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구 영웅’ 마라도나의 사생아로 태어난 마라도나 주니어(오른쪽)는 어머니 성으로 개명하고 아버지와의 인연을 끊으려 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
어린 시절부터 이미 ‘축구영웅’ 마라도나의 뒤를 잇는 적통 후계자가 될 것인가의 여부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려 있었지만 사실 지금까지는 그런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어쩌면 이런 저조한 실력의 원인은 마라도나가 처음부터 그가 자신의 아들임을 강력하게 부정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지난 20년 동안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던 마라도나 주니어에게 ‘마라도나’라는 이름은 약인 동시에 독이기도 했다.
현재 이탈리아 세리에 D의 베나프로 칼치오 소속인 마라도나 주니어는 변변치 못한 실력으로 아마추어 리그를 전전하고 있다. 아버지의 피를 이어 받은 듯 세 살 때부터 축구공을 다루기 시작한 그는 처음에는 ‘축구신동’이라는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11세 때 나폴리 청소년팀을 시작으로, 14세라는 어린 나이에 이미 ‘17세 이하 이탈리아 청소년대표팀’에 발탁되는 등 차세대 스트라이커로 인정받았다. 현란한 드리블 솜씨를 뽐내던 그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당시만 해도 “아버지 판박이”라는 극찬을 쏟아냈으며, 대표팀 코치 역시 “마라도나의 진짜 DNA를 갖고 태어났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2005년 이탈리아 세리에 B의 제노바에 입단하며 프로생활을 시작했지만 그의 축구인생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변변치 못한 실력과 잦은 부상으로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그는 이듬해 아마추어 리그로 강등된 후 세르비야, 인터나폴리 등을 전전하며 선수 생활을 이어 나갔다.
그럼에도 그는 “비록 이탈리아 출신이긴 하지만 언젠간 아버지처럼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싶다”는 희망을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는 이런 희망이 실현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그의 가장 큰 문제점을 꼽으라면 축구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스피드가 너무 느리다”라고 지적한다. 거기다가 어려서부터 너무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 있었던 탓에 그로 인한 중압감을 견디기 힘들어하고 있다는 점도 그렇다.
이런 사실을 아는지 그 역시 얼마 전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이름은 나에겐 무거운 짐이었다. 이젠 훌훌 벗어 던지고 싶다”라는 심정을 밝혔다.
여기서 더 나아가 얼마 전 그는 라디오 토크쇼에서 출연해서 공개적으로 아버지를 비난하는 발언을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신세에 대해 그동안 쌓여왔던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한 듯 보였다.
그는 토크쇼에서 “아버지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수년째 마약을 남용해왔던 게 그 이유”라면서 맹렬히 비난했다. 이어서 비만과 알코올중독에 시달리고 있는 마라도나를 향해 “아무리 살을 뺀다고 해도 정신건강은 돌아오지 않는 모양이다. 아버지는 20년 전의 일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라는 말로 일침을 가했다. 또한 “아버지는 내 명예를 훼손하고 정신적인 피해를 주었으며, 약속한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말하는 ‘20년 전’이란 바로 마라도나 주니어 자신이 태어났던 해를 말한다. 줄곧 자신이 친부임을 부인해오던 마라도나는 1993년, 마라도나 주니어가 7세 되던 해 친자확인소송 끝에 아들임을 인정했으며, 결국 월 4000달러(약 390만 원)의 양육비를 지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마라도나 주니어가 라디오에 대고 폭발한 직접적인 이유는 사실 다른 데 있었다. 비록 아버지가 자신을 멀리해도 한편으로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쳐 있던 그였지만 지난 2005년 마라도나가 아르헨티나의 TV쇼에 출연해서 한 발언은 그의 심기를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당시 마라도나는 “그 아들은 ‘실수’였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인정한다’는 것과는 다르다. 나는 지금 내 ‘실수’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고 냉정하게 말했다.
방송을 통해 공개적으로 자신의 출생을 ‘실수’라고 말한 데 대해 머리 끝까지 화가 난 마라도나 주니어는 “이제는 나도 더 이상 아버지를 보고 싶지 않다”는 말로 분노를 표시했다.
사실 그가 아버지를 처음 본 것은 불과 5년 전이었다. 2003년 나폴리에서 열렸던 자선골프대회에 참가한 마라도나를 보기 위해 무작정 골프장으로 찾아갔던 마라도나 주니어는 처음에는 먼 발치에서 아버지를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이내 용기를 내서 아버지에게 다가갔고, 마라도나는 처음에는 낯선 소년이 다가오자 그저 사인을 해달라는 팬인 줄 알고 자리를 피하려 했다. 심지어 마라도나는 골프채로 위협하면서 ‘저리가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마라도나 주니어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자, 이내 부자간에 뜨거운 상봉이 이루어졌다. 마라도나는 처음엔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었지만 곧 눈물을 글썽이면서 아들을 부둥켜 안았다. 그리고 이들의 대화는 40분 동안 이어졌다.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지만 그 후로 이들 부자는 아직까지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있다.
한편 2003년 아내 클라우디아 빌라파네와 이혼한 마라도나는 슬하에 딸 둘을 두고 있으며, 한때 알코올중독과 코카인 남용으로 심장마비까지 일으키는 등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근래 들어서는 술과 마약을 모두 끊고 건강도 부쩍 좋아진 모습이지만 아직까지 위험요소는 여전히 남아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혹시 마라도나 주니어가 앞으로 스페인 1부리그에서 뛰게 된다면 축구팬들의 관심은 다시 한번 마라도나 부자에게 쏠리게 될 전망이다. 불행한 것은 마라도나 주니어가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머니의 성을 딴 ‘디에고 시나그라’로 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관심은 여전히 ‘마라도나’라는 이름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