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 경선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정세균 전 총리는 이재명 경기도지사,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와 함께 ‘빅3’로 분류됐다. 하지만 경선 레이스가 시작되니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성적표가 나왔다.
특히 지난 9월 12일 발표된 1차 일반당원·국민선거인단 투표(1차 슈퍼위크) 결과가 사퇴 결단의 원인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정세균 캠프에서는 1차 선거인단 64만 명 중 약 20만 표 확보를 기대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결과는 2만 14표(4.03%) 확보에 그쳤다. 1차 슈퍼위크까지 누적 합계 득표율은 4.27%로 4위까지 밀렸다. 3위를 차지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의 격차도 7%포인트(p) 이상 벌어졌다. 이에 경선 완주 동력이 소진됐다고 판단 내린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20대 대선 경선 레이스를 중단하면서도 정세균 전 총리는 다른 후보 지지를 선언하지는 않았다. 특정 후보 지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이제 평당원으로 돌아가 하나 되는 민주당,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백의종군하겠다”며 일관되게 “민주당을 지지하겠다”고만 답했다.
정세균 전 총리의 중도 사퇴로 남은 후보들의 캠프는 복잡한 계산에 들어갔다. 정 전 총리가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으면서 그의 지지층이 어디로 향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 추석 연휴가 끝나고 치러지는 호남 순회경선에서 정 전 총리 지지층의 표심은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호남 경선은 대의원과 권리당원 수가 전남·광주 약 12만 8000여 명, 전북 약 7만 6000여 명 등 총 20만여 명으로 전체의 30%에 달한다. 지역순회 경선 중 가장 큰 규모의 최대 격전지로 꼽힌다. 전북 진안이 고향인 정 전 총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전북의 맹주’다.
여권의 한 전략통은 “정세균 전 총리는 6선 의원에 장관, 국회의장, 국무총리 등을 거치며 이른바 ‘대통령 빼고는 다 해 본’ 25년 경력이 넘는 정치인이다. 그 과정에서 전국에 탄탄한 조직을 구축했다. 국민선거인단에서는 기대에 못 미치는 저조한 표를 받았지만, 앞서 지역순회 경선에서는 조직을 통해 나름 나쁘지 않은 대의원 득표를 얻었다. 남은 지역에서의 정 전 총리 조직표가 어느 후보에게 갈지가 향후 민주당 경선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
지난 9월 4일 대전·충남 경선부터 12일 1차 슈퍼위크까지 이재명 지사는 누적 합계 득표율에서 51.41%(28만 5856표)로 여전히 독주체제를 유지했다. 2위 이낙연 전 대표는 31.08%(17만2790표)를 득표했다. 다만 득표율 54%대까지 올랐던 이재명 지사는 다소 주춤하며 과반을 턱걸이로 유지했다. 반면 이낙연 전 대표는 득표율 30%를 돌파, 1위 후보와 여전히 20.33%p 큰 격차를 보이고 있지만 추격을 불씨를 살렸다는 평가다.
따라서 이재명 지사가 50%를 훌쩍 넘겨 대선 본선에 직행하느냐, 이낙연 전 대표가 호남을 등에 업고 결선까지 끌고 가 역전에 성공하느냐는 호남 경선에서 정세균 전 총리를 지지하던 표심의 향방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이에 두 후보 모두 정 전 총리 지지층에 지지를 호소했다. 이재명 지사는 정세균 전 총리의 사퇴 발표 이후 진행된 한 기자간담회에서 “2008~2010년 정 후보께서 당대표 하실 때 제가 상근대변인으로 모셨다. 지금 저도 정 후보님의 식구라고 할 수 있다”며 “오늘 사퇴한 것은 참으로 안타깝지만, 민주당의 정권재창출, 앞으로 민주당이 가야 할 길에 역할을 잘하실 어른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낙연 전 대표 역시 “결단에 이르기까지 고뇌가 오죽했을지 짐작하기 쉽지 않다”며 “품격과 절제, 푸근한 인품과 공익으로서의 책임감, 개혁을 향한 책임 있는 비전을 보여준 정세균 정신의 실천은 저희들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 전 총리의 양극화 해결공약 중 하나인 ‘분수경제’를 언급하며 정책 측면에서의 유사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낙연 후보와 정세균 후보의 지지자는 겹치는 지점이 크다. 경선 초기부터 두 후보 간 단일화 가능성이 끊임없이 제기된 것도 이 때문”이라며 “정 전 총리가 이낙연 전 대표를 공개 지지 선언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단일화 효과를 볼 수도 있다. 이낙연 전 대표가 정 전 총리 지지층의 상당 부분을 흡수할 것으로 본다”고 귀띔했다.
앞서 사퇴 발표 전 정세균 캠프 긴급회의에서는 완주해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25~26일 호남 경선까지 치르자는 의견도 나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정세균 전 총리의 최종 결정은 사퇴였다. 이는 정 전 총리가 호남 경선 전에 그만둬야 현재의 이재명 후보 독주 경선판에 견제를 줄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고도 볼 수 있다.
반면 이재명 지사 측은 호남 지지층의 전략 투표를 기대하는 모습이다. 이재명 후보 측 관계자는 “호남 지역 지지자들은 본선에서 이길 수 있는 후보에 투표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여러 여론조사를 보면 대선 본선에서 승리 가능성이 높은 후보는 이재명 후보다. 이런 모습을 잘 판단해 지지를 보낼 거라고 본다”고 전했다.
실제 이재명 지사가 이낙연 전 대표에 호남 지역에서도 적합도가 앞서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일요신문이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9월 5일부터 9월 7일까지 사흘간 실시한 여론조사(관련기사 [9월 여론조사] ‘양당별 양자대결’ 홍준표 36.6% vs 윤석열 30.0%)에 따르면 ‘민주당 대선후보 적합도’ 경선 양자 가상대결에서 이재명 지사가 35.6%를 기록, 24.0%의 이낙연 전 대표를 11.6%p 차이로 앞선 결과를 보였다. 그런데 광주·전라 지역을 보면 이재명 지사 48.0%, 이낙연 전 대표 27.6%로 20.4%p의 더 큰 격차를 보였다(자세한 사항은 조원씨앤아이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