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29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등과 ‘대기업과 중소기업 동반성장 추진’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
300만 중소기업을 대표하는 중소기업중앙회(중앙회)가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내년 2월로 예정된 중앙회장 선거를 앞두고 벌써부터 가열·혼탁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고, 현 집행부와 여권 실세와의 밀월설이 나돌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회는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등과 함께 재계의 이익을 대변하고 대정부 압력단체 역할을 수행하는 ‘경제 4단체’에 속할 정도로 막강한 파워와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중앙회는 전국적으로 300만 회원을 거느리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권과 유착관계를 형성해 왔다. 과거 정권에서 중앙회장 출신들이 약속이나 한 듯 비례대표로 금배지를 달았다는 사실은 중앙회와 정치권의 유착관계를 잘 대변하고 있다.
2007년 3월에 출범한 현 집행부 또한 여권과의 밀월 의혹에 대해선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국정감사 피감기관이었던 중앙회가 김기문 회장 출범 이후 국회 국감대상에서 제외됐다는 사실은 밀월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여기에 현 집행부가 내년 중앙회장 선거와 관련해 정관을 개정한 배경에 여권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증폭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중소기업 살리기’ 행보와 맞물려 중앙회의 역할과 비중이 커지고 있는 와중에 정치권 안팎에서 중앙회와 여권과의 밀월설이 나돌고 있는 내막을 들여다봤다.
중앙회는 중소기업들이 감수해야 하는 제도적·관행적 애로사항들을 조사해 건의 등을 통해 이를 정부나 관련 기관에서 법이나 규정 등에 반영하게 함으로써 중소기업이 국민경제 속에 제대로 설 수 있도록 업계의 힘을 결집하는 민간 경제단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중앙회는 회원만 300만에 달하고 매년 60억~70억 원의 국가예산을 지원받고 있다. 과거 중앙회와 정치권이 유착관계를 형성해 왔던 배경에는 300만 회원과 전국적인 조직망이 자리잡고 있다.
한 표가 아쉬운 정치인들 입장에서 중앙회가 거느린 ‘300만+알파’ 표심은 선거 판세를 뒤집을 수 있는 그야말로 ‘황금어장’일 수밖에 없다. 중앙회장 출신인 박상규(17대) 박상희(18·19대) 김용구(22대) 전 회장이 과거 총선 때 비례대표로 금배지를 달았다는 사실은 중앙회와 정치권과의 유착관계를 잘 대변하고 있다.
과거 4년 임기(연임 가능)인 중앙회장 선거가 돈 선거, 혼탁 선거 등으로 얼룩지면서 정치권 선거를 방불케 했고, 선거 과정에서 여야를 망라한 정치권이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는 점도 양측의 유착관계를 방증하고 있다.
▲ 전직 중앙회장들이 서명 날인한 정관개정 철회 건의문 사본. |
중앙회는 매년 60억~70억 원대의 국가예산을 지원받는 경제단체로 2007년까지 방만경영 및 각종 사업추진 과정에서 불거진 의혹들에 대해 국회 국정감사를 받아왔다. 실제로 중앙회에 대한 마지막 국감이 열렸던 해인 2007년 11월 국회 산업자원위원회(현 지식경제위원회) 국감장에서는 중앙회의 방만경영과 무리한 사업추진에 대해 의원들이 집중 포화를 날리기도 했다.
이처럼 중앙회의 무리한 사업추진과 방만경영에 대해 의원들은 김기문 중앙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책임론을 제기하는 등 강도 높은 국감을 실시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현 정부가 출범한 2008년부터는 국회 국감장에서 중앙회장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이와 관련 중앙회장 출신인 김용구 자유선진당 의원은 9월 30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피감기관에 대한 국감은 소속 상임위에서 결정할 사안인데 2007년 이후에는 해당 상임위인 지경위에서 중앙회에 대한 국감을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중앙회가 국감 대상에서 제외된 배경에는 여야를 망라한 정치권에 대한 현 집행부의 로비가 자리잡고 있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특히 김기문 회장이 여권 실세인 A, B 씨를 비롯해 여권 정치인들과 친분이 두텁다는 점에서 중앙회와 여권과의 밀월 의혹도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현 중앙회 집행부의 막강 로비력과 300만 회원의 표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여권이 ‘중앙회 국감 배제’에 동조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증폭되고 있다.
