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사이언스’ 이어 ‘멀티유틸리티’ 분할 계획…사모펀드 “바사 지분 팔아 특별 배당금 줘야” 압박
#“SK바사 지분 팔아라” 싱가포르계 사모펀드의 공격
싱가포르계 사모펀드 메트리카파트너스는 지난 9월 8일 홈페이지를 통해 “SK케미칼 경영진은 순자산 대비 83% 할인된 가격에 주식이 거래되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하다”라며 “자회사 SK바이오사이언스 지분을 매각하고 그 수익을 주주들에게 분배해야 한다”라고 전했다.
메트리카파트너스 주장의 핵심은 SK케미칼 주가에 SK바이오사이언스의 가치가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메트리카파트너스는 SK케미칼이 보유한 SK바이오사이언스 지분 68.43%의 가치를 17조 5000억 원으로 평가했지만 현재 SK케미칼의 시가총액은 3조 원대에 불과하다. 이에 SK케미칼이 4조 2000억 원에 SK바이오사이언스 지분 18.3%를 매각한 후 주주들에게 현재 주가의 1.3배에 해당하는 특별 배당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8.3%를 매각해도 SK케미칼의 SK바이오사이언스 지분율은 50%가 넘어 지배력에는 문제가 없다.
메트리카파트너스의 요청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낮다. 현재 SK디스커버리와 특수관계자가 SK케미칼 지분 36.55%를 보유 중이고, 국민연금공단이 6.14%를 갖고 있다. 반면 메트리카파트너스의 SK케미칼 지분율은 5%도 되지 않는다.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이 반대하면 SK케미칼의 SK바이오사이언스 지분 매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만 메트리카파트너스가 지속적으로 주주제안서를 보내면 SK케미칼도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 SK바이오사이언스 상장 후 SK케미칼의 주가가 꾸준히 하락해 소액주주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올해 2월 5일 금융위원회에 상장을 위한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이틀 전인 2월 3일, SK케미칼의 주가는 46만 2500원에 마감했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현재는 30만 원 전후 수준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코로나19 백신 덕에 올해 상반기 매출 2573억 원, 영업이익 1199억 원이라는 역대급 실적을 거뒀다. 하지만 실적에 따른 주가 상승은 SK바이오사이언스에 적용되고, SK케미칼 주가에는 별 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모회사라지만 엄연히 다른 회사이기 때문이다. 즉, SK바이오사이언스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SK케미칼의 순자산 보유량도 늘어났지만 주가는 오히려 하락한 것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비상장사이거나 애초에 SK케미칼로부터 분할되지 않았다면 SK케미칼 주가가 상승했을 가능성이 높다.
#더블카운팅 디스카운트 효과란?
이처럼 자회사의 가치가 상승했을 때 모회사의 가치가 하락하는 현상을 ‘더블카운팅 디스카운트’ 효과라고 한다. 자회사의 실적 상승이 모회사 주가에 반영되면 모회사와 자회사의 가치가 주식 시장에 중복으로 계산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주식 시장에서는 중복 계산되지 않고 모회사 주가가 하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례로 현대중공업 상장 소식이 전해지면서 모회사 한국조선해양 주가는 지난 5월 16만 원이 넘었지만 현재는 10만 원을 겨우 넘는 수준이다. LG에너지솔루션이 지난 6월 8일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하자 당시 80만 원이 넘었던 모회사 LG화학의 주가도 현재는 70만 원 초반대로 하락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투자 유치를 위해 분할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특정 사업에 대한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해당 사업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업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많은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주가라는 것은 여러 요소로 인해 시시각각으로 변하기 마련이다”라며 “장기적으로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투자를 유치해 회사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소액주주 입장에서는 당장 주가가 급락하는 것이 반가운 일은 아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모회사와 자회사 중 하나만 상장하는 것을 권고하고, 실제로도 모회사·자회사가 동시에 상장한 미국 기업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엎친 데 덮친 격’ SK멀티유틸리티도 분할
증권가에서는 더블카운팅 디스카운트를 고려해도 SK케미칼의 주가가 지나치게 낮다고 본다. 서근희 삼성증권 연구원은 “최근 SK바이오사이언스의 주가가 급등하면서 자회사 지분가치의 괴리가 확대돼 SK케미칼의 주가는 SK바이오사이언스 시가총액 기준으로 지분 가치가 85% 할인됐다”며 “국내 지주사 평균 할인율인 40% 대비 저평가된 수치”라고 전했다. 실제 SK케미칼의 주가는 9월 7일 26만 7000원에서 9월 13일 32만 9500원으로 오르는 등 9월 들어 상승세를 보였다.
하지만 SK케미칼이 지난 9월 13일 전력, 스팀 등 유틸리티 공급 사업부문을 분할해 신설법인 SK멀티유틸리티(가칭)를 설립한다고 공시하면서 주가도 13일 32만 9500원에서 14일 29만 6000원으로 10.17% 하락했다. SK멀티유틸리티가 분할하면 그만큼 SK케미칼의 자체적인 기업 가치도 훼손된다. SK멀티유틸리티가 향후 상장할지 여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SK바이오사이언스 관련 이슈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SK멀티유틸리티 분할 결정은 성급했다고 지적한다. 증권가의 예측과 달리 SK케미칼의 주가 상승 기미가 보이지 않아 소액주주들의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메트리카파트너스와 소액주주가 한목소리로 여론전을 펼치면 SK케미칼로서는 난감해진다. SK케미칼 윤리규범에는 “주주의 가치가 창출될 수 있도록 기업의 가치를 높여야 하며 이를 위해 투명성을 제고하고, 효율적인 경영을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SK멀티유틸리티가 물적분할 된다는 점에서 소액주주들의 분노는 더욱 크다. 인적분할은 기존 회사의 주주들이 지분율대로 신설 법인의 주식을 나눠 갖는 방식이고, 물적분할은 기존 법인이 신설 법인의 지분 100%를 보유하는 형식이다. 따라서 기존 SK케미칼 주주에게 SK멀티유틸리티 주식은 배정되지 않는다.
주식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러한 SK케미칼 행보를 비판하는 글이 적지 않다. 앞서 지난 4월, 일부 소액주주들은 소통 부재 등을 이유로 SK케미칼 본사 앞에서 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이와 관련, SK케미칼 관계자는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투자자분들의 다양한 의견을 지속 청취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다각도로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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