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때릴수록 ‘기본소득 프레임’ 강화…이낙연·정세균 단일화 및 후보 간 합종연횡도 쉽지 않아
친문(친문재인)계의 지상과제다. 그리고 승부수를 띄웠다.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 논란에 휩싸인 기본소득 논쟁을 명분으로 삼고 반이재명 연합군에 뛰어들었다. 중립기어를 풀고 ‘이재명 때리기’를 본격화한 것이다. 친문발 기본소득 선공이 반이재명 연합군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반이재명 전선의 핵심 두 축인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정세균 전 국무총리 간 연대는 되레 멀어지고 있다. 최악 땐 후보 간 합종연횡도, 지지층 단일대오도 실패할 수도 있다.
“자충수다.”
민주당 수도권 한 의원이 친문발 기본소득 공세 직후 던진 말이다. 핵심은 이렇다. 친문계가 9회 말 투아웃 역전 홈런을 치기 위해선 ‘대선판을 뒤집는 전략’을 써야 하는데, 친문발 기본소득 공세는 이재명 프레임을 오히려 강화하는 전략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당의 다른 관계자도 “때리기 전략만으로는 판을 뒤집는 데 한계가 있다”고 잘라 말했다.
민주당 소속 홍영표 김종민 신동근 의원은 8월 1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본소득과 정치개혁에 대한 치열한 논쟁에 참여해 달라”며 대선 예비후보들에게 전격 제안했다. 사실상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콕 집어 저격한 셈이다. 셋은 친문계 싱크탱크인 ‘민주주의 4.0 연구원’ 소속이다.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부엉이모임’의 핵심 멤버이기도 하다. 여의도에선 “관망하던 친문계가 중립기어를 풀고 진격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들이 사실상 ‘진문(진짜 친문) 감별사’를 자처하자, 여권 경선판은 술렁였다. 일각에선 경선판이 ‘친문 대 비문(비문재인)’을 넘어 ‘진문’, ‘뼈문(뼛속까지 친문)’ 등으로 확전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중립기어를 푼 친문계의 움직임이 반이재명 전선의 방아쇠 역할을 할 경우 판을 흔들 수 있다는 계산법도 등장했다.
여기엔 관망하던 친문계가 동시에 ‘이낙연 지지’에 나선다면, 박스권에 갇힌 이 전 대표의 지지도를 끌어올 수 있다는 분석이 깔렸다. 민주주의 4.0 연구원 소속 친문계 의원 중 중립지대파는 20명 안팎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움직이면 이른바 ‘이재명 대세론’과 ‘친문이 옹립한 이낙연’ 구도를 만들 수 있다는 게 친문계 구상이다. 이 전 대표는 홍영표 김종민 신동근 의원의 기자회견 직후 “그 길에 함께하겠다”며 화답했다.
친문계 내부에선 이 전 대표의 지지도가 상승 곡선을 그릴 경우 ‘공개 지지 선언 등을 하자’는 안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친문발 기본소득 파상공세 후 이재명 대세론이 흔들릴 조짐이 보이면, 옛 부엉이모임 소속 의원들이 집단지지 선언을 하는 식이다.
실제 중립기어를 푼 친문계는 연일 파상공세를 폈다. 김종민 의원은 8월 18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기본소득과 관련해 “복지국가와 기본소득은 다른 길”,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이 걸어온 복지국가의 길을 반드시 이어가야 한다” 등으로 이 지사를 재차 직격했다. 기본소득의 포퓰리즘을 공격하는 동시에 이 지사의 아킬레스건인 민주당 적통 논란을 끄집어냈다. 당 안팎에선 “친문계가 적자 논쟁을 본격하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란 분석이 제기됐다.
문제는 이 지사로 기울어진 여권 경선판을 바꿀 수 있느냐다. 회의적인 시선이 적지 않다. 이 전 대표의 전략은 ‘이재명은 때리고 정세균은 끌어안고’다. 중립기어를 푼 친문계를 등에 업고 이 지사의 기본소득을 공격, 호남 단일화인 이·정(이낙연·정세균) 연대를 끌어내는 전략이다.
하지만 기본소득을 때리면 때릴수록 여권 경선판은 이재명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되레 이 지사의 기본소득 프레임은 강화된다는 의미다. 이 전 대표가 친문계 지지를 사실상 받고도 지지도가 10%대에 갇힌 것도 이 같은 전략적 미스와 무관치 않다.
