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에게 가사노동비로 50만달러를 청구한 케이트. 과거엔 ‘주부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 ||
미국 인디애나주 올버니에 거주하는 주부 케이티 톰슨(48)이 정식으로 법원에 전 남편을 고소하는 사건이 발생해서 화제다. 지난 7월 남편과 이혼한 그녀가 요구하고 나선 것은 위자료 대신 5년 반 동안의 가사노동비. 집안청소, 빨래, 요리 등 조목조목 항목별로 비용을 청구하고 나선 그녀가 제시한 액수는 무려 50만달러(약 5억원).
이런 그녀에게 “제정신이 아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녀가 이렇게까지 전 남편을 고소하고 나선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녀는 “5년이 넘도록 오로지 남편의 뒷바라지만 하면서 살아 왔건만 하루아침에 집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동안 난 아내가 아니라 노예로 살았다”면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오랜만에 남편과 만족스러운 잠자리를 가진 톰슨은 남편인 게리(52)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보, 사랑해요.” 하지만 침대에 누운 채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던 남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얼마 전부터 남편과 소원한 느낌이 들었던 톰슨은 이내 불안한 마음으로 재차 물었다. “당신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건가요.”
이어지는 남편의 대답은 가히 충격 그 자체였다. 싸늘한 얼굴을 한 남편은 “옛날엔 그랬지. 그런데 이제는 아냐. 앞으로 30일의 기한을 줄 테니까 당장 내 집에서 꺼져”라고 쏘아붙였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하루아침에 이혼을 강요당한 톰슨은 거의 빈손으로 집을 나와야 했다. 그후 한 달여 만에 몸무게가 11kg이나 줄고 머리카락이 빠지는 등 극심한 이혼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그녀는 지난 5년 반 동안의 결혼 생활을 곰곰이 되짚어 보다가 돌연 울화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자신은 남편에게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만큼 헌신했건만 남편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주말만 되면 유유자적하게 놀러 다니기 바빴던 것이다.
마침내 그녀는 ‘복수’를 결심했다. 지난 5년 반 동안 남편에게 무료로 봉사했던 가사노동을 보상받기로 결심한 것. 이에 그녀는 다음 날부터 일일이 세탁소, 가사도우미 업소, 정원손질 대행업체 등에 전화를 걸어서 ‘단가’를 알아본 후 자신의 5년여 동안의 가사노동으로 환산해 보았다. 이렇게 따진 결과 세탁비는 8만달러(약 8천만원), 집안청소비는 22만달러(약 2억2천만원), 요리비는 19만5천달러(약 1억9천5백만원), 마당청소비는 2백80달러(약 28만원), 집안정리·장식비는 6천달러(약 6백만원), 정원손질비는 7백50달러(약 75만원)라는 계산이 나왔다.
남편을 고소하고 가사노동비를 정식으로 청구할 정도로 그녀가 독기를 품게 된 이유는 뭘까.
물론 이들에게도 결혼 후 1년은 천국과도 같았다. 비록 건물 수리업에 종사하고 있던 남편은 집안일을 도와주지는 못했지만 다정하고 부드러웠으며 무엇보다도 톰슨을 사랑해주었다. 이런 남편을 보면서 그녀는 비록 몸은 힘들지만 완벽한 아내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던 그녀는 일 외에도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기 위해서 늦은 공부까지 하고 있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남편을 위하는 그녀의 마음은 끔찍했다.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남편이 일어나기 전에 커피를 끓이고, 남편이 입고 나갈 옷을 챙겨두고, 남편이 보도록 TV 채널을 맞춰 놓았다. 톰슨은 아침 식사 준비와 설거지, 간단한 집안 허드렛일을 마치고서야 허둥지둥 출근하기 일쑤였다.
퇴근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오후 5시에 퇴근해 저녁식사 준비를 시작으로 밀린 빨래를 하고 집안청소와 마당청소까지 해치웠다. 집안일에 시달리다 보면 자정이 넘어 잠자리에 드는 날이 허다했다.
하지만 남편은 이렇게 고생하는 아내를 절대로 도와주는 법이 없었다. 그가 집안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가만히 앉아서 끓여주는 커피를 마시거나 책을 보거나 TV를 보거나 잠이나 자는 것이었다.
주말 역시 다르지 않았다. 남편은 늘 친구들과 낚시 여행을 가는 등 여가를 즐기느라 바빴던 반면 그녀는 하루종일 집안일에 치여야 했다.
그러던 그녀가 마침내 ‘주부파업’을 선언했다. 결혼한 지 2년이 조금 넘었을 무렵 톰슨은 모든 집안일에서 손을 뗐다. 아예 집 앞에다가 ‘주부파업!’이라는 피켓을 써 붙인 그녀는 남편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 52일 동안 파업을 지속했다. 그녀가 요구한 것은 “남편이 가사를 조금만이라도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것과 “나에게도 가끔은 친구들과 외출하는 등의 여가 시간을 달라”는 것이 전부였다.
당시 ABC TV 토크쇼에 출연했을 정도로 화제가 됐던 그녀의 ‘주부파업 소동’은 남편이 백기를 들어 일단락됐다. 어느 날 꽃다발을 한아름 사 들고 온 남편은 “내가 잘못했다. 앞으로는 잘 해보자”라는 말로써 그녀를 위로했던 것.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결혼 기념일 선물로 크루즈 여행까지 다녀온 이들은 한동안 별 문제 없이 잘 지내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얼마 가지 못해 남편은 예전과 똑같이 행동했으며, 여전히 집안일은 고스란히 그녀의 몫이었다. 오히려 그녀의 가사노동을 당연시 여기면서 “당신은 못생겼다”라거나 혹은 “어느 남자라도 당신 같은 여자는 싫어할 것이다. 나니까 살아주는 줄 알고 고마워해라”는 등 인격모독적인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는 세 번에 걸친 폐렴 수술과 자궁종양 수술을 받고 퇴원한 날에도 서러움을 겪었다. 당시 “적어도 8주 동안은 아무런 일도 하지 말고 집에서 푹 쉬라”는 의사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하는 수 없이 집안일을 해야 했던 것. 이는 “누워있지만 말고 일어나서 집안 청소라도 하면 회복하는 데에도 아마 좋을 것”이라는 남편의 말 때문이었다.
이러한 일들을 모두 보상받고 싶다고 말하는 그녀는 “이것은 돈 문제가 아니다. 그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미국의 모든 아내들을 대신해서 승소하고 싶을 뿐이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남편 게리는 “그녀의 주장은 억지다. 나 역시 헌신적인 남편이었으며 생활비를 대기 위해서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고 반박하면서 자신도 많은 시간 요리를 하는 등 적지 않게 가사를 도왔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그는 자신이 이혼을 결심한 데에는 술을 좋아하는 아내의 주벽이 한몫했다고 말하면서 아내가 요구한 가사노동 청구비를 한푼도 줄 수 없다는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과연 재판장이 누구의 손을 들어 줄지 미국의 많은 ‘위기의 주부들’이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