이와 관련 9월 30일 기자와 통화한 중앙회 관계자 C 씨는 “원래 국정감사는 정부기관 및 공공기관을 피감기관으로 하고 있는 만큼 엄밀히 따지면 경제단체인 중앙회는 국감대상이 아니다”며 “2007년 이후 국감을 받은 적이 없고 금년에는 본회의 의결을 통해 국감 대상에서 배제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차기 중앙회장 선거를 앞두고 현 집행부가 선거 방식 변경을 골자로 한 정관을 개정한 것을 둘러싼 논란도 가열되고 있다. ‘중앙회 회장은 정회원 대표자의 10분의 1 이상 추천을 받은 자를 대상으로 총회에서 선출한다’는 게 개정 정관의 골자다. 이에 대해 전임 중앙회장들을 비롯해 상당수 회원들은 정회원 10분의 1의 추천을 받는 것은 정회원 586명(9월 기준) 중 58명 이상의 추천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사전선거 운동으로 전락할 수 있고, 입후보한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시정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용구 의원은 “10분의 1 추천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중앙회는 경제집단이기 때문에 추천자들은 현 회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현 회장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개정된 정관은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기자와 만난 K 조합 A 이사장은 “정관개정이 중앙회 정기총회에서 의결됐다고 하지만 총회 전 회원들에게 공청회 등을 통해 충분한 고지를 하지 않았고, 그 결과 회원들이 정관개정 내용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의결됐다”며 “특히 10분의 1 추천은 현 회장이 아니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중앙회장의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고”고 주장했다.
정관 개정에 따른 논란에 대해 중앙회 관계자 C 씨는 “정관 개정은 총회 의결로 결정된 사안”이라고 전제한 뒤 “과거 중앙회장 선거 때마다 과열선거로 얼룩지면서 선거 후에도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렸다. 중앙회장에 당선되려면 과반수 득표를 해야 하는데 10분의 1 추천은 큰 무리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임 회장들을 비롯해 반대 의견이 많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C 씨는 “총회 의결 사안인 만큼 내년 선거때 일단 적용을 하고 그 과정에서 장단점이 노출되면 총회 의결을 거쳐 다시 수정하면 될 것”이라고 답했다.
중앙회가 내년 2월 회장선거를 앞두고 9월 1일부터 자체 선거 감시체제를 가동한 배경에도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중앙회는 지난 3월 선거법 위반행위를 감시, 예방해 공명선거를 정착시킨다는 취지에 따라 회장선거 사상 처음으로 선거부정 감시단을 출범시킨 바 있다.
이에 대해 중앙회장 출신인 박상희 전 의원은 최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지난 2007년 2월 선거 당시 부정선거 시비를 막기 위해 중앙회의 요청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관리·감독 아래 치러져 선거 후 어떠한 부정행위도 노출되지 않아 혁신적인 선거개선이 이뤄졌다”며 “그러나 내년 선거를 앞두고 중앙회 내에 자체 선관위를 둔 것은 투명성 담보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A 이사장도 “선거부정감시단은 중앙회 정회원 중에서 지역별로 5명 이내에서 선거관리위원장이 위촉해 전국의 12개소에 46명이 감시하고 있고, 이를 총 지휘하는 본부가 중앙회라면 자기들끼리 판을 만들어 놓고 진행할 것이 뻔한데, 어느 누가 바보같이 그 함정에 들어가 이들의 명분이나 살려 주는 장단에 맞추겠냐”고 토로했다. A 이사장은 특히 “중앙회의 정관개정이 단순히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중소기업의 이익과는 상관없이 ‘당선만 되면 된다’는 식의 집행부를 이끌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서는 중소기업의 미래는 요원하다”고 강조했다.
야권 일각에서는 친여 성향인 김기문 회장을 연임시켜 차기 대선 때 300만 표심을 끌어안기 위해 여권 핵심부가 벌써부터 차기 중앙회장 선거에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마저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여권이 잇따라 ‘중소기업 살리기’ 정책을 내놓으면서 중앙회의 역할과 비중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정작 중앙회 안팎에서는 내년 회장선거를 앞두고 내홍이 깊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여권과 유착을 넘어 밀월 의혹으로 비화되고 있는 중앙회가 깨끗하고 투명한 선거문화를 정착시켜 300만 중소기업을 대변하는 경제단체로 거듭날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