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체포된 것은 2000년 11월. 이유는 러시아인 남자친구 알렉스 때문이었다. 새벽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깨보니 6~7명의 FBI 요원이 방으로 들이닥치고 있었다. 그들은 알렉스의 마약 사업에 관련된 혐의로 나를 체포했다.
그가 나 모르게 내 아파트를 마약 거래 장소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은 나중에 조사관으로부터 들었다.
나는 ‘범죄조직에 의한 대형 마약 거래에 관여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무죄를 주장하고 재판을 할 수도 있었지만, 변호사가 “스스로 유죄임을 인정하는 편이 오히려 가벼운 형을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결국 나는 실형 2년의 판결을 받았다.
“옷을 전부 벗어라!”
연방 형무소에 들어온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날카로운 눈빛의 여성 교도관이었다. 들어가자마자 샤워실로 끌고 가서는 옷을 모두 벗으라고 하는 것이었다. 겁에 질려 옷을 벗자 “엉덩이를 이쪽으로 향하고 몸을 숙여라”로 지시하고는 몸 속에 무언가를 숨긴 것이 없는지 조사했다. 이것이 미국 형무소에서 내가 처음으로 겪은 통과의례였다.
신체검사를 마친 후 얇은 회색의 죄수복으로 갈아입고 감방으로 향했다. 철창 너머로 수감자들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후 22개월에 걸친 복역 생활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하루의 스케줄은 오전 5시 기상으로 시작해서 밤 11시에 취침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 사이에는 주방이나 뜰을 청소하는 등 강제노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 외에는 특별한 규제가 없어 생각보다 자유로웠다. 수감자들은 서로의 방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고, 형무소 안의 매점에서는 화장품이나 과자 등을 얼마든지 살 수 있었다. 심지어 국제전화도 걸 수 있었다.
수용돼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흑인이나 남미계였고, 백인이나 동양인도 조금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유일한 일본인이었다. 하지만 인종 말고도 수감자를 구분지을 수 있는 기준은 또 있었다.
형무소에서 척 봐서 여성이라고 알 수 있는 사람들은 전체 수감자의 약 3분의 2다. 나머지는 남성 같은 외모의 ‘스터드(Stud)’라로 불리는 레즈비언의 남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스터드’도 원래부터 레즈비언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형무소에서 성적인 욕구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남자가 되어 ‘여자 사냥’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형무소 안에서는 수감자들의 신체접촉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손을 잡는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 하지만 교도관의 숫자가 적어 감시가 느슨하기 때문에 샤워실이나 화장실 등 ‘사랑을 나눌’ 장소는 얼마든지 있었다. 나에게도 루시터라는 33세의 흑인 스터드가 끊임없이 관심을 보였다. 언제나 나를 잡아먹을 듯이 쳐다봤지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함께 복역한 동료 중에는 트랜스젠더 여성도 있었다. 미국의 연방 형무소에서는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한 남성의 경우 여성으로 간주하여 여자 형무소에 수감한다. 형무소 안에서 유일한 성전환자였던 라티샤는 30세 정도로 마치 격투기 선수 ‘밥 샙’을 연상시키는 거구였다. 2m 정도의 키에 완력도 굉장했지만, 행동이나 말투는 영락없는 여성이었다. 형무소 안에서는 호르몬 주사를 맞을 수 없다는 것이 라티샤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다른 수감자들은 “날이 갈수록 라티샤의 수염이 진해지고 있다”며 놀리곤 했다. 그런 놀림을 받으면 라티샤는 거울 앞에서 자신의 턱을 보며 슬픈 표정으로 한숨을 쉬곤 했다.
물론 형무소에는 무시무시한 범죄를 저지른 수감자도 적지 않았다. 언제나 연인을 위해 뜨개질을 하던 42세의 즈마라는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입소 전에는 악명 높은 푸에르토리코 갱단의 일원으로, 라이벌 관계에 있던 세력을 35명이나 죽였다며 자랑하곤 했다.
아리무라씨는 형무소 안의 폭력사태에 휘말리는 일 없이 모범수로 약 두 달 정도 빨리 출소해 즉시 일본으로 송환됐다. 지금은 미국에서 있었던 악몽 같은 날을 잊으려 노력하며 평범한 회사원으로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