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할머니 귀금속 상가 보석상에 속아 38회 금붙이 구입 주장…사기 의심해 고소했는데도 보석상 또 판매 시도
최근 서울 귀금속 상가 보석상에서 약 3억 원어치 거래를 한 70대 이 아무개 씨의 말이다. 이 씨는 보석상 A 씨에게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총 38회에 걸쳐 금붙이를 샀다. 이 씨가 구매한 금붙이는 목걸이, 팔찌, 보석 등 다양하다. 이 씨는 어떻게 A 씨 말만 믿고 약 3억 원어치 보석을 살 수 있었을까.
이 씨가 A 씨에게 소위 ‘짝퉁(위조품)’을 거래하기 시작한 건 2017년 10월부터다. A 씨와 이 씨 통화내용 녹취록에 따르면 A 씨는 “물건을 구하는 방법을 말씀 드리겠다. 집안이 망하거나, 어디 회장님 세컨드가 싫증나면 팔거나 할 때 물건이 싸게 나온다”면서 “그냥 팔면 영원히 못 찾지만, 급전이 필요할 때 나중에 찾기 위해서 전당포에다 맡겨 놓는 경우가 있다. 전당포는 많이 쳐줘야 물건 가격 3분의 1 쳐준다”고 말했다.
A 씨는 그러면서 ‘C 사 정품 5000만 원짜리인데 중고로 1000만 원이면 살 수 있다. 갖고 있다가 팔아도 절대 손해 보지 않는다’, ‘백화점에서 1억 1000만 원 짜리인데 1500만 원에 살 수 있다’ 등의 말을 했다고 한다. 이 씨는 “설마 귀금속 상가 보석상 매장도 하는 사람이 거짓말을 할까 싶어서 사게 됐다”고 말했다.
일단 거래가 시작되자 A 씨의 권유는 계속됐다. A 씨는 ‘C 사 못 팔찌, 표범 팔찌가 나왔다’, ‘T 사 팔찌가 싸게 나왔다’, ‘아들에게 하나 해줘라’ 등 새로운 제안을 계속 시도했다. 이 씨가 가족에게 쌈짓돈을 꺼내 하나씩 보석을 해주자 손녀 등도 갖고 싶어 하는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씨가 A 씨에게 “C 사 못 팔찌를 보더니, 손녀딸이 갖고 싶다고 한다”고 하자 A 씨는 ‘에이 보면 다 갖고 싶죠’라며 ‘돈이 있으면 선물하면 좋죠. 백화점에서 1000만 원 하는데 250만 원이면 받아다 줄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게 이 씨는 약 4년 동안 온 가족 물건을 그곳에서 구매하게 됐다. 대략 2억 8000만 원어치를 구매했는데, A 씨 표현대로 백화점 정가로 따지면 약 100억 원에 달하는 액수였다. 이 씨는 딸 사돈댁 물건까지 A 씨 가게에서 샀을 정도로 A 씨를 신뢰했다. 이 씨는 “전문가인 A 씨가 수없이 오리지널이라고 하니 믿지 않을 수 없었다”고 호소했다.
그 믿음이 깨지게 된 건 2021년 4월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 씨가 큰아들에게 준, 수천만 원에 달한다는 C 사 못 팔찌에서 못 머리만 쏙 빠지면서다. 큰아들은 이 씨에게 “이거 가짜인 것 같다”고 하면서 의심이 시작됐다. 큰아들은 표범 팔찌도 의심하게 됐고, 주변에 똑같은 것을 가진 친구와 대조해봤는데 자기 것과 다르자 의심은 확신으로 변해갔다.
2021년 4월 14일 녹취록에 따르면 큰아들은 A 씨에게 “백화점에서 산 친구 것과 비교했는데 다르다”고 지적했지만, A 씨는 능숙하게 ‘두 가지 버전이 있다. 감정서 떼어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고 한다. 이에 이 씨의 의심도 살짝 누그러지게 된다.
