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2019 마스터스 우승으로 다시 한 번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연합뉴스
[일요신문] 검은 바지와 붉은 셔츠를 입은 사나이가 그린 위에서 다시 한 번 포효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며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지난 15일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서녈 골프클럽에서 열린 PGA 투어 마스터스에서 우즈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05년 이후 14년 만에 마스터스 우승자의 상징인 ‘그린 자켓’을 입었다.
이날 만큼은 이전과는 다른 우즈의 ‘우승 스토리’가 펼쳐졌다. 선두에 2타 뒤진 공동 2위로 마지막 4라운드에 나섰다. 그는 이전까지 14회의 메이저 우승 당시 항상 1위로 최종 라운드를 시작해 왔다. 커리어 최초 최종 라운드 역전 우승이었다.
이날 우즈는 놀라우리만큼 냉정함을 유지했다. 10번홀까지 3개의 버디를 기록했지만 3개의 보기도 기록했다. 추격에 어려움을 느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13번홀부터 버디 행진이 이어졌다. 15번홀에서 단독 선두로 올라섰고, 16번홀에서 2위와 격차를 벌렸다. 갤러리들의 격한 환호가 이어졌지만 표정 변화 없이 가볍게 손을 들어 화답하는 정도였다.
우승이 확정된 18번홀에서야 우즈는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 퍼팅이 홀컵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오른 주먹을 불끈 쥐는 특유의 세레머니를 선보였다. 갤러리들을 향해 다시 한 번 두 팔을 들어 올렸다.
골프계뿐만 아니라 국내외 많은 인사들이 우즈를 향한 찬사를 보냈다. 필 미켈슨, 박성현 등 동료 골퍼들은 물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통령 자유훈장’(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을 수여하겠다고 밝혀 이목을 끌기도 했다. 이외에도 르브론 제임스, 스테판 커리, 이승엽, 차두리 등 국내외 스포츠 스타들이 그의 우승에 감동했음을 밝혔다.
타이거 우즈의 마스터스 우승에 이처럼 많은 이들이 감동한 이유는 그간의 행보에 있다. 그가 지난 수년간 골프 황제 위상에 어울리지 않는 부진과 함께 숱한 어려움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골프계의 절대적 위치에 군림했던 우즈는 2010년대 들어 내리막을 걸었다. 2012년부터 2년간 8개 대회에서 우승하며 살아나는 듯 했지만 이듬해부터 부상에 신음하기 시작했다.
4세 때부터 골프를 시작한 우즈는 오랜 기간에 걸친 선수 생활에 몸이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하는 듯 했다. 무릎, 허리 등 신체 곳곳이 돌아가며 고장났다. 수술과 재활, 회복과 부상 재발이 반복됐다. 신체 변화에 따라 스윙도 변해갔다.
3시즌(2014~2017) 간 19개 대회에 참가하는데 그쳤고, 이 중 ‘탑10’은 단 1차례만 기록했다. 세계 랭킹은 200위권 대를 오갔다.
수술 후 재활로 칩거하던 2017년 5월에는 약물에 취한 상태로 운전을 하던 중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경찰에 적발될 당시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이 전해지며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약물 중독 상태를 우즈 본인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정도의 진통제를 복용할 정도로 그의 고통이 심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최악의 스캔들 이후 골프장 갤러리들 사이에서도 우즈를 향한 야유가 쏟아지기도 했다. 연합뉴스
철옹성 같던 우즈가 커리어 사상 최초로 메이저 대회 역전패를 당한 2009 시즌, 뉴욕의 한 클럽 매니저와 우즈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소식이 나왔다. 처음엔 그저 선정적 보도 정도로 치부됐지만 이후 앞 다퉈 그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털어놓는 여성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의 만남이 우즈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이후까지 이어졌기에 충격을 더했다.
나이와 신분 등을 가리지 않고 약 20여 명의 여성이 그와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상징과도 같은 ‘붉은색 셔츠’처럼 속옷 또한 붉은 색이라는 증언 등 우즈로선 괴로울 수 밖에 없는 폭로가 이어졌다. 불륜 대상이 18명에 달하자 “우즈가 18홀로 한 라운드를 마쳤다”는 논평도 나왔다.
여성과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 자신의 번호를 삭제하라는 우즈의 음성 메시지 등이 공개되며 불륜 사실을 부인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됐다. 이는 현재까지도 일부에서 “위대한 골퍼지만 최악의 남자(Great golfer, terrible man)”라는 평가가 뒤따르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후 우즈는 성 관련 클리닉에서 정신치료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이혼을 막지는 못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스캔들에 스웨덴 모델 출신 엘린 노르데그린과의 결혼 생활은 7년 만에 끝나게 됐다. 가족 등 사생활과 관련해선 ‘신비주의’적인 행보를 이어왔던 우즈였기에 갖가지 추측이나 가십에 더욱 시달려야 했다.
이번 우승은 그의 첫 메이저 우승을 달성한 마스터스였기에 더욱 의미가 깊었다. 사진=타이거 우즈 트위터
이처럼 몰락의 길을 걸었던 우즈는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클럽을 쥐었다. 지난 2018시즌 18개 투어 대회에 나서 ‘탑10’ 7회, 우승 1회를 기록한 그는 올 시즌 마스터스 우승으로 완전한 부활을 알렸다. 그 무대가 오늘날 자신을 있게 만든 마스터스였기에 의미를 더했다.
많은 골프 전문가들은 우즈가 건강을 되찾으며 전성기에 가까운 스윙을 선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모두가 그를 향해 “끝났다”는 진단을 내렸지만 보란 듯이 이를 뒤집었다. 통산 PGA 투어 최다승(82승, 샘 스니드), 메이저 최다승(18승, 잭 니클라우스) 기록에도 각각 81승, 15승으로 한 발 다가섰다.
대학을 중퇴하고 프로골프 무대에 뛰어들던 청년에서 어느덧 40대 중반이 된 우즈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 세계 골프팬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화려한 등장부터 부활까지…‘그린 자켓’ 마스터스와의 인연 극적인 부활을 알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메이저 대회 마스터스와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으로 연결돼 있다. 2019 마스터스 우승을 거머쥔 우즈는 이 대회에서만 총 5회 우승을 달성하게 됐다. 차두리는 우즈의 우승 장면을 지켜보며 자신의 SNS에서 아버지 얼 우즈, 아들 찰리와의 포옹을 언급했다. 사진=차두리 인스타그램 캡처 아마추어 무대를 평정하던 우즈는 1995년 처음으로 초청선수 자격으로 마스터스에 나섰다. 그의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참가였다. 첫 최종 성적표는 공동 41위, 아마추어 참가자 중 최고 순위였다. 첫 메이저 우승도 마스터스였다. 프로에 갓 데뷔해 PGA 투어 신인상을 받은 이듬해였던 1997년, 우즈는 마스터스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그린 자켓을 처음으로 입게 된다. 우승을 확정할 당시 아버지 얼 우즈(2006년 작고)와 감동의 포옹은 2019년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장면이다. 이후 우즈는 전성기를 구가하던 2001년과 2002년 2년 연속 그린 자켓을 입었다. 한동안 ‘메이저 대회 우승이 없다’는 지적을 받다 3년 만에 다시 메이저 트로피를 들어 올린 대회 또한 마스터스였다. 마지막 메이저 우승(2008 US 오픈) 이후 11년 만에 또 다시 마스터스에서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22년 전 우승 이후 아버지를 끌어안았던 것과 달리 이번엔 딸 샘, 아들 찰리를 품에 안았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