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KBS ‘다큐 3일’
24일 방송되는 KBS ‘다큐멘터리 3일’은 경북 포항시 제철소 72시간을 담는다.
철을 많이 생산하는 나라는 강국이다. 근세 이후 세계사의 흐름을 좌우하던 자원이자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철. 2018년도 기준, 대한민국의 쇳물 생산량은 세계 5위이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헤집어도 우리나라 경제를 떠받치는 철강 산업은 공장 가동을 멈출 수 없다. 대다수가 재택에서 근무하는 속에서도 연중 밤낮으로 단단한 땀방울을 흘리는 그곳. 바로 포항의 한 제철소이다.
여의도 3.3배의 면적, 1만 8000여 명의 직원들의 일터인 그곳은 1972년 공장 가동 이후로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뜨거운 쇳물을 소중한 강철로 만드는 사람들,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치열한 사투를 이어가는 경북 포항시 제철소의 일상 속으로 다큐멘터리 3일 팀이 들어가 보았다.
이곳은 국내 최초의 일관제철소이다. 일관제철소는 용광로에서 철광석을 녹여 쇳물을 뽑아낸 뒤 반제품부터 완제품까지 모든 철강 제품의 생산 체계를 갖춘 제철소다.
제선, 제강, 연주, 압연 등의 단계를 거쳐 완성되는 철강은 건축자재, 자동차 부품과 가전, 주방용품 등 일상생활에서 다양하게 활용된다.
아무리 작은 부품에 들어가는 철이어도 언젠가는 녹슬어도. 철의 탄생은 찬란하고 유난했다.
철의 태동은 바닷가 부두에서 이루어진다. 지구 반대편에서 철광석을 실은 배가 예인선의 도움을 받아 부둣가에 정박하면 크레인이 철광석을 운반해간다.
수십 만 톤에 육박하는 배는 그 밧줄 하나를 묶는 데만 장정 네댓 명이 필요할 정도로 일이 고되다. 선장과 도선사, 하역 작업하는 직원들과 거대한 크레인, 컨테이너 등으로 부둣가는 북적인다.
제강 공장은 쇳물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작업을 한다. 펄펄 끓는 용광로 사이로 크레인은 계속 움직이며 쇳물을 고로에 붓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 모든 장비의 운전을 담당하는 것은 물론 ‘사람’이다.
방심하거나 집중하지 않으면 사고로 직결되기에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크레인 운전사들.
개인사는 묻고, 통증은 잊고, 생리적 욕구와 싸워가며 자리를 지킴으로써 안전과 생명이라는 가치를 지켜내기에 진정한 의미의 ‘철인’이 아닐까.
시설물을 가리키며 상태를 확인하는 지적확인은 철강인이 지켜야 할 필수 기초 수칙. 시시때때로 ‘좋아, 좋아’를 연달아 외치는 모습에 처음에는 어리둥절하지만 안전 작업을 위한 실용적인 매뉴얼임을 알게 된다.
‘좋아’를 하루에 2000번 외친다는 강민구 기관사. 그의 나지막한 외침 덕분에 공장은 오늘도 무사히 가동 중이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왜 그렇게 열심히 일했을까. 34년간 제철소에서 근무하고 내년 정년퇴직을 앞둔 김영주 부공장장(59)은 정년퇴직에 꽃다발을 받을 생각만으로도 눈가가 젖었다.
그에게 제철소는 단순히 일터 이상의 친구였다. 제철소 규모가 성장할수록 집이 커졌고 자녀가 쑥쑥 자랐고 대선배가 되어가며 성숙하고
한 가정을 책임지는 든든한 울타리로만 보였던 가장의 과거에도, 본인의 꿈을 키워가던 찬란한 현재가 있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겠다.
여기 당찬 여성 엔지니어가 있다. 98:2의 성비 환경에 적응하느라 초기에는 부침을 겪었지만 효율적인 설비제어시스템으로 개선하는 일에 당당히 제 몫을 내고 있다.
무겁고 육중한 것들로 가득 찬 제철소지만 30년 나이 차를 넘는 선배들과 소통하는 유희영 사원(25). 현장의 소중함을 아는 그녀는 모두의 말을 경청하는 좋은 자세를 지녔다.
그녀와 함께 변화하는 환경의 새로운 제철소, 보다 쾌적하고 영리해진 제철소의 미래를 엿본다.
제철소 현장 직원들은 하루 12시간씩 4교대로 근무한다.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또 저녁 7시부터 아침 7시까지 교대 조가 번갈아 가면서 근무를 한다.
새벽 3시 즈음이 되면 어쩔 수 없이 고비가 찾아온다. 허벅지를 꼬집고 커피를 마시고 실내 체조를 하며. 모두가 잠자고 있는 동안에도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이들의 숨은 노력이 모여 밤에도 아름답게 빛나는 도시를 일군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