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KBS ‘다큐 3일’
꽃 피는 봄, 육지에 매화와 진달래가 만발하는 사이 바다에는 붉은 멍게 꽃이 피고 있다.
경남 통영시 산양읍 영운항은 전국 멍게 생산량의 80%를 담당하는 멍게 수확 일번지다. 푸른 통영 바다는 빨간 멍게를 키워내고 영운항의 어민들은 탐스러운 멍게를 전국 식탁으로 보낸다.
매년 2월부터 6월까지 딱 한 철. 신선한 통영 멍게를 맛볼 수 있는 이 한정된 시간은 1년간 고생한 어민들의 노력이 열매를 맺는 순간이다. 멍게에 울고 웃고, 자식처럼 소중한 멍게를 키우며 살아가는 영운항 어민들의 3일이다.
통영 영운항 바닷가에는 26개의 뗏목이 줄지어 있다. 이맘때면 각 뗏목에는 열댓 명 남짓한 어민들이 모인다. 몇 안 되는 뗏목과 얼마 안 되는 안 되는 어민들이 국내 멍게 생산량의 절반을 넘게 책임지는 것이다.
영운리가 멍게 양식으로 성화한 건 1970년대 중반, 자연산 멍게가 잇달아 폐사하자 영운리 어민 고(故) 최두관 씨가 일본의 멍게 양식법을 처음 시도한 이후부터다.
섬으로 둘러쌓여 파도가 많지 않은 지리 환경과 우리 바다에서 살아남은 종자를 지속 관리해온 어민들의 노력이 지금의 영운항을 만들었다.
초반에 한두 개뿐이던 뗏목은 어느새 항구를 빙 둘러 쌀만큼 늘어났고 시장에 물고기를 내다 팔며 유지되던 영운리는 자타공인 멍게 마을이 되었다.
어민들은 ‘양식 멍게라고 해서 자연산과 비교해 얕보면 오산’이라고 말한다. 말이 양식이지 멍게를 키우는 8할은 바다 자체이기 때문이다.
멍게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자그마치 3년. 모패를 배양시키고 팜사에 씨앗이 뿌리내리기까지 어민들의 생활은 멍게 생의 주기에 맞춰진다. 멍게가 바다 밖으로 나오는 시기는 한 철이지만 어민들의 일은 연중 계속되는 셈이다.
하지만 매일같이 멍게를 들여다봐도 결국 멍게를 자라게 하는 건 바다의 수온과 플랑크톤 즉 자연이 주는 운이다. 그래서 수확 철인 이맘때가 되면 어민들의 표정은 그해 작황에 따라 제각기 달라진다.
버릴 것도 없다. 싱싱한 활멍게는 전국 곳곳을 향해 산지 직송으로, 깐 멍게는 가공식품용으로, 껍질은 토양의 영양분이 되는 비료로 쓰인다. 유통되는 방식이 다양한 만큼 어민들의 일도 많다.
우선 양식장에서 멍게를 배 옆구리에 차고 온 다음 멍게들이 바뀐 바다 환경에 적응할 시간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시작되는 본격적인 작업은 멍게를 줄에서 떼어내고, 크기별로 선별하고, 껍질을 까는 순서다.
그래서 이맘때면 각 뗏목엔 통영 곳곳의 아주머니들이 모인다. 종일 쪼그려 앉거나 서 있어야 하지만 이들은 서로 농담을 주고받고 노래에 맞춰 흥얼거리며 이 시기를 즐긴다.
매 수확 철 그것도 매일 만나는 데다가 최소 하루 두 끼는 같이 먹는 사이끼리 쌓인 돈독한 정은, 고된 멍게 철을 버티는 힘이다.
영운항 양식업 가구의 대부분은 부부가 꼭 붙어 함께한다.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그 아이가 성인이 되기까지 한 일생을 같이하는 반려자 사이에 멍게가 빠지지 않은 것이다.
주로 남편은 직원들을 차로 데려오는 일부터 양식장을 오가며 힘쓰는 일을 아내는 직원들의 식사부터 알 까기, 택배 등의 작업을 지휘하는 일을 맡는다.
대가족 사업을 이룬 집도 있다. 가족이라서 가능한 믿음과 가족이라도 예외일 수 없는 분업화로 ‘능률’과 ‘화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그래서 영운리 어민들은 멍게 양식 1세대부터 귀어한 2세대까지 다양하다.
1세대는 멍게 양식업의 안정화를 이뤘고 2세대는 양식업의 지속 가능성을 판단해 대를 이었다. 그런 2세들이 주는 의미는 귀어 이상으로 특별하다.
이들은 젊은 기지를 발휘해 개별 택배, 홍보 등을 꾀하는가 하면 ‘물렁병’이라 불리는 원인 모를 멍게 폐사병의 대안을 연구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자 생계 전부인 영운항은 더욱 부푼 꿈을 안고 소중히 대물림되는 중이다.
‘바다의 꽃’이라 불리는 멍게와 그 꽃을 활짝 피우기 위해 바쁜 봄을 보내는 영운항 사람들을 만나본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