갈 길 바쁜 이 전 대표가 꺼낸 것은 정 전 총리와의 단일화다. 이 전 대표는 8월 15일 전북을 방문, “(둘은) 문재인 정부의 초대, 2대 총리로 함께 일한 사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울 종로구도 정 (전) 총리께 물려받은 지역구”라고 전했다. 정 전 총리 고향에서 사실상 단일화 구애에 나선 셈이다. 이에 정 전 총리는 이 전 대표를 향해 “(단일화 요구가) 스토커 수준”이라며 날을 세웠다.
여당 복수 의원들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이·정(이낙연·정세균) 연대에 대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 전략통으로 꼽히는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8월 19일 CBS라디오 ‘한판승부’에 출연해 “전혀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했다. 여의도 관계자들은 이·정 연대 가능성이 낮은 이유로 ‘타이밍 미스’를 꼽았다.
한 여론조사 분석가는 “지지도가 낮은 정 전 총리가 기왕에 단일화를 할 거면, 승리 가능성이 큰 쪽에 붙지 않겠냐”라며 “박스권인 이 전 대표가 자꾸 단일화를 요구하면서 (합종연횡의) 벽만 높아진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재명 대세론에 균열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호남 단일화를 섣불리 하는 것은 필패 카드인데, 이 전 대표가 무리하게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는 뜻으로 분석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전 대표나 정 전 총리는 마지막 도전에 나선 상황이다. 이들 모두 “더 이상의 도전은 없다”고 말했다. 낙선자는 정치 인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다. 정치 인생의 마지막 여정 도중, 대세가 아닌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호남 단일화에 대한 실익도 명분도 없어서다. 21대 총선 때 ‘정치 1번지’ 종로 지역구를 배턴 터치하는 과정에서 남은 보이지 않는 앙금도 양측의 단일화를 멀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초대 총리였던 이 전 대표는 정 전 총리가 문재인 정부 두 번째 총리로 발탁된 뒤 종로 지역구를 꿰찼다.
이 과정에서 정 전 총리는 애초 총리직을 고사했다. 대신 김진표 민주당 의원을 청와대에 추천했다. 정 전 총리는 당시 국회의원 출마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했지만, 청와대의 인물난과 문재인 대통령의 막판 설득 끝에 내각 카드를 택했다. 정 전 총리의 국회의원 출마를 원했던 일부 참모그룹은 이 전 대표의 종로 안방 차지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양 후보의 물리적 합종연횡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친문발 참전에도 불구하고 반이재명 전선은 오히려 더 약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호남 단일화 이외에도 타 후보들의 연대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도 반이재명 전선을 약화하는 요인이다. 우상호 의원은 ‘한판승부’에서 당내 대선 예비후보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김두관·박용진 의원 등을 언급하며 “되게 독특한 후보들”이라며 “하나의 유사성을 가지고 특정 후보와 연합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전망했다. 일부 후보가 중도 사퇴하면서 지지층 간 자연스러운 단일화는 있을지언정, 후보 간 합종연횡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이 전 대표 측이 믿는 것은 ‘결선투표’다. 민주당은 1차 경선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을 땐 1, 2위가 승부를 벌이는 결선투표제를 도입했다. 이 지사의 지지도가 앞서 있지만, 각 캠프 분석을 종합하면 ‘이재명 대세론은 공고하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이낙연 캠프 내부에선 이 지사와 결선에서 맞붙을 경우 호남과 친문이 반이재명 전선으로 대거 이동하지 않겠느냐고 분석한다.
민주당은 8월 31일 온라인 투표를 개시하고 대전·충남(9월 4일) 세종·충북(9월 5일), 대구·경북(9월 11일), 강원(9월 12일) 순으로 투표를 순차 공개한다. 강원 경선 후 발표하는 약 70만 명의 1차 선거인단 투표 결과인 이른바 ‘1차 슈퍼위크’가 여권판 대선 경선의 분기점인 셈이다. 하지만 합종연횡은 물론, 지지층 간 연대를 하기엔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도 반이재명 연대 전선의 리스크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민주당 권리당원의 특징은 오더(명령)를 잘 듣지 않고 자신의 성향대로 투표한다”며 “친문 권리당원 사이에 특정 후보의 대세론이 형성되지 않는다면 당원 표심도 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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