그런데 2021년 5월 초에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난다. 작은아들이 A 씨에게 산 팔찌를 차다가 쇳독이 오르는 일이 일어났다. 팔찌를 자세히 보니 금이 아니라 노랗게 칠해진 것이었고 그게 변색되면서 쇳독이 오른 것이었다. 이 씨는 1000만 원에 달한다는 팔찌가 조잡한 물건이었다는 사실에 황당함을 가지게 됐다.
그럼에도 이 씨 가족은 ‘오랜 기간 보석상을 운영했고, 전문가인 A 씨가 설마 거짓말을 하겠냐’는 생각으로 기울었다. A 씨가 새로운 물건이 나왔다고 하면서 권유하자 이 씨 가족은 4000만 원가량 추가 구매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의심 가는 지점도 있어 감정을 맡겨보자는 생각에 이 씨 가족은 2021년 5월 11일 한국명품감정원에 감정을 맡기게 됐다.
놀납게도 감정을 맡긴 두 개 모두 짝퉁으로 결론이 났다. 한국명품감정원은 ‘로고 각인, 금형 마감이 상이하다’면서 ‘오리지널 다이아몬드도 아닌 큐빅이다’라고 결론 내렸다. 이 씨는 감정을 통보 받은 뒤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 증거수집을 위해 짝퉁인 사실을 알면서도 ‘가짜 아니냐?’고 물었다. 그럼에도 A 씨는 속여 판매할 때와 같이 ‘다이아몬드가 수백 개에 금만 50돈’이라며 ‘세부 디자인이 다르다’라는 말로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이 씨는 그제야 ‘제대로 속았구나’하는 생각에 고소를 결심하게 됐다.
이 씨는 환불을 요구했지만 A 씨는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이 씨가 환불을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자 이번에는 이 씨 딸이 어머니 대신 나섰다. 2021년 6월 14일 이 씨 딸은 A 씨에게 직접 항의하며 ‘변상해 달라’고 하자 A 씨는 ‘피곤해 죽겠네 왜 같은 얘기를 여러 명이 반복하냐. 변상해 준다고 하지 않았냐’고 말했다고 한다.
이 씨 딸은 황당해서 “이 사달이 난 게 A 씨가 짝퉁을 줘서 난 거 아니냐”고 했지만 A 씨는 “이 사람 저 사람 전화할 때마다 해명해야 합니까”라고 말했다. 이 씨는 “A 씨 얘기를 들어보면 약 3억 원가량 피해를 준 사람 태도로 볼 수 없다”고 황당해 했다.
A 씨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나도 짝퉁인 줄 몰랐다. 요즘 장사가 안돼 변상하려고 해도 시간이 걸린다”면서 “그 물건을 구한 건 알음알음 업자를 통해서였다. 녹취록 내용은 모르겠고 전당포의 ‘전’자도 꺼낸 적 없다”고 답했다.
문제는 이 씨 피해 내역만 3억 원에 달하는 만큼 그 외에 추가 피해자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 씨는 “나한테만 그렇게 권했을 것 같지 않다. 한두 번도 아니고 장기간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권한 만큼 추가 피해자가 있을 가능성도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A 씨는 “잘 모르겠지만 이 씨 피해가 3억 원은 말도 안 된다. 그 사람 말고는 권한 적 없다. 추가 피해자는 없다”고 단언했다.
이 씨 측은 A 씨를 9월 관할 경찰서에 사기 혐의 및 짝퉁 판매로 인한 상표법 위반 혐의로 고소장을 접수했다. 이 씨는 “70대 할머니 쌈짓돈을 노린 범죄다. 일가가 속아 넘어갔다”면서 법적 대응 배경을 밝혔다.
그런데 일요신문이 A 씨에게 관련 의혹에 대한 입장을 묻기 하루 전인 2021년 9월 28일에도 A 씨는 고소 사실을 모르고 또 다시 이 씨에게 연락했다. A 씨는 ‘물건이 싸게 나왔다. 정품이 5500만 원인데 1500만 원이다’라며 같은 내용으로 범행을 이어가려 했다. 이에 이 씨는 “더 이상 피해자들이 발생하지 않게 신속한 수사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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