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절대평가 도입, 젊은 직원들 엑소더스?…직원 “연봉 하향평준화 의심” 삼성 “확정안 아냐”
직장인의 공감대를 얻으며 흥행한 드라마 ‘미생’의 유명 대사다. 극 중 김대명이 직장인에게 월급과 승진의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국내 최고 기업으로 꼽히는 삼성전자에서 비슷한 얘기가 나오고 있다. 특히 ‘젊은 꼰대’ 사이에서는 이직 얘기도 들려온다. 최근 삼성전자가 대대적인 인사 개편을 예고하면서다.
최근 삼성전자는 연말 대대적인 인사제도 개편 관련 내용을 임직원에게 공지했다. 가장 큰 변화는 커리어레벨로 불리는 직급체계 폐지다. 2017년 이전 삼성전자는 기존 사원을 1·2·3단계로 나누고 이어 대리, 과장, 차장, 부장으로 이어지는 7단계 직급체계였다. 2017년부터 삼성전자는 과거 직급체계에서 4단계 직급체계로 단순화했다. 연차에 따라 고졸사원인 CL1, 대졸 사원인 CL2, 과장급인 CL3, 차·부장급인 CL4로 직급이 나눠져 있다.
삼성전자는 4단계 직급을 2단계나 3단계로 줄이는 안과 아예 직급체계 자체를 폐지하는 안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현재로서는 직급체계 완전 폐지 쪽이 우세하다고 알려진다. 호칭도 임직원 사이는 ‘아무개 님’으로 통일하고, 업무 성격에 따라 님, 프로, 선후배님 또는 영어 이름 등 수평적 호칭을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다만 팀장, 그룹장, 파트장, 임원은 직책을 부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한다.
두 번째 큰 변화는 절대평가와 동료평가 도입이다. 삼성전자 직원은 업적 고과에 따라 5단계로 분류해 등급을 받는다. 최고등급은 전 부서원 중 10%만 받을 수 있고 두 번째 등급은 25%만 받을 수 있다.
개편안에서는 최고 등급 10%는 똑같지만 절대평가를 도입해 두 번째 등급은 최대 90%까지 받을 수 있게 됐다. 반대로 절대평가인 만큼 90% 모두 최하 등급을 받는 것도 가능하다. 능력 위주로 직원들을 평가해 젊은 직원들이 임원으로 승진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린다는 게 삼성전자의 설명이다. 상급자가 하급자를 평가하는 톱다운 방식에서 동료평가제로 전환도 예고됐다.
다만 삼성전자 측은 “아직 확정된 바가 없고 의견을 수렴 중이다. 화두만 나온 상태고 어떻게 적용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라고 밝혔다.
삼성전자의 이 같은 대대적 인사제도 개편을 두고 재계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뉴 삼성’ 행보의 일환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공식 설명회에 앞서 노사협의회, 노동조합, 부서장 등 임직원 의견을 청취한 뒤 확정해 11월 말 부서별 설명회를 열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의견 수렴을 거친 뒤 인사개편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이 같은 삼성전자의 파격 행보에 내부 구성원의 불만 섞인 반응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이번 개편을 두고 불만을 토로하는 글이 많았다. 삼성전자 직원을 인증한 한 익명 회원은 “이직하고 싶어서 그러는데 하이닉스 책임 3년차 평균 연봉은 얼마냐”는 글이 올라왔다. 이 같은 반응은 소수의 얘기가 아니었다.
