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일 김영삼 전 대통령(작은 사진)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김 아무개 씨를 자택에서 만나 인터뷰 했다.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YS가 자신의 친부라고 주장하고 있는 김 씨는 그동안 어떤 인생을 살아 왔고, 또 현재 어떤 상태일까. <일요신문> 취재결과 김 씨는 성동구 응봉동 소재 149㎡(45평)쯤 되는 아파트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몇 차례 인터뷰를 거절하던 김 씨는 12월 2일 긴 망설임 끝에 굳게 닫힌 문을 열었다.
김 씨는 더 작은 평수의 아파트로 이사할 계획이라며 분주히 이삿짐을 옮기고 있었다. 어머니는 건강하시긴 하지만 함께 살고 있지는 않았고, 자신은 아직까지 미혼이라고 밝혔다. 180㎝가량 돼 보이는 장신에 마른 체격인 점만 제외한다면 아래로 처진 눈썹과 쌍꺼풀 없는 눈매, 콧날은 YS와 상당히 닮아있었다.
그는 “더 이상 상대방과 갈등을 만들고 싶지 않다”며 소송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했다. 그러나 한참동안 긴 침묵을 지키다 “이건 누가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다. 누구도 뒤집을 수 없는 ‘진짜’를 확인하는 과정이다”며 “피만 뽑으면 끝날 일이다. 친자확인이 될 때까지 소송을 취하하지 않을 것이고, 마지막엔 모든 것이 사실로 밝혀질 것이다”고 단언했다. 어머니의 안부를 묻자 “어머니도 조용히 모든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기다리는 상태”라고 답했다.
기자가 ‘그동안 YS로부터 보살핌이나 물질적 지원을 전혀 받지 못했냐’고 묻자 김 씨는 “그런 것은 아니다.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고 에둘러 표현했다.
그렇다면 김 씨가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최근에 친자소송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 씨의 자택을 몇 차례 방문한 기자는 그의 우편함에서 연체된 공과금 고지서를 여러 장 발견할 수 있었다. 직업을 묻자 그는 “과거에 유흥업소를 운영한 적은 있지만 지금은 무직상태”라고 밝혔다. 주변 정황상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음을 예상할 수 있었지만 김 씨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선 즉답을 피했다. 단지 “어느 정도 시기가 되면 어떻게 해주겠다는 식의 서로 간에 지켜야 할 약속이 있지 않았겠나. 김 전 대통령이 그것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마지막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고 주장했다.
YS가 김 씨에게 언급한 약속 중 하나는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김 씨를 호적에 올려 가족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이었다. 김 씨와 친모는 그 말을 믿고 YS의 임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하지만 YS는 퇴임 후 12년이란 세월이 흘렸지만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동안 측근들을 통해 연락을 취해오던 것도 뜸해졌다. 김 씨는 “최근 직접 김 전 대통령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만남은 이런저런 이유로 번번이 묵살됐다”며 “결국 막연한 기다림에 지쳐 법정에서의 만남을 요청하게 된 것이다”고 말했다. ‘경제적인 지원 때문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신이 나가지 않은 이상 아무 이유 없이 전직 대통령을 상대로 소송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김 씨의 친모가 유흥업소에서 일하다 김 전 대통령을 만났다’는 항간의 소문에 대해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그동안 7차례 변론기일 절차를 밟았는데도 YS는 출석은 물론 대리인 선임도 하지 않는 등 일절 대응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렇다면 김 씨와도 전혀 접촉이 없었던 것일까. ‘그동안 YS 측에서 연락을 받거나 달라진 분위기는 없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 씨는 “최근 상대방 측에서도 변호사를 선임해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다만 김 씨는 직접적인 연락 및 접촉에 대해서는 다시 침묵으로 일관했다.
YS 측이 계속 유전자 검사를 거부하면 어떻게 될까. 만약 친자확인 소송에서 혈연관계가 있다고 볼 정황 증거가 뚜렷함에도 당사자가 감정에 응하지 않으면 수검 명령에 이어 과태료나 감치 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 또 혈연관계에 있는 주변 인물을 감정해 간접적으로 친자관계를 규명하기도 한다. 김 씨의 주장에 따르면 최근 법원 측은 수검 명령 혹은 혈연관계에 있는 주변 인물 감정까지 진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1월 30일 기자와 통화한 담당 판사는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서 답변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구체적인 진행과정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김 씨가 끝내 즉답을 꺼려한 YS와의 사적인 부분에 대해선 <일요신문>이 단독입수한 고소장을 통해 대략적인 사연을 파악할 수 있었다. 소장에 따르면 YS는 김 씨의 친모인 김 아무개 씨와 내연관계를 맺다 1959년 3월경 김 씨를 혼외자로 얻었다. 호적을 확인한 결과 김 씨와 YS의 차남인 현철 씨는 생일이 이틀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당시 YS는 부산 서구 갑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해 제5대 국회의원 선거를 준비할 시기였다. 소장에 적시된 내용이 사실이라면 YS는 26세의 나이에 최연소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재선에 도전하는 중요한 시기에 현철 씨와 혼외자를 얻은 셈이다.
김 씨의 주장에 따르면 YS는 김 씨가 태어난 뒤 10여 년간 김 씨 모자가 사는 집에 간간이 들러 두 사람을 만났다. 김 씨의 나이가 스물이 넘었을 시점엔 자신이 설립한 민주화추진협의회 사무실로 김 씨를 불러 대화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당시 YS는 부산 서구에서 신민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경제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YS는 김 씨가 어렸을 때 측근들을 통해 생활비 및 부양료 등을 지속적으로 지원했다. 대통령에 당선되기 직전이었던 1992년경에는 김 씨 모자가 요식사업을 하다 거액의 빚을 지자 측근을 통해 부도 위기를 면하게 해주기도 했다.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청와대와 안기부 고위 관계자들을 통해 안부를 전하거나 연락을 취하기도 했다. 김 씨는 이러한 정황들을 근거로 소장에서 “출생 이래 YS는 오랜시간 원고에 대한 부양행위를 했고, 현재까지도 측근을 통해 연락하며 지내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씨는 기자와의 인터뷰 과정에서 YS가 여러 번 ‘법적인 가족으로 받아 준다’는 사전 약속을 했었음을 언급했다.
김 씨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YS 측은 어떤 입장일까. 12월 3일 기자와 통화한 YS 측의 김기수 비서실장은 “반세기나 지난 일의 진위를 누가 알 수 있겠나. 상대방 측 요구에 응할 만한 상황이 아니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김 실장은 이어 “소송을 제기한 김 씨는 배다른 형제들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사람이 어떻게 해서 출생한 것인지 누가 정확한 진실을 알 수 있겠나. 이미 50년 전의 일이다. 당시 일어났던 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고 덧붙였다.
기자가 유전자 감식 및 법적 대응 여부에 대해 묻자 “대응할 만한 사안도 아니다. 야당시절 얼마나 많은 지독한 음해들과 공작 사건들이 있었나. 그런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이런 스캔들이 큰 타격이었지만 지금은 세상이 바뀌지 않았나. 변호사를 선임하거나 법적인 대응을 한 것도 없고, 앞으로 계획도 없다”고 답했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