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패밀리(royal family). 황제나 왕의 가족 혹은 특정 사회에서 귀빈 대접을 받는 사람의 가족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는다. 대중문화가 발달한 사회에서 연예인은 ‘신흥귀족’으로 대접받곤 한다. 특히 영화계에선 주연급으로 분류되는 배우들 가운데 연기력까지 인정받은 톱스타들은 신흥귀족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영화계에 이들이 뭉친 ‘로열패밀리’가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1월 25일 배우 박중훈의 트위터에는 흥미로운 글이 하나 올라왔다. 그는 “어제 안성기 선배님을 포함해 남자 배우 13명이 우리 집에서 신년모임을 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말한 13인은 장동건 현빈 김민종 황정민 고수 차태현 유지태 김수로 공형진 설경구 정준호 등이다. 충무로를 대표하는 주연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인 셈. 나이대도 다양하다. 안성기를 필두로 현빈까지 무려 30년의 세월을 아우르는 모임이다. 7일 해병대에 입소한 현빈은 이 멤버들과 작별 파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회성 만남이 아니라 끈끈한 동료애와 정으로 뭉친 충무로의 로열패밀리란 의미다.
그 중심에는 박중훈과 공형진이 있다. 박중훈은 선배 안성기를 보필하고 후배들을 이끄는 중심축이다. 한 영화 관계자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분위기 메이커로 유명한 박중훈은 충무로 대표 남자배우 모임의 핵심 멤버다. 박중훈은 현재 충무로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의 대부 격이라 할 수 있는 안성기를 등에 업고 있기 때문에 더욱 막강한 인맥을 자랑한다”고 귀띔했다.
박중훈이 트위터에 각 배우들에 대한 코멘트를 올린 것도 그의 영향력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 관계자는 “톱 배우들의 사생활 노출은 본인은 물론이고 소속사도 극도로 조심스러워하는 부분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대중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트위터에 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 박중훈의 진가를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공형진은 로열패밀리 속에서 ‘간사’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중훈이 큰 그림을 그린다면 붙임성 좋고 둥글둥글한 공형진은 행동파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기로 유명한 장동건 현빈 등이 그가 MC를 맡고 있는 케이블 채널 <택시>에 얼굴을 비쳤다는 것은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금전적 이익이나 제작진의 설득에는 움직이지 않지만 공형진의 부탁 한마디에 기꺼이 출연을 결심하는 ‘의리’로 뭉친 모임이라 할 수 있다.
매년 10월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진행되는 ‘굿다운로더 캠페인’은 이들 로열패밀리가 충무로 속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장이다. 부가판권시장이 붕괴한 충무로를 살리기 위해 마련된 이 행사는 안성기와 박중훈이 공동 위원장을 맡고 있다. 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 행사 이외에는 다른 활동을 자제하는 톱스타들도 굿다운로더 캠페인 행사장에 가면 볼 수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관계자는 “굿다운로더 캠페인은 충무로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모두 살기 위한 자구책이다. 이를 대중에 전파하기 위해서는 유명 배우들의 홍보 참여가 필수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안성기 박중훈을 필두로 한 톱스타들의 ‘라인’은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2000년 초반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을 이끌었던 영화계 파워인맥 문성근-명계남-이창동 감독처럼 현재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을 이끄는 안성기가 정치권에 입문할 경우 그 영향력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로열패밀리의 힘 때문이다. 그렇지만 안성기가 정치권에 입문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또 그러기에 후배 배우들이 그를 따르는 것이라는 게 영화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로열패밀리를 하나로 뭉치게 하는 또 다른 중심이 있다. 다름 아닌 야구. 남자 배우들로 이뤄진 모임인 만큼 함께 땀 흘리며 운동하는 것이 큰 기쁨이다. 이름하여 ‘플레이 보이즈’다. 이 연예인 야구팀에는 안성기 박중훈과 신년 모임을 한 장동건 현빈 공형진 황정민 외에 정우성 강동원 조인성 김승우 지진희 등이 속해 있다. 더 큰 범위를 가진 로열패밀리인 셈.
플레이 보이즈에 들어가기 위한 명문화된 자격 기준은 없고 주로 기존 멤버들이 합류를 권유하는 식이다. 지난해 3월 야구단에 합류한 권상우는 김승우가 추천했다. 구단주를 맡고 있는 김승우가 함께 영화 <포화 속으로>를 촬영하던 권상우를 끌어들여 구단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한 것. 플레이 보이즈의 한 관계자는 “권상우는 야구보다는 축구 마니아로 잘 알려져 있지만 톱배우들의 모임 참여를 사양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플레이 보이즈에 속하길 원하는 배우도 있다. 로열패밀리의 일원이 되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셈. 하지만 명확한 가입 기준이 없기 때문에 들어오기가 어렵지도 않지만, 동시에 쉽지도 않다. 이 관계자는 “특정 기준이나 자격은 없고 기존 멤버들의 소개로 들어와 자유롭게 어울리며 일원이 되곤 한다. 하지만 불순한 의도를 갖고 접근하는 이들은 환영하지 않는다. 또한 워낙 쟁쟁한 멤버들이 모여 있다 보니 다른 배우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워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남자 배우들이 몇몇 유명 배우들을 중심으로 집단을 형성하는 것과 여배우들의 사조직은 거의 없다. 고(故) 최진실을 중심으로 엄정화 이소라 신애 이영자 정선희 홍진경 등이 모여 ‘최진실 사단’이라 불린 적이 있지만 이 외에는 드러난 모임을 찾기 힘들다.
지난 1월에는 한혜진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사진 한 장이 화제를 모았다. 이 사진 속에는 영화 <글러브>의 VIP 시사회에 참석한 한혜진 박탐희 김성은과 박지윤 아나운서 등이 <글러브>의 주인공인 유선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여배우끼리 사석에서 어울리는 모습을 보기 어려운 만큼 이 사진은 꽤 희소성을 가졌다.
한 여배우의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톱 여배우일수록 다른 여배우들과 섞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귀띔했다. 게다가 항상 중심에 위치해 보살핌을 받는 여배우들의 질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일례로 여러 여배우가 함께 촬영하는 현장에는 다른 여배우보다 먼저 촬영장에 나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매니저들은 눈치 보기 바쁘다”는 하소연을 듣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때문에 인기도를 떠나 나이와 데뷔 연차 순으로 줄서기를 해야 하는 사조직이 자존심 강한 여배우들 사이에서는 쉽게 형성되지 않는다는 게 영화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