익명을 요구한 삼성전자 직원 박 아무개 씨는 “이번 인사 개편은 제조업 특성을 무시한 말도 안 되는 개편안”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박 씨는 “IT 서비스 기업과 제조업은 엄연히 다르다. 삼성은 제조업 중심이고 그 특색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반도체나 스마트폰 등을 제조할 때 각각의 부품, 제조, 설계 프로세스당 통솔하고 지휘할 사람이 필요하다. 극단적 예를 들어 팹(FAB·반도체 공장) 공정 과정에서 장비가 서 버리면 누가 책임지나. 또한 임원이 그 많은 팀을 어떻게 다 통솔하나. 직급을 없애면 혼란만 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과장급 직원 정 아무개 씨는 “요리사들은 실수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도제식 교육에다 위계질서가 엄격하다는 얘기를 한다. 팹은 그보다 훨씬 빡빡하다”라면서 “공정 과정에서 조금의 먼지도 용납이 안 된다. 화장품도 못 바른다. 한 번 실수에 수천억 원이 달린 곳이고 24시간 풀가동되는 곳이다. IT 기업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직급 파괴 예고에 또 다른 삼성전자 과장급 직원 최 아무개 씨도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최 씨는 “삼성전자는 우리나라 최고 기업이면서 생존하기 정말 어려운 회사다. 승진을 위해 건강을 바치며 일해왔는데 갑자기 직급이 없어지면 목표도 없어지는 셈이다”라고 설명했다. 최 씨는 “젊은 꼰대라고 해도 좋다. 그런데 ‘미생’ 대사처럼 직장인에게는 월급과 승진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동료평가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았다. 동료평가가 참고 수준이 아닌 인사평가에 직결될 예정이라는 소식에 우려를 표했다. 또 다른 삼성전자 직원 강 아무개 씨는 “SK하이닉스 직원들이 동료평가를 두고 실패해서 사라졌다는 얘기를 했다. 성과보다는 친목 도모 잘하는 사람이 점수가 높을 수밖에 없는 방식이다”라면서 “SK하이닉스도 과거 직급 제도 묶는 것을 시도했다가 다시 선임, 책임 수석 등 지금 삼성전자와 비슷한 형태로 돌아간 바 있다”고 말했다.
결정적으로 이 같은 삼성전자의 개편안을 두고 결국 연봉 하향평준화가 목표 아니냐는 의심도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의 또 다른 직원 이 아무개 씨는 “삼성전자는 능력 있는 인재면 다른 기업보다 승진이 훨씬 빠르다. 지금도 빠른 편인데 제조업 특성상 이보다 승진이 빨라진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본다”라며 “오히려 10% 외 90% 직원에 절대 평가까지 도입되면 직원들의 나태함을 불러와 ‘월급 루팡’들이 많아지리라 본다. 대학생 때 절대평가 수업이 어땠는지 돌아보면 쉽게 알 수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이어 이 씨는 “승진 시 고과나 회사 사정과 상관없이 계약 연봉이 점프하는데 직급을 없애면 이런 연봉 상승 기회도 사라진다”면서 “오히려 연봉 테이블 없이 절대평가를 한다면 회사 측이 마음먹었을 때 상위 10% 제외한 인력에 대해 동결이나 삭감도 쉬워질 것이다. 성과급은 계약 연봉에 대비해서 나온다. 연봉 동결이나 삭감이 이뤄지면 지급할 성과급도 줄일 수 있는 셈이다”라고 덧붙였다.
이 씨는 “최근 삼성전자가 인텔을 꺾고 반도체 매출 세계 1위를 달성했음에도 회사는 ‘특별 보너스 주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런 것을 봐도 연봉 절감에 더 방점이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업계 특성상 이 같은 불만이 단순 불만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 직원의 경우 케이스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업계 최고 인력들이기 때문에 불만이 있을 경우 마음만 먹으면 이직에 성공하기는 매우 쉽기 때문이다. 앞서의 박 씨는 “SK하이닉스나 DB하이텍 등 어디를 가든 고연봉이 가능하다고 본다. 삼성전자 직원 가운데 이런 불만이 있는 ‘젊은 꼰대’들은 어디든 갈 수 있는 사람들이고 다른 회사에서 적극적으로 구인하는 핵심 인력들이다”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측은 “어떤 안이든 일부 불만이 있을 수 있다. 아직 정확한 안이 나온 게 아닌 만큼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켜봐달라”고 전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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