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병으로 입시 실패 뒤 30년 만에 꿈 이뤄…형편상 일 두 배로 하며 학업 병행해 우수 성적 졸업
1966년생 쉰정화는 과거 대학입시에 실패했다. 고등학교 3년간 성적은 우수했지만 집안이 어려워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실조에 걸리기 일쑤였다. 공부할 힘이 없었다. 그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험을 앞두고 눈병이 났다. 쉰정화는 “두 눈에서 고름이 나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라고 그 당시를 떠올렸다.
결국 쉰정화는 낙방했다. 그의 아버지는 화가 났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제대로 지원해주지 못한 본인 탓이라는 자책감이 컸다. 또 아들인 쉰정화가 이불 속에 숨어 눈물을 흘리고 있던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평소 쉰정화는 대학에 진학해야 ‘운명’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형편상 ‘재수’를 택할 수는 없었다. 학교에 다니는 남동생과 여동생 부양도 이제 장남인 쉰정화의 몫이었다. 생계와 꿈 사이에서 쉰정화는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쉰정화는 닥치는 대로 일했고, 공사장을 전전하며 미장 일을 배웠다.
1992년 쉰정화는 한 동네 사는 양취류와 결혼했다. 그리고 딸과 아들이 태어났다. 어엿한 가장이 됐지만 대학의 꿈은 더욱 멀어졌다. 하지만 대학을 가야 운명이 바뀐다는 그의 신념은 바뀌지 않았다. 아무리 고된 날이라도 그가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게 있었다. 바로 독서였다. 쉰정화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매일 책을 읽었다.
2012년 쉰정화의 딸이 산둥의 한 의과대학에 합격했다. 2017년엔 아들이 대학을 들어갔다. 자랑스러웠지만 마음 한 구석은 허전했다. 자녀들이 대학에 다니는 모습을 보자 30년 넘게 마음속에 간직했던 대학의 꿈이 불붙었다.
쉰정화는 자녀들이 공부했던 교재들로 입시 공부를 시작했다. 매일 새벽 4시에 공장으로 출근, 영어 단어를 외웠다. 저녁에 집으로 오면 수학 공부를 했다. 쉰정화는 “시험에 붙고 안 붙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나 스스로가 최선을 다하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2018년 쉰정화는 딸의 도움을 받아 원서를 냈고, 수능 시험을 봤다. 하지만 시간을 쪼개 ‘독학’으로는 높은 점수를 얻기란 쉽지 않았다. 점수는 그리 높지 않았고, 딸은 아버지가 실망할까봐 이를 알려주지 않았다. 딸은 “성적표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거짓말을 여러 번 해야 했다.
쉰정화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점수로 들어갈 수 있는 대학을 수소문했고, 결국 지닝직업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쉰정화의 고민은 다시 시작됐다. 대학 입학금, 등록금을 내기가 녹록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단 합격을 비밀로 했는데, 들통 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언론에 쉰정화의 대학 합격 소식이 도배됐고, 이를 접한 아내는 입학을 강하게 반대했다. 아내는 “대학교에 가는 것은 시간낭비다. 졸업하고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쉰정화의 노부모는 아들의 꿈이 이뤄진 것을 기뻐하긴 했지만 지원해 줄 능력은 없었다. 모친은 “너 스스로가 해결할 방법을 찾기 바란다”고만 했다.
쉰정화 아들은 대학교 2학년이었다. 딸은 대학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내는 힘든 농사를 도맡고 있었다. 쉰정화는 대학을 간다고 말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했다. 다른 지역에 일을 하러 간다고 하곤 대학 기숙사에 들어갔다. 대신 일은 두 배로 했다. 쉰정화의 ‘주경야독’은 계속됐다.
다행인 점은 쉰정화의 사정을 알게 된 학교 측이 학비를 면제해줬다는 것이었다. 또 공부하면서 돈을 벌 수 있도록 아르바이트 자리도 주선해줬다. 그 후 아내에게도 고백을 했고, 간신히 허락을 받았다. 쉰정화는 평소 습관을 유지해 모두가 잠 들어있는 새벽 4시에 일어나 공부를 했다. 쉰정화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시간이 촉박하고 어깨가 무겁다. 나는 다른 학생들과 다르다. 학교에서 배우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게 너무나 안타까웠다. 시간은 돈이다. 수업이 있을 때는 수업을 들었고, 나머지 시간엔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혼자 공부를 했다. 공부와 일 외에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쉰정화는 3년 동안 절반은 학교에서, 절반은 공사장에서 지냈다. 그리고 지난 6월 25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장을 받았다. 그 전날엔 딸이 아이를 낳았다. ‘할아버지’가 된 쉰정화는 평소처럼 공장 작업복을 입고 졸업장을 받으러 학교에 갔다. 쉰정화는 “아쉬움의 종착지이자 새로운 출발”이라는 말을 남긴 후 다시 공사장으로 돌아갔다.
중국=배경화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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