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단잠에 빠져있을 새벽 4시. 텅 비어있던 원주천 둔치의 주차장은 변신을 시작한다.
날이 밝으면 차와 사람들이 서로 얽히고설키며 잔치가 열린다. 원래 주차 공간이었던 곳에는 작은 노점상들이 가득 들어찼다. 밤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싱싱한 농작물에는 몇 개월간의 수고와 뿌듯함이 서려 있다.
27년 동안 원주 농업인 새벽시장 사람들이 새벽잠을 잊고 써 내려온 이야기를 담았다.
1994년, 700여 명의 농민들이 모여 직거래를 시작한 강원도 원주 새벽시장. 누군가에겐 거리의 흔한 노점상일지 모르지만 오랫동안 판로를 찾지 못해 생계를 걱정하던 농민들에게 이 곳은 눈부신 기적과도 같다.
어렵게 마련한 한 칸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이곳 농부이자 상인들은 한 달에 한 번 당번을 서며 청소도, 방역도 모두 직접 관리한다.
농작물을 쌓아놓은 매대 옆에는 생산자의 이름 석 자와 연락처가 적힌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품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환불해주는 '즉시 리콜제'도 운영한다.
내가 길러낸 작물을 직접 판매하고 누군가의 밥상에 올라가기 까지 책임진다는 것은 자식을 길러 사회로 내보내는 부모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주말에 새벽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평균 2000여 명. 소문 듣고 멀리서 찾아온 손님부터 새벽 잠 없는 동네 어르신까지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인다. 굳이 '새벽에, 직접 얼굴을 맞대고' 물건을 사러 이곳을 찾는 이유는 도심에서 보기 어려운 옛정의 맛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주려는 상인과 말리는 손님의 역설적인 실랑이가 벌어진다. 몇천 원이면 한 가족이 먹고도 남을 나물 한 무더기에 넉넉한 덤까지 따라온다.
새벽잠을 이기고 찾아주는 것만 해도 감사한데 '맛있게 먹어서 또 찾아왔다'는 인사까지 따라오면 절로 나물 봉지가 두툼해질 수밖에.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광경이다.
새벽시장의 시작을 기억하고 있는 전광휴, 이정희 부부. 어여뻤던 새댁이 할머니가 되어버린 긴 시간동안 어린 자식들은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했다. 자식 뒷바라지를 위해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한결같이 샛별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 두 사람.
한여름에도 반창고가 떨어질 날 없는 거친 두 손에는 그들이 지낸 세월이 고스란히 새겨 있다.
노력한 만큼 보답을 해주는 땅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인생의 진리를 배우는 새벽시장 사람들. 오늘은 어떤 희망이 주렁주렁 열렸을지 함께 해본다.
내레이션은 친근하고 유쾌한 연기를 선보이며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배우 박철민이 맡았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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