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덴만 여명작전’ 와중에 총알 여섯 발을 맞고 살아난 석해균 선장과 부인 최진희 씨. 석 선장은 피랍된 배의 속도를 늦추는 등 기지를 발휘해 청해부대의 삼호주얼리호 구출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일등공신이다. 사진공동취재단 |
영화 <아덴만의 여명>의 제작사 크리스마스엔터테인먼트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사건 발생 불과 3주 만에 영화 제작을 알리는 보도 자료를 배포했다. 여러 영화사에서 ‘아덴만의 여명 작전’을 영화화하려 한다는 설이 난무하는 상황이라 급박하게 영화화 사실을 발표한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보도 자료엔 ‘시나리오는 완성단계’라고 명시돼 있었다. 이는 ‘논픽션’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제작사 측은 “실제 사건을 소재로 했기 때문에 일종의 리메이크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일반 시나리오보다 일찍 완성될 수 있었지만 아직 초고 단계로 수차례 수정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덴만의 여명>에는 약 20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다. 제작비가 블록버스터의 기준인 100억 원을 훨씬 뛰어 넘은 터라 ‘초대작’으로 분류된다. 제작사는 ‘영화 <괴물>에 투자했던 제작사’임을 강조하며 신뢰를 쌓았고 실제 <괴물>의 제작에 참여한 조능연 PD와 투자사가 합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기 있게 제작 계획을 발표했지만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다. 200억 원의 제작비 마련을 비롯해 배우 캐스팅 등 해결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 최근 충무로는 돈이 돌지 않아 머리를 싸매고 있다. 2006년 <괴물>의 성공 이후 엄청나게 유입되던 자금으로 숱한 작품들이 만들어졌지만 2008년 이후 거품이 꺼지며 제작비를 구하지 못해 촬영 도중 고개를 떨군 영화도 적지 않았다.
이런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우선 스타 감독과 캐스팅이 필요하다. 역시 군대 이야기를 다뤄 10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은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는 각각 강우석 강제규라는 걸출한 감독이 중심이 돼 설경구 정재영 장동건 원빈 등의 화려한 출연진을 꾸릴 수 있었다. 한 영화 제작사 대표는 “두 작품은 탄탄한 시나리오, 능력 있는 연출자, 지명도 높은 배우 등 3박자가 맞아떨어진 작품이다. <아덴만의 여명>은 두 작품의 성공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어떤 감독과 스타 출연진이 투입되느냐는 영화의 투자 성공을 가늠하는 지표가 된다. 펀딩을 마친 후 촬영을 시작하는 영화가 드물기 때문. 게다가 해외 촬영과 대규모 전투 장면이 포함되는 영화들은 예상한 제작비를 초과하기 일쑤다. 이 대표는 “영화가 촬영되는 동안에도 제작사 대표 등 경영진은 이리저리 돈을 구하러 다니기 바쁘다. 이럴 때 유명 감독과 배우는 대외적으로 영화를 알릴 수 있는 좋은 역할을 한다. 9월 크랭크인을 앞두고 어떤 감독과 배우가 투입될지 충무로 관계자들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소재의 특성상 투자처를 찾는 데도 더욱 신경 쓸 수밖에 없다. 통상 한류스타를 캐스팅하면 현지 개봉을 염두에 둔 중국 일본 등에서 투자를 끌어오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 소재가 애국주의에 기댄 정서가 포함될 가능성이 커 해외시장에서 어느 정도 반응해 줄지는 미지수다. 군대의 이미지 고취 차원에서 국방부 등에서 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해당 부처의 입김이 작용한다면 영화의 분위기가 지나치게 무거워질 수도 있다.
개봉 시기도 고려해야 한다. <아덴만의 여명>은 9월 크랭크인할 예정이라 사건 발생 1주년에 맞춰 내년 1월 개봉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아덴만의 여명>은 엄청난 물량을 투입해 해외 촬영까지 진행되기 때문에 개봉까지 더욱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관측된다. 또 다른 영화 관계자는 “사건 발발 1년 후까지 관심이 이어질지를 고민해봐야 한다. 실제 구출작전이 끝난 후 이 작전을 영화로 만들려는 여러 제작사가 있었다. 모두 장고를 거듭하는 사이 크리스마스 엔터테인먼트가 입도선매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아덴만의 여명>의 제작 사실은 그 자체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마냥 청사진을 그릴 수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해에는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앞 다퉈 기획됐다. 2002년 발생한 ‘제2차 연평해전’을 소재로 한 영화도 두 편이나 준비됐다.
특히 <아름다운 우리>는 <친구> <사랑> 등을 연출한 곽경택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주진모 현빈 이정진 등 스타들이 대거 캐스팅돼 기대를 모았다. 이 영화 역시 200억 원을 들여 2010년 연말 개봉한다고 목표를 세웠지만 결국 크랭크인도 하지 못했다. 당시 연평해전 유가족들이 실명 사용까지 동의해 준 상황이라 <아름다운 우리>의 제작중단은 더욱 아쉬웠다. 게다가 지난해 5월 열린 칸국제영화제 필름마켓에 나서 영국에 선판매까지 된 터라 박탈감은 더 컸다.
2009년 10월 제작발표회까지 열며 관심을 모은 <연평해전>도 비슷한 운명을 맞았다. <튜브>를 연출한 백운학 감독이 150억 원을 들여 “2010년 5월 개봉하겠다”고 야심차게 밝혔다. 이 자리에는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비롯해 유력인사들도 대거 참여해 작품에 무게를 실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에는 분명한 간격이 존재했다. 당시 <아름다운 우리>의 제작사 관계자는 “투자자를 물색하던 중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사태가 잇따라 발생해 투자 논의가 중단됐다”고 토로했다.
또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 까닭에 석해균 선장을 비롯한 삼호주얼리호 선원들, 그리고 작전에 투입된 군과의 동의와 협조도 영화의 성공 여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스포츠한국 안진용기자 realyong@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