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폰서 검사’ 의혹을 수사해온 특검팀 민경식 특별검사가 지난 28일 서초동 사무실에서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물을 마시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하지만 이번 특검팀 수사도 용두사미로 막을 내렸다. 9월 28일 특검팀이 발표한 수사결과는 과거 대부분의 특검이 그랬듯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애초 100여 명 이상의 전·현직 검사가 향응 및 접대에 연루됐다고 알려진 이번 사건은 국민에게 충격과 분노를 불러일으키며 대대적인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200여 명에 달하는 인물들을 상대로 대장정의 수사를 마친 특검팀이 기소하기로 한 전·현직 검사는 고작 4명, 앞선 15일 기소한 전 검찰수사관 등 5명까지 합해도 총 9명에 불과하다. 혈세낭비와 특검 무용론을 또다시 대두시키며 ‘특검 잔혹사’만 되풀이한 이번 수사의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되짚어봤다.
이번 사건은 지난 4월 건설업자인 정 씨가 MBC <PD수첩>을 통해 20여 년간 지역에 부임한 검사들을 상대로 향응과 성접대를 해 왔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폭로하면서 시작됐다. 국민적 분노가 일자 검찰은 방송 이틀 뒤 진상규명위원회를 가동해 초기진화에 나섰다. 급기야 8월 5일엔 이른바 ‘스폰서 검사’ 특검팀이 출범했다. 하지만 정 씨의 주장은 대부분 입증되지 못했다. 특검팀은 한승철 전 대검찰청 감찰부장 등 전·현직 검사 4명을 기소함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이번 특검이 남긴 석연치 않은 의혹 중 첫 번째는 특검팀 스스로 ‘사건의 핵심인물이자 진원지’라고 표현했던 박기준 전 검사장을 무혐의 처분한 것이다. 박 전 검사장은 20여 년 동안 진주지청과 울산지검, 부산지검에 근무하면서 정 씨로부터 향응과 촌지를 제공받았다는 의혹을 받아 왔었다. 정 씨는 당시 기자와의 통화에서 향응의 성격에 대해 ‘친분을 두텁게 하기 위해’ ‘일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보험식으로 으레 해왔던 일’이라는 표현을 썼다. 일찌감치 정 씨 스스로가 검사들을 ‘관리’하며 생존하는 방법을 터득했으며 자신의 행동이 친분 이상의 대가성이 있었음을 인정한 셈이었다.
박 전 지검장은 향응뿐 아니라 정 씨의 부탁으로 그와 관련된 사건의 수사속도를 늦추라고 지시하고 정 씨로부터 비리 사실과 관련된 진정서를 받은 후 상부에 보고하지 않는 등 직권남용과 직무유기를 한 혐의도 받았다. 하지만 특검팀은 박 전 지검장이 정 씨로부터 접대를 받은 기간이 뇌물죄의 공소시효를 벗어났고, 지난해 6월 정 씨와 저녁식사를 한 것도 대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수사속도를 늦추라고 지시하는 등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도 부하직원들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며 ‘혐의없음’으로 처리했다. 또 정 씨의 검찰 접대 관련 진정을 묵살한 의혹을 받았던 황희철 법무부 차관에 대해서도 고의적인 직무유기로 보기 어렵다며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두 번째로 제기되고 있는 의혹은 ‘꼬리자르기’다. 특검팀은 ‘몸통’으로 지목된 핵심인물에 대해서는 앞서 밝힌 대로 무혐의 결론을 내린 반면 한승철 전 검사장을 비롯한 부장 검사 등은 뇌물수수 및 직무유기 혐의로 기소했다. 특검팀은 한 전 검사장이 2009년 3월 부산의 한 식당과 룸살롱에서 정 씨로부터 각각 식사와 술을 대접받고 현금 100만 원을 받는 등 총 240만 원 상당의 뇌물을 수수했다고 밝혔다. 한 전 검사장은 향응 등을 받았지만 대가성은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특검팀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특검팀은 “한 전 검사장이 뇌물수수 혐의를 비롯한 범죄 및 비위 혐의에 대한 조사가 개시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 검찰청 소속 공무원의 범죄 및 비위에 관련된 사건의 조사, 처리 업무를 의식적으로 방기했다”며 직무유기 혐의를 인정했다. 박 전 검사장과 황 차관의 경우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대목이다.
