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부르고 싶은 남의 노래’ 주제의 무대에서 1등을 한 박정현. 사진제공=MBC |
매주 월요일 ‘나는 가수다(나가수)’의 녹화가 진행되는 일산 MBC 드림센터 2층. 녹화 시작 시간은 오후 6시지만 오전부터 2층에는 ‘나가수’ 로고가 새겨진 후드티를 입은 제작진이 분주히 오간다. 경연 준비를 하며 시시각각 도착하는 출연 가수들의 동선을 파악해 차량에서 하차하는 모습부터 그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나가수’ 제작 관계자가 아니면 현장에서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 없다. 스포일러 때문에 몸살을 앓는지라 경계심이 대단하다.
‘나가수’는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경연 녹화 당일만큼은 웃음을 찾기 어렵다. 출연 가수들이 엄청난 심리적 압박을 받기 때문. 매니저로 등장하는 개그맨들과 제작진 역시 민감해진 가수들에게 영향력을 미칠세라 조심, 또 조심한다.
한 가수 매니저는 “대규모 관객을 모시고 콘서트를 앞둔 가수들이 어찌 마음이 편할 수 있겠나. 1년에 한 번쯤 경험하는 콘서트를 2~3주마다 한 번씩 한다고 보면 된다. 방송에서 보이는 것보다 가수들은 더욱 예민해져 있다”고 귀띔했다.
일곱 명의 가수들은 경쟁심 때문에 경연 전 다소 껄끄럽지 않을까. 오히려 가수들은 서로에게 가장 믿음을 주는 존재다. 같은 고통을 겪는 가수들끼리 갖는 묘한 동질감이 작용하는 것. 내로라하는 가수들은 학생으로 치면 우등생이자 모범생이다. 시험 전날 성적에 대한 압박감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무엇보다 상대 가수의 실력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긴장한다. 못해서 탈락하는 것이 아니라 잘해도 상대적으로 모자랄 수 있기 때문. 이 매니저는 “모든 가수들이 하나같이 ‘나 어제 공부 못했다’고 말하는 학생들처럼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고 하소연한다.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할 수 있는 이들도 상대 가수들뿐이다. 때문에 그들 사이에는 경쟁심을 뛰어 넘은 유대관계가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고성(高聲)이 오가기도 한다. 싸우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무대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뜻대로 노래가 불러지지 않는 몇몇 가수들이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하는 것.
자진 하차를 선택한 백지영이 연습 도중 눈물을 보인 장면도 결코 연출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나가수’가 여타 음악프로그램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MBC 예능국 관계자는 “노래 잘하는 가수들일수록 노래 한 곡 부르기가 어려운 법이다. 완벽한 무대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목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답답해 어쩔 줄 몰라 한다. ‘나가수’는 이런 진정성이 고스란히 담긴다. 가수들의 가창력 순위를 매긴다는 측면에서 욕을 먹지만 국내 최정상급 가수들이 출연을 결심하는 이유도 ‘나가수’의 이런 면모를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들만의 세상에 빠진 가수와 대중의 간극을 메우는 역할은 개그맨들이 담당한다. ‘나가수’에서 개그맨들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이는 100분 동안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 지극히 적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다.
‘나가수’가 <우리들의 일밤>이라는 예능에 속할 수 있는 것도 개그맨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웃음의 포인트를 짚으며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분위기를 푼다. 7명의 개그맨들은 실제 매니저처럼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전체 흐름을 끌어간다. 예능프로그램에 익숙지 않은 각 가수들을 가장 가까이서 보필하며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할 수 있게 만드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연출을 맡은 신정수 PD는 “2회 공연 후 탈락자를 결정하는 것으로 시스템이 변경된 후 중간 점검 과정이 더 중요해졌다. 이때 개그맨 매니저들이 가수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만들어 가는 모습이 부각된다. 또한 매니저들이 가수들의 노래를 듣고 내리는 평가가 관객의 평가와 비슷하게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일종의 대리인 역할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연이 끝나면 500명의 청중평가단은 돌아간다. 극소수의 제작 관계자와 출연진만이 무대에 남아 결과 발표를 듣는다. 순위가 발표되는 순간 잠시 희비가 엇갈린다. 하지만 기쁨은 아주 잠시뿐이고 긴 슬픔에 잠긴다. 1위가 축하받는 것이 아니라 7위가 된 동료 가수를 바라보며 모두가 침통해 한다. 7위에 머문 동료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또 다른 가수의 매니저는 “가수의 탈락 순간만큼은 적응이 되지 않는 것 같다. 모두가 몸 둘 바를 모르고 서성인다. 그럼에도 ‘나가수’에 출연하는 것은 현재 이만큼 가수들이 행복하게 노래 부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는 프로그램도 없기 때문이다”라고 털어놓았다.
녹화가 끝나면 진짜 잔치가 시작된다. 출연진과 제작진은 MBC 드림센터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회포를 푼다. ‘나가수’의 산파인 김영희 PD가 만들어놓은 전통이다. 개편 기간을 갖느라 녹화가 없던 지난 3월 28일 월요일에도 어김없이 모임이 있었다. 이미 탈락한 정엽과 자진 하차 의사를 밝힌 김건모도 참석했다.
이 자리에 앉은 가수들은 경연에 대한 아쉬움과 앙금을 모두 털어낸다. 김건모와 김영희 PD는 이 자리에서 김범수 이소라 윤도현 박정현 등 생존한 가수들에게 ‘나가수’를 끝까지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결국 방송은 재개됐고 임재범 김연우 BMK 등 쟁쟁한 가수들이 입성했다. 똑같은 고통과 환희를 맛본 세 가수 역시 이 술자리에 앉아 진짜 세상사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신정수 PD는 “그 자리에는 모든 가수가 참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가수 매니저 제작진까지 약 70명 정도가 모인다. 그 곳에서는 주로 재미있는 얘기를 한다. 노래 얘기는 거의 안 하고 사는 얘기를 한다”고 밝혔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