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실적에도 인수합병 등 투자에 소극적 평가…금호석유 “내부적으론 추진 중, 검증 마친 후 발표할 것”
앞서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은 올해 3월 정기주주총회 당시 “배터리 등 신사업을 추진해 2025년까지 매출액을 9조 원으로 늘리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련된 소식이 들리지 않자 재계에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사상 최고 실적 유지하려면…
금호석유는 창사 이래 최대 호황기를 보내고 있다. 금호석유의 올해 3분기 매출은 2조 2363억 원으로 2020년 3분기 대비 88.2%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6253억 원으로 192.5% 늘었다. 당초 증권가에서는 금호석유의 3분기 영업이익을 5700억 원 수준으로 예상했지만 합성고무와 페놀유도체 사업이 예상보다 좋은 흐름을 보이면서 예상치를 뛰어넘었다. 금호석유의 1~3분기 누적 매출이 6조 2898억 원, 영업이익은 1조 9915억 원으로 2020년 1~3분기 대비 각각 82.8%, 326.4% 증가했다.
하지만 금호석유의 4분기 실적은 부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4분기는 비수기로 꼽히는 시기이며 반도체 부족으로 인한 자동차 수요 감소, 중국 전력 제한에 따른 수요처 가동률 하락 등도 악재로 거론된다. 비슷한 이유로 내년 실적도 올해보다 좋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증권가에서는 현금이 쌓여 있는 이때 신사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현재의 실적 상승은 코로나19라는 일회성 요인 덕이고, 실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성장동력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풍부한 현금을 통해 중장기 성장 동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며 “대주주 및 경영진 입장에서도 현재의 과도한 저평가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향후 주주가치 개선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윤재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지배구조 관련 이슈, 시장과의 적극적인 소통, 튼튼한 재무구조 기반의 중장기 성장 전략 제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대규모 배당 및 자사주 소각 등에 대한 고민 없이는 투자자의 외면과 만년 저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례적인 쓴소리다.
최근 금호석유가 진행한 M&A는 금호리조트 한 건뿐이다. 강동진 연구원에 따르면 금호석유는 매해 2500억 원 안팎만 투자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내년이면 보유현금이 1조 원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너무나도 다른 형과 동생
일각에서는 박찬구 회장을 형인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금호그룹) 회장과 비교한다. 박삼구 회장은 대우건설, 대한통운(현 CJ대한통운) 등을 연이어 인수하며 2008년 금호그룹을 재계서열 7위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무리한 M&A 여파로 대한통운, 대우건설은 곧바로 되팔았고 뒤이어 금호타이어, 아시아나항공, 금호리조트까지 매각하면서 금호그룹은 사실상 와해됐다.
재계 한 관계자는 “박찬구 회장은 박삼구 전 회장이 M&A를 주도할 당시에도 반대 의견을 표명했던 것으로 안다”며 “박찬구 회장을 둘러싼 환경을 생각했을 때 공격적인 사세 확장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전망했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형제가 전혀 다른 경영 스타일을 보인다는 것이 이채롭다”며 “두 사람 모두 너무 극과 극”이라고 평가했다.
업계에서는 금호석유가 주력할만한 사업으로 2차전지를 꼽는다. 금호석유는 지난해 전기차 배터리에 사용되는 탄소나노튜브(CNT) 소재 개발 및 상업화에 성공했다. 그간 2차전지 도전재에는 카본블랙이 주로 쓰였지만 CNT를 활용하면 전도도(도체에 흐르는 전류의 크기를 나타내는 상수)가 카본블랙 대비 10% 향상된다. 충전 및 방전 때 음극 물질을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음극 바인더도 금호석유와 맞는 신사업으로 분류된다.
금호석유는 친환경 사업도 관심을 두고 있다. 금호석유는 지난 8월 폐폴리스티렌을 열분해 처리해 얻은 친환경 원료 ‘재활용 스티렌(RSM)’ 제조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금호석유 경영 기조 바뀔까
금호석유의 경영 기조가 바뀔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박찬구 회장이 지난 6월 금호석유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점이 변수로 지목된다. 물론 박 회장은 대표이사에서만 물러났고, 회장직은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공식 직함이 사라진 이상 조금씩 젊은 조직이 되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나온다.
문제는 박 회장의 아들인 박준경 금호석유 부사장의 역할(영업본부장)이다. 다른 재벌 그룹 후계자들이 미래먹거리를 책임지는 것과 달리 박 부사장은 지난해 상무에서 전무로, 올해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고속 승진했지만 맡은 업무는 영업뿐이다. 박 부사장의 동생 박주형 금호석유 전무도 구매재무담당만 책임지고 있다. 최소한 오너 일가 주도로 신사업을 빠르게 진행할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금호석유 측은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을 뿐, 내부적으로는 각종 신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밝힌다. 금호석유 관계자는 “신사업 추진을 하고 있지만 사업이 무르익기 전까지는 내부적으로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고, 외부 환경 변화로 분위기도 바뀔 수 있다”며 “신사업을 안정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고 있으며 검증을 마친 후 대외적으로 발표할 것”이라고 전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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