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통합 중단 마이웨이 선언…김동연과 ‘3지대’서 손잡고 야권 단일화 또는 이재명과 전략적 연대 가능성
“그야말로 오월동주에 달렸다.”
정치권 한 관계자가 8월 16일 안 대표의 보수 통합 중단 선언 직후 던진 말이다. 여야 관계자들의 분석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향후 대선판의 시나리오는 △3자 구도(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제3지대) △민주당 대 보수대통합(국민의힘+제3지대) △진보대통합(민주당+제3지대) 대 국민의힘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여의도 정치권 인사들은 ‘안철수 변수’ 파괴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박빙 구도라면 또 모를 일”이라고 밝혔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안 대표 지지도는 2∼5% 사이를 오간다. 대선 막판 범보수와 범진보가 총결집해 51 대 49가 된다면, 안 대표 지지도가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간 합당 결렬로 중도층의 제3지대 판은 한층 커진 상태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3자 구도다. 독자 노선을 고수한 안 대표가 완주한다면, 대선은 민주당과 국민의힘, 제3지대 구도로 치러진다. 이른바 ‘2012년 대선’의 재판이다. 안철수 현상이 불어 닥친 당시 대선은 문재인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 안 대표가 삼분지계를 형성했다. 문 대통령과 안 대표는 반박근혜 연대에 맞서 야권 단일화를 시도했다.
안 대표는 18대 대선을 불과 20여 일 남긴 2012년 11월 23일 전격 사퇴했다. 최종 링에는 문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이 올랐다. 안 대표 사퇴 이후 중도층 중 다수는 정권교체에 힘을 실었다. 선거 막판 문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과의 격차를 좁힐 수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최종 승부는 박 전 대통령(51.6%)의 3.6%포인트 차 승리. 3자 구도 당시 여론조사는 박 전 대통령이 40%대, 문 대통령과 안 대표가 각각 20%대였다.
박근혜 탄핵 이후 치른 2017년 대선도 사실상 3자 구도였다. 안 대표는 당시에도 독자 노선을 고수, 21.4%를 얻었다. 문 대통령은 41.1%로 최종 당선됐다. 자유한국당 후보였던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은 24.0%로 2위를 차지했다. 바른정당 후보였던 유승민 전 의원은 6.8%,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6.2%였다. 2017년 대선도 18대 대선과 마찬가지로, 3자 후보는 ‘4 대 2 대 2’ 구도였다.
그로부터 4년 뒤 안 대표는 또다시 독자 출마에 방점을 찍었다. 안 대표는 국민의힘과의 합당 결렬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정부의 무능과 부패, 독선과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단호하게 심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선 출마 질문에는 “따로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사실상 대선 출마의 여지를 열어둔 셈이다. 야권에선 안 대표가 연말까지 독자노선을 고수, 몸값 올리기에 나설 것으로 본다.
안 대표 기자회견 후 여의도엔 ‘11월 단일화설’ 등 특정 일정을 담은 시나리오도 돌고 있다. 국민의힘과의 통합 결렬 후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연대의 손짓을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 전 부총리도 때마침 (사)유쾌한 반란 이사장직을 사임하면서 제3지대 연대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그는 8월 18일 마지막 고별강연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세 유·불리나 정치 공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맞지 않는다”며 안 대표와의 연대에 선을 그었다.
다만 김 전 부총리가 연일 ‘정치 판갈이’를 정치 입문의 명분으로 삼은 만큼, 기성 정당보다는 신당 창당을 통한 대선 출마에 무게를 둘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김동연의 3지대 연대 문이 열려있다는 뜻이다. 정치권에서도 김 전 부총리 선 긋기 발언에 대해 “3지대 주도권 다툼에 들어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3지대 판의 공간이 열리더라도 3자 구도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3지대 세력이 몸값을 키운 뒤 기성 정당과 ‘인수합병(M&A)’을 시도하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3지대가 반문재인 연대에 합류한 뒤 민주당과 겨룰 수도 있다. 반대로 3지대가 민주당과 손잡고 국민의힘 제어에 나설 수도 있다.
안 대표가 국민의당 대선 후보로 출마하기 위해선 △선거 1년 전 당 대표직 사퇴를 규정한 당헌·당규 개정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 단일화 당시 약속한 합당 파기 등을 넘어야 한다는 점도 M&A 시도에 힘을 싣고 있다. 게다가 김동연 전 부총리 없이 독자로 3지대 깃발을 꽂기도 어렵다. 국회 한 보좌관은 “3지대 키를 김 전 부총리가 쥐고 있다는 점에서 안 대표가 영향력을 행사할지 물음표”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마이웨이를 택한 안 대표가 넘어야 할 첫 번째 고비는 ‘김동연과의 관계 설정’이 될 전망이다.
이후 관전 포인트는 ‘3지대의 M&A 방향’이다. 안 대표가 2015년 12월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을 탈당한 이후 줄곧 반문(반문재인)의 중심에 선 만큼, 대선 막판까지 제3지대에서 몸값을 키운 뒤 국민의힘 최종 후보와 야권 단일화에 나서는 방안이 현재로선 유력하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이어 또다시 캐스팅보트 역할을 고리로 존재감을 극대화할 수 있어서다. 실제 양당 간 합당이 무산된 직후에도 국민의힘 내부에선 연대 불씨만은 꺼뜨리지 않았다. 당 공식 반응은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다”였지만, 개별 의원들의 반응은 달랐다.
유승민 전 의원은 “아쉬움이 크다”며 조속한 통합 논의를 촉구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힘을 모아야 할 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는 “분열은 공멸”이라고 했다. 단일화 실무협상단장인 성일종 의원도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며 향후 단일화 여지를 남겼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안 대표가 범야권 표 확장성을 위해 중도 파이를 넓히는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는 말도 나온다.
변수는 김동연 전 부총리 의중이다. 국민의힘에선 ‘김동연 역할론’과는 별개로, 김 전 부총리를 ‘우리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 수도권 한 초선 의원은 “김 전 부총리가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를 할 것으로 본다”고 잘라 말했다. 안철수·김동연의 3지대가 1997년 대선 당시 ‘DJP(김대중·김종필) 모델’을 따를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당시 JP는 의원내각제 추진을 명분으로 DJ와 손을 잡고 호남·충청 연대판을 키웠다. 헌정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의 일등공신인 JP는 김대중 정부 출범 후 초대 국무총리에 올랐다. 안 대표도 민주정부 4기 내각의 일부 지분을 보장받고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민주당에서 친문(친문재인) 성향이 옅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최종 후보로 선출될 경우 안 대표도 단일화 부담을 덜 수 있다. 이른바 ‘이재명·안철수·김동연’이 전략적 연대를 꾀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다만 이 지사 측이 3지대와 오월동주를 할 의지가 있는지 불분명한 데다, 제3지대 판이 예상보다 크지 않을 땐 성립할 수 없는 시나리오다.
민주당 최종 대선 후보가 국민의힘 최종 대선 후보를 크게 앞설 때도 마찬가지다. 캐스팅보트 역할론이라는 나름의 지분을 쥔 안 대표 영향력이 급속히 떨어졌을 때도 민주당과 제3지대의 연대 시나리오는 무산된다. 김동연 전 부총리가 독자 행보 속내를 내비친 8월 18일, 안 대표는 허경영 국가혁명당 명예대표로부터 단일화 제안을 받았다. 안 대표의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가 일각에선 안 대표가 민주당과 국민의힘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만 유지하다가 자멸하는 게 아니냐는 기류도 감지된다.
윤지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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