한 여성이 특이한 케이크를 주문한 적도 있었다. 전 남편 얼굴의 모양을 케이크 위에 크게 그려 달라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 여성은 파티에 초대된 손님들과 함께 환호성을 지르면서 케이크를 자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조용하고 엄숙한(?) 이혼식을 거행해주는 곳도 있다. 결혼식과 동일한 개념의 상징적인 의식으로서 가까운 친척들과 지인들을 초대한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이혼을 선포하는 것. 이혼식은 부부의 사진을 반으로 자르는 것과 함께 미리 준비해 온 이혼 선서문을 조용하게 낭독하는 순서로 이루어진다.
독일 뮌헨에서 ‘이혼식’을 대행해주고 있는 루이제 그라나베터는 “한 달에 보통 20건의 이혼식을 치르고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를 씁쓸하고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많다. 아무리 웃고 떠들면서 이혼을 축하한다고 해도 결혼보다 더 기쁘고 행복할 수 없는 건 사실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