특검팀의 조사대상에 오른 검사장급 검사 5명 중 기소된 사람은 한 전 검사장 단 한 명으로, 나머지 4명은 모두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반면 일부 현직 부장검사와 평검사는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 상후하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세 번째 의혹은 성접대 부분이다. 애초 이 사건이 국민적 공분을 이끌어 냈던 가장 큰 이유는 검사들의 성매매 의혹 때문이었다. 청렴과 강직을 모토로 해야 하는 검사 신분으로 성접대를 받았다는 것은 여타 뇌물수수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국민 정서에 반하는 일이었다. 정 씨는 “회식하고 2차까지 책임졌다” “성접대를 거절한 검사는 거의 없었다” “온천장 근처 M 룸살롱 등이 단골이었다”며 검사들을 상대로 한 성접대가 빈번히 이뤄졌음을 주장했지만 수사 결과 성매매 혐의로 기소된 검사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참고인 진술이 불분명한 데다 성매매를 한 것으로 지목된 여종업원의 행방을 찾지 못해 혐의 입증이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다. 김 아무개 부장검사의 성접대 정황을 포착해 기소를 건의한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보다 오히려 후퇴한 것이다.
특히 특검은 MBC 제작진으로부터 성매매 혐의로 지목됐던 김 아무개 부장검사와 2차를 나갔다는 유흥업소 여종업원과 정 씨의 통화가 담긴 녹취를 제공받았지만 특검은 무혐의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못 밝혔나’ ‘안 밝혔나’를 두고 구설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마지막 의혹은 특검의 ‘몸 사리기’ 행태다. 이는 특검과 특검보 등 지휘부만 민간인일 뿐 수사 실무를 담당한 인력들이 검찰에서 파견나왔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특검이 끝나면 검찰로 복귀해야 하는 검사들로서는 ‘친정’ 눈치를 봐야 하는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 박 전 검사장이 공개소환되던 8월 30일 오전 8시 반에 취재진의 눈을 피해 유유히 특검 사무실로 들어간 것이 좋은 사례다. 이 사건은 파견 검사가 상부보고 없이 몰래 문을 열어준 것으로 드러났는데 공개소환 원칙마저 깨버린 ‘제 식구 감싸기’ 행태는 특검에 대한 불신만 키운 셈이 됐다.
황희철 차관에 대한 조사도 ‘눈치보기 수사’에 대한 의구심을 낳기에 충분했다. 황 차관은 이미 8월 20일 조사대상임이 밝혀졌지만 대면조사 일정은 공개되지 않은 채 계속 미뤄지기만 했다. 그러다가 9월 14일 황 차관에 대한 대면조사가 끝났다는 황당한 소식이 들려왔다. 황 차관은 이미 이틀 전인 9월 12일 서초구 교육문화회관에서 조사를 마친 후였다. 조사 장소도 구설에 올랐다. 현직 차관에 대한 예우차원이라는 설명도 국민들을 납득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과적으로 제3의 장소에서 비밀리에 조사하는 ‘봐주기식’ 수사가 결국 ‘무혐의’로 이어졌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황 차관 외에도 정 씨가 접대 사실을 진술한 현직 고위층 인사에는 조 아무개 검사장도 있었다. 정 씨는 특검에 조 검사장을 최소 다섯 차례 이상 서울에서 만나 향응과 접대를 제공했다고 주장했지만 특검은 “믿을 만한 증거가 없고 제보자의 주장에 의하더라도 공소시효가 지났음이 명백하다”는 이유로 서면조사만 하고 내사종결처분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