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리코는 고대 유적이 있는 유럽의 어느 도시 광장 풍경으로 머릿속 공간을 표현했다. 유년기를 보냈던 도시의 기억이 잠재의식으로 남아 있던 영상에서 착상했다고 한다. 도시 공간을 통해 생각이 자라나고 담기는 뇌의 어느 부분을 구체적 형상으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미술계에 충격을 주었다.
전통 수묵화를 그려온 김유경도 키리코와 같은 생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려내 주목받는 작가다. 그는 동양회화의 기본 사상을 빌어 머릿속 공간을 그려낸다. 예부터 동양회화에서 최고의 목표를 삼았던 것 중 하나가 자연 속에 깃들어 있는 ‘기운’을 그려내는 일이었다.


동양인이 바라본 풍경 속의 기운에는 감성적 코드가 숨어 있다. 장관을 연출하는 산세나 구름, 바람, 비 혹은 눈에다 인성적 요소를 덧붙인다는 것이다. 즉 살아 있는 생명체로 자연을 대하는 것인데, 그래서 산신령 같은 이미지도 생기게 되었다. 자연을 이렇게 표현하다 보니 2000여 년 넘게 산수화가 빛을 잃지 않고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것이다.
김유경도 자신이 보아온 풍경을 그린다. 마음속에 새긴 풍경을 그리는데, 여기에 기억이라는 인성적 코드를 덧붙인다. 풍경을 머릿속에 기억으로 저장됐다가 흩어지는 생각의 흔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풍경을 보고 마음속에 새긴다. 자신만의 독자적 사건이 녹아든 풍경이라면 더욱 깊게 마음속에 남을 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속 잔상은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 김유경 회화는 생각이 증발해버리는 순간을 수많은 먹 점으로 화면에다 옮기는 작업이다. 이를 통해 우리 삶이 자신이 경험해 쌓아온 기억의 집합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
전준엽 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