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위원장의 구속 후 노동계와 정부 간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민주노총은 “더 이상 촛불정부가 아닌 노동탄압 정부를 상대로 한 전면적이고 대대적인 투쟁을 벌일 것”이라며 “6월 울산 전국노동자대회에서 7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총파업으로, 그리고 민주노총 전조직의 전국적 총파업 투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24일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법부의 결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한 발 물러났지만 노동계의 반발은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민주노총과 더불어 노동계 양대산맥인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도 “일부에서 충돌이 있었을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우발적이었을 것이고 위원장까지 구속시킬 사안이 결코 아니다”라며 “과거 정부와 똑같이 위원장을 구속하고 폭력적 탄압으로 입막음 하려 해서는 안된다”고 비판했다.
국회 앞에서 경찰과 충돌을 빚는 불법 집회를 주최한 혐의를 받는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서울남부지법에 출석 하고 있는 모습. 사진=임준선 기자
사실 노동계와 문재인 정부 간 갈등은 어제오늘 만의 일은 아니다.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지난 17대 대선 당시 노동계 주요 인사들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절대적 지지를 보내지는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노동계 한 인사는 “지난 대선 때 일부는 심상정 정의당 후보를, 다른 일부는 김선동 민중연합당(현 민중당) 후보를 지지했다”며 “실제 투표에 얼마나 반영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현 정부와의 불편한 관계는 그때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이는 지난 대선 직전 각 노동 단체들의 논평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민주노총은 대선을 앞두고 “대의원대회와 중앙집행위원회 결정에 따라 심상정 후보와 김선동 후보 지지를 선언한다”며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노동자민중의 삶이 개선되기는커녕 더욱 악화됐다는 사실과 교훈을 되새기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런가 하면 대선을 앞둔 2017년 5월 4일에는 “노동자들의 요구에 정치권이 답을 할 것을 촉구하며 (우리의) 요청에 대한 답을 요구했다”며 “하지만 답변은 오지 않았고 가장 강력한 대통령 후보인 문재인 후보와 그 소속 정당인 더불어민주당 앞에서 긴급하게 규탄기자회견을 진행한다”고 문 대통령을 비판하기도 했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한 노동계 인사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한국노총은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후보를 지지후보로 결정했다. 당시 한국노총은 “문재인 후보가 과거 노동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노동자 서민대중과 아픔을 함께한 경험이 있는 만큼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양극화와 불평등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밝혔다.
어쨌거나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노동계는 표면적으로 환영의 메시지를 보냈다. 당시 민주노총은 “문 대통령의 당선과 새 정부의 출범을 축하한다”며 “적폐세력의 퇴행적 준동이 만만치 않았기에 문 대통령의 당선은 의미가 크다”고 했다. 한국노총 역시 “한국노총을 늘 동지라 칭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축하 메시지였을 뿐,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노동계와 정부 간 크고 작은 갈등은 끊이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최저임금과 관련한 문제다. 지난해 5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상여금과 복리후생 수당 등을 최저임금에 산입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를 놓고 민주노총, 한국노총 할 것 없이 정부와 국회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민주노총은 “문재인 정부는 사상 최악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날치기 처리했다”며 “행여 국회에서 벌어진 일이라며 도망갈 구멍을 찾지 않기를 바란다. 여당 원내대표가 진두지휘했고 고용노동부가 침묵으로 방조했으며 청와대가 지시 또는 묵인을 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후에도 위험의 외주화 방지 법 추진,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 등을 놓고 적지 않은 충돌을 겪었다. 물론 청와대도 노조를 외면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지난 1월 25일 문 대통령은 김명환 위원장과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을 만나는 등 대화를 시도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노동권의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사회적 인식이지만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는 없다”며 “국민들이 바라는 건 사회적 대화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 노동권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탄력근로제 단위 시간 확대 등 노동법 개악에 반대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 4월 국회 앞에서 열린 노동법 개악저지 총력투쟁집회에서 국회 진입을 시도하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그렇지만 당장 올해도 문재인 정부를 규탄하는 노동계의 집회가 끊이지 않고 있다. 노동계의 이러한 행보를 놓고 “노동권을 존중하지 못한다”고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본인들의 기득권에만 관심이 있다”고 노동계를 비판하는 의견 또한 적지 않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난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노총은 다시 총파업을 하겠다고 국민을 상대로 협박하고 있다”며 “경제가 망하든 말든 민생이 파탄지경에 이르든 말든 자신들의 밥그릇만 지키겠다고 하는 귀족노조의 횡포가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민주노총은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라고 발언한 바 있고, 홍영표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민주노총은) 항상 폭력적인 방법을 쓴다”고 말하는 등 여권 내에서도 노동계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았다. 심지어 홍 전 원내대표는 본인 스스로가 민주노총 출신이었다.
반면 정호진 정의당 대변인은 김명환 위원장 구속에 대해 “법원이 도주와 증거인멸을 내세워 구속했지만 이미 자진 출두해 성실히 조사를 받는 등 도주와 증거인멸은 구속의 사유가 될 수 없다”며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강조해 온 문재인 정부에서 노동자의 대표를 인신구속 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으며 사회적 대화의 포기이자 국제적 망신”이라고 비판하는 등 노동계를 지지하는 세력 또한 작지 않다.
사실 노동계와 정부 간 갈등은 정권을 막론하고 있어왔던 일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와 노동계의 갈등이 주목받는 건 문 대통령이 당선 이후 줄곧 ‘노동존중 사회’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노동계의 요구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노동존중 사회는 허울뿐이라고 주장하는 노동계와 사회적 협의 없이 노동계의 요구를 모두 들어줄 수 없다는 청와대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이다.
민주노총은 24일 “일상 사업을 최소화하고, 모든 역량을 투쟁 조직에 집중할 수 있는 비상체제를 구축함과 동시에 즉각적이고 전국적인 규탄투쟁을 전개해 나가겠다”며 “민주노총의 모든 지역조직과 가맹 산별조직들은 전국에서 개최하는 모든 집회와 투쟁에 노동탄압 분쇄 요구를 걸고 싸울 것”이라고 문재인 정부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양 측의 갈등이 이어지면서 사회적 혼란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