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한 정성모는 아내 지수원에게 "선물"이라며 상자를 내밀었다. 그 속에는 만년필이 있었고 지수원은 "내 만년필 당신이 가져갔어요?"라고 물었다.
정성모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척 "그거 스위스에서 수제로 만든 만년필인데 구하느라 힘 좀 썼어요. 왜 마음에 안 들어요"라고 말했다.
지수원은 "돌려줘요 그 만년필"이라고 했지만 정성모는 "그건 낡았어. 당신한테 안 어울려"라고 고개 돌렸다.
"돌려달라구요. 그거 나한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물건이라구요"라는 말에 정성모는 "유품이라 그건가? 그래서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거야? 당신 남편은 나야. 나하고 30년을 살면서 자식을 살았어"라고 분노했다.
지수원은 "당신과 상관없이 또다른 추억이에요. 내 추억이고 젊음이라고. 당신이랑 아무 상관도 없는 거라고"라고 화를 냈다.
정성모는 "어떻게 상관이 없어? 나 당신 하나 보고 여기까지 달려왔어. 만식이 그 자식이 내 과거야. 당신의 현재와 미래는 나 윤대국이라고"라고 소리쳤다.
이에 지수원은 "그 만년필은 내 청춘이에요. 그 사람과 나 당신과 함께 우리 세 사람의 추억이 깃든거잖아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에요. 서운해지려고 하네요. 나랑 30년을 살면서 아직도 날 그렇게 오해하고 있었다니. 그 사람이 가슴에 남았다면 나 당신과 살지 않았어요. 그걸 왜 몰라"라고 말했다.
정성모는 지수원을 꼭 끌어안고 "말 해줘. 당신 나랑 살면서 고맙다, 미안하단 말은 했어도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은 안 했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수원은 끝내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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