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사에 대한 산업재해 조사 미흡 도마 위…“변호사 직접 선임할 수밖에” 유족들 하소연
국내 한 농수산도매시장에서 30여 년간 망에 양파를 담아온 60대 여성 이 아무개 씨. 그는 고정급 없이 망당 150원가량 급여를 받고 일을 해왔다. 이 씨는 매일 오전 8시 30분부터 밤 10시 이후까지 작업하며 사업장 업무를 모두 소화했다. 이 씨가 쉬는 날은 월 1회 정도였다. 사망 당일 오전 8시 40분 사업장에 도착한 이 씨는 같은 날 저녁 7시 41분 “엄마 아직 일해? 언제 끝나?”라는 딸의 전화에 “8시 좀 넘으면 나갈 거야”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 씨는 이날 저녁 8시 2분쯤 쓰러졌고, 다음 날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이 씨의 사망 이후 진행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는 사망일 기준 직전 12주간 △미니망 1만 7000개 △중망 2만 5525개 △5kg망 3500개 △꼬다마 망 1100개 등 총 4만 7125개의 망을 수령해 작업했다. 이 기간 이 씨가 쉰 날은 고작 3일이다.
그는 또 12주 평균 주당 76시간 24분 정도 일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즉, 12주 기준으로 이 씨의 1일 작업량을 추산하면 81일간 주 6일 이상 근무하며 평균 581.8개의 망에 양파를 담는 일을 해온 셈이다.
기저질환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씨는 사망하기 1년여 전 실시한 건강검진에서 대부분 정상 소견을 받았다. 이 씨의 사망 원인이 과로로 추정되는 상황.
유족은 이 씨가 과로사 했다는 판단 하에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산재 신청을 진행했다. 사업주는 “(이 씨가) 프리랜서이기에 산재 신청이 불가하다”며 반발했다. 이 씨의 산재 신청이 통과될 경우 과징금 부과 또는 영업정지 등의 불이익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업주 말대로 이 씨는 프리랜서다. 계약직, 프리랜서 등 비정규직 근로자의 과로사에 대한 산재 신청을 하려면 ‘근로자성’이 입증돼야 한다.
유족은 이 씨가 △작업량에 비해 보수의 변동이 크게 발생하지 않은 점 △매일 같은 시간대 출근해 지정된 작업장에서 사업주가 제공한 원자재, 작업도구 등을 이용하며 일을 전속적으로 해왔다는 점에서 '근로자'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업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면 고용노동부에 사망 신고가 접수되고 이후 유족이 산재 신청을 할 경우 근로복지공단이 직접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 근로복지공단은 사망한 근로자에 대해 근로자성이 인정되는지 아닌지 조사해야 한다. 과로사의 경우 사망한 근로자의 업무량, 업무시간, 평균 노동 강도 등을 파악해야 해 더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하다. 다만 근로복지공단에서 비정규직 근로자의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산재도 마찬가지다.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유족 측에서 변호사를 선임할 수밖에 없다.
이 씨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이 이 씨의 산재 신청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를 미흡하게 한 탓에 변호사를 선임했다. 근로복지공단이 유족의 산재 신청 진행 의지에도 적극적으로 조사에 나서지 않은 것.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과로사 산재 신청이 접수되면 (고인 업무에 대한) 조사에 들어간다”고 말했지만 이 씨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이 제대로 조사하지 않는다고 봤다.
산재 전문 법무법인 마중의 김용준 변호사는 “과로사는 객관적 사실 외에 주관적 사실관계를 알아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근로복지공단이 하기는 힘든 구조”라며 “평소 고인이 어떻게 업무를 처리하는지 생전에 말하지 않은 이상 유족들 역시 고인의 생전 업무량, 노동 강도 등을 사후에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과로사뿐 아니라 과로자살에 대한 문제도 있다. 국내의 한 대기업에서 근무하던 40대 남성 김 아무개 씨는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원인은 업무 스트레스. 김 씨를 담당했던 법무법인과 유족 측에 따르면 그는 은퇴를 앞둔 직원들에게 해고를 권고하는 등의 업무를 해왔고 이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사측은 이를 부인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김 씨의 생전 정신건강의학과 진단서를 보면 그는 5년 전부터 상세불명의 불안장애를 호소했다. 지난해 발급된 해당 진단서에는 ‘현재 증상이 악화돼 (증상) 조절이 되지 않아 향후 6개월 이상의 집중적인 치료와 약물 조절이 필요할 것으로 사료됨’이라고 적혀 있다. 유족의 증언과 진단서를 통해 김 씨가 업무 스트레스와 죄책감 등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근로복지공단에서 발표한 2015~2020년 과로자살 산재 현황에 따르면 과로자살 신청 인원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산재 신청 승인율도 2017년부터 50%를 넘지만 타 업무상 재해에 비해 산재 신청률은 낮다.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을 산재와 연결시키기 쉽지 않다는 인식과 사망 원인이 무엇인지 제대로 규명해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김 씨의 경우도 업무 분위기, 환경 등을 파악해내지 못했더라면 극단적 선택이 과로 스트레스에서 비롯했다는 것에 알아내지 못했다. 더욱이 김 씨의 사망 원인이 과로 스트레스임을 알아낸 건 근로복지공단이 아닌 유족이 선임한 변호사였다.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이 김 씨의 업무 환경 등 과로자살을 할 이유를 찾아내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김 씨 측 변호사는 "수집한 자료를 근로복지공단 측에 보여줬더니 빠르게 넘기면서 훑기만 했다"며 "과로로 사망했다는 인과관계만 성립되면 산재 승인이 이뤄지는 중요한 업무를 너무 빨리 보는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이와 관련, 위드유HR컨설팅 소속 류순건 노무사는 “과로사 산재 신청의 경우 재해자의 평소 업무 강도, 업무량, 근로시간,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발생 및 정도를 증명해야 한다”면서 “만약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를 불승인할 경우 행정소송을 제기해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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