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개발 사업 비중 낮고 보수적 경영 기조…“신기인터모빌 인수 등 포트폴리오 다변화”
그러나 상사 업계가 모두 웃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코퍼레이션(옛 현대종합상사)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7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0% 줄었고, 2분기 영업이익도 67억 원에 그쳐 증권가 평균 예상치에서 20%가량 밑돌았다. 이동헌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에 대해 “해상운임 상승 등 비용이 늘어 경쟁사들에 비해 회복 속도가 더뎠다”고 평가했다.
#현대코퍼레이션, 원자재 랠리 효과 누리지 못해
현대코퍼레이션이 경쟁사들에 비해 부진한 이유는 전통적인 트레이딩(무역)에 치중한 사업 구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원개발 사업 비중이 1%대에 불과하다. 현대코퍼레이션은 사업부문을 철강과 승용부품, 상용에너지, 기계선박, 석유화학 등으로 구분하지만 다루는 품목이 다를 뿐 대부분 단순 트레이딩이다. 상사업계 관계자는 “현대코퍼레이션은 범 현대가 기업의 일감을 주로 취급한다”며 “사실상의 내부 매출이 상당하다 보니 굳이 해외 자원개발 사업을 확대하는 등 모험을 벌일 이유가 없다”고 전했다.
사실 현대코퍼레이션은 다른 상사 업체보다 먼저 자원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 현대코퍼레이션은 1979년 국내 상사 중 처음으로 호주 드레이튼 유연 탄광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이후로도 유공(SK이노베이션의 전신) 등과 함께 수많은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다. 오만 LNG, 카타르 LNG 프로젝트는 현대코퍼레이션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2014년에는 두 프로젝트의 배당 수입만 400억 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2015년 예멘 내전으로 해당 지역의 가스전 가동이 중단됐고, 배당 수입도 사라졌다. 때마침 국제 유가가 급락해 다른 프로젝트의 지분가치마저 하락했다. 2018년에는 베트남 11-2광구의 생산 차질로 256억 원의 손실이 발생하기도 했다. 다른 상사 업체가 곡물 등 식량부터 니켈, 리튬 등 희귀 원자재로 발을 넓히는 동안 현대코퍼레이션은 자원개발 사업에서 입은 피해를 수습해야 했다.
비단 과거 사례가 아니더라도 현대코퍼레이션은 지배구조의 영향으로 보수적인 경영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대코퍼레이션은 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 시절 자원개발 전문 자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면서도 “떼고 붙이고 하는 과정에서 조직의 힘이 많이 약해졌다”고 지적했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한 차례 무너졌던 정몽혁 현대코퍼레이션그룹 회장은 아무래도 위험요인이 큰 해외 자원개발 사업을 확장하기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며 “다른 대기업 집단 소속의 상사와 달리 현대코퍼레이션은 의지할 만한 계열사가 그룹 내에 없다”고 설명했다.
현대코퍼레이션의 오너는 계속 바뀌어 왔다. 2000년 ‘왕자의 난’ 당시 현대코퍼레이션 최대주주는 현대자동차,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현대중공업, 현대상선 등으로 바뀌었다가 현대그룹 소속 계열사로 정리됐다. 이후 현대코퍼레이션은 자본 잠식을 겪으면서 채권단 관리 체제가 됐고, 2009년 현대중공업그룹이 인수했다가 2016년 정몽혁 회장이 다시 인수했다.
정몽혁 회장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조카이자 고 정신영 동아일보 기자의 장남이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과는 사촌 관계다. 정몽혁 회장은 현대정유(현 현대오일뱅크)를 물려받았지만 IMF 외환위기 영향으로 경영권을 잃었고, 이후 범 현대가 계열사인 에이치애비뉴앤컴퍼니 회장, 메티아 사장 등으로 활동했다. 정 회장의 현대코퍼레이션 인수에는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KCC그룹 등 범 현대가의 측면 지원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차 1차 협력사 인수 추진, 믿을 곳은 결국 범 현대가?
현대코퍼레이션은 1970년대 현대그룹의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설립됐지만 최근에는 뒷걸음질만 치는 모양새다. 현대코퍼레이션의 2018년 매출은 4조 7000억 원에 달했지만 지난해 매출은 2조 원대로 줄었다. 현대코퍼레이션은 올해 들어 사업 다각화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 3월 사명을 현대종합상사에서 현대코퍼레이션으로 변경한 것도 기존 상사업 외에 다른 사업을 키우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현대코퍼레이션 관계자는 “기존 종합상사 명칭에 갇혀 있던 트레이딩 중심 이미지를 벗어나서 글로벌 종합 비즈니스 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해 사명을 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코퍼레이션은 현대자동차 1차 협력사인 신기인터모빌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휠가드 등 차량용 플라스틱 부품을 만드는 신기인터모빌은 지난해 매출 3239억 원, 영업이익 73억 원을 거뒀다. 인수를 완료하면 현대코퍼레이션의 승용 부문 매출 비중은 30%에 육박하게 된다.
문제는 신기인터모빌이 현대차 협력사인 만큼 범 현대가 의존도가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현대코퍼레이션에 따르면 범 현대가 기업들과 거래에서 발생하는 매출 비중은 전체 매출의 60~65% 수준이다. 자연스럽게 언제까지 친인척 회사들에 의존할 것이냐는 우려가 나온다. 또 신기인터모빌은 현대차 1차 협력사 지위를 지키고 있지만 빠르게 변하는 자동차 생태계를 봤을 때 관계가 영원할 것이라고 낙관할 수는 없다.
한 업계 전문가는 “현대코퍼레이션은 1세대 상사로 트레이딩에 대한 전문성은 확실히 갖추고 있다”며 “자동차 시장 또한 전기차로의 전환을 앞두고 있는 만큼 LX인터내셔널처럼 2차전지 원재료인 니켈 광산을 확보하는 등의 방식으로 미래 먹거리와 포트폴리오 다변화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현대코퍼레이션 측은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위해 차량용 부품 제조, 신재생 에너지 등 새로운 시장에서 사업 기회를 발굴하는 작업을 지속 추진하는 중”이라며 “신기인터모빌 인수가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글로벌 네트워크와의 시너지 창출, 해외 자동차 제조사를 상대로 한 부품 수출 시장 개척 등을 본격화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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