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민(왼쪽) 필로폰 사건이 전창걸 대마초 사건으로 번지는 등 연예인 마약사건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
시작은 김성민이었다. 당시 검찰은 김성민의 필로폰 투약, 그리고 해외에서 직접 필로폰을 밀반입한 혐의를 중심으로 수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김성민의 대마초 흡연 사실이 확인됐고 대마초 입수 경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전창걸의 혐의가 드러났다. 김성민이 대부분의 혐의를 인정하면서 재판이 빨리 진행돼 사건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9부(배준현 부장판사)의 징역 2년 6월과 추징금 90만 4500원 판결로 일단락됐다. 대다수의 마약 사건 연루 연예인이 초범이라 집행유예를 받은 데 반해 김성민의 실형 판결은 대마초가 아닌 필로폰인데다 직접 해외에서 밀반입하는 등 죄질이 무거웠기 때문이다. 판사의 판결문 가운데 눈길을 끄는 대목은 “수사에 협조한 점이 참작된다”는 부분이다. 수사 협조는 ‘김성민 리스트’를 지칭하는 것으로 법정에서도 김성민은 대마초 입수 경로에 대해 “전창걸이 아는 동생에게 받았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지난해 12월 형법 및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는데 여기에는 ‘사법협조자 소추면제 및 형벌감면제’가 포함돼 있다. 마약범죄 등에 한해 전체범죄 규명에 크게 기여한 경우 소추면제 또는 형벌감면을 한다는 취지다. 아직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진 않았지만 마약 수사에선 이런 방식이 관행처럼 이뤄져 왔다. 김성민을 필두로 한 이번 마약 수사 역시 마찬가지. 김성민의 수사 협조로 이번 마약 사건이 김성민 개인에서 연예계 전반으로 확대된 셈이다.
김성민 필로폰 사건이 전창걸 대마초 사건으로 확대되면서 서울중앙지검 강력부(김희준 부장검사)는 새로운 수사 방향을 잡게 된다. ‘전창걸 리스트’로 연극계 전반에 대한 마약 수사가 시작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
현재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오른 것으로 알려진 ‘전창걸 리스트’ 연예인은 세 명. 중견배우 P, 조연급 배우 K 등이다. 이 가운데 조연급 배우 K는 해외로 출국한 상태고 중견배우 P는 잠적 중이다. 검찰은 조연급 배우 K가 해외로 출국하자 잠적 중인 P까지 해외로 출국할 수도 있어 출국금지를 해 놓은 상태다. 해외로 도주했다고 알려진 K는 영화 촬영을 위해 출국했을 뿐, 검찰 소환 조사에 응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이가 바로 중견배우 P다. 오광록과 마찬가지로 대학로 연극계에서 잔뼈가 굵은 P는 영화와 드라마에 조연급으로 활동하며 연기파 배우로 구분되는 이다. 극단 대표를 역임하기도 한 P는 대학로 연극계는 물론이고 인기 연예인들과의 인맥도 탄탄하다. 특히 대학로 연극계에서 수많은 후배 배우들을 키워낸 실력파 배우로 손꼽히는데 전창걸 역시 이들 가운데 한명이다. 이 외에도 톱스타 A, B 등을 비롯한 여러 명의 유명 연예인이 P와 매우 가까운 이들로 분류된다.
물론 P는 아직 수사 선상에만 올라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잠적 중인 P가 검찰에 소환돼 대마초를 흡연한 것으로 확인돼 입건될 경우 그 파장은 상상을 초월할 수도 있다. ‘P 리스트’에 톱스타의 이름이 대거 등장할 수도 있기 때문.
특히 눈길을 끄는 이는 톱스타 A다. 검찰이 ‘김성민 리스트’를 확보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보지 등을 통해 가장 먼저 이름이 거론된 이가 바로 A였다. 그렇지만 연예관계자들은 김성민과 A가 친분이 있는 사이가 아닌 데다 같이 활동한 적도 없음을 주목하며 왜 A가 거론되는지를 의아해했다. 이후 김성민 리스트의 주인공은 전창걸로 밝혀지면서 A를 둘러싼 소문도 이내 사그라졌다. 그렇지만 중견배우 P가 연루돼 있다면 A의 이름이 거론됐던 까닭도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현재 강력부는 이번 마약 사건을 진행하며 언론 접촉을 최대한 줄이며 보안에 신경 쓰고 있다”면서 “처음에는 김성민 개인의 필로폰 상습투약 및 밀반입 사건으로 시작됐지만 사건이 연극계 전반에 대한 대마초 수사로 확대되고 톱스타들까지 연루됐을 수 있어 강력부가 신중히 수사를 진행해왔다”고 밝힌다.
문제는 조심스럽게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조연급 배우 K가 해외로 출국했고 중견배우 P가 잠적해 연락이 두절된 것이다. 전창걸 대마초 수사가 진행되면서 P는 출연 중인 드라마에서 자진 하차했다. 이후 연락이 두절된 채 잠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P가 언제까지 잠적할 수 있느냐다. 필로폰과 달리 대마초는 체내에 머무는 기간이 비교적 짧다. 가장 정밀한 모발검사 역시 대마초를 투약하고 6개월가량 지나면 음성반응이 나온다. 전창걸을 통해 P가 대마초를 흡연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있을지라도 모발 검사 등에서 음성 판정이 나오면 검찰은 마약 투약 혐의를 입증하기가 힘들어진다. 주지훈이 검거된 2009년 모델계 마약 수사에서 몇몇 모델 출신 연예인이 수사 선상에 올랐지만 검찰이 이들의 혐의를 입증하지 못한 까닭 역시 검사 결과가 음성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주지훈은 음성판정이 나왔지만 스스로 혐의를 인정해 사법처벌을 받았다. 따라서 P의 잠적이 길어질 경우 이번 검찰의 연예인 마약 수사 전체가 흐지부지 마무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아직 P의 혐의도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벌써부터 ‘P 리스트’를 거론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톱스타 A가 수사선상에 올랐다는 얘기도 사실무근”이라며 “우선 잠적 중인 P를 소환하는 데 검찰 수사력을 모으고 있는데 예상보다 빨리 P의 소환이 이뤄질지도 모른다”는 입장을 보였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