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처물도 종교물도 아닌 연상호 장르…CNN “지옥은 새로운 오징어 게임” 호평
넷플릭스 오리지널 K드라마 흥행 신화는 9월에 공개된 ‘오징어 게임’에서 시작돼 10월에 공개된 3위 자리까지 올랐던 ‘마이 네임’에 이어 11월 공개된 ‘지옥’으로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지옥’의 세계적인 흥행은 국내에서 강력한 지지를 받아온 ‘연상호 월드’를 이제 전세계인이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11월 25일 글로벌 OTT 콘텐츠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 패트롤의 넷플릭스 ‘TV 프로그램(쇼) 부문’ 월드와이드 1위는 ‘지옥’이다. 플릭스 패트롤에서 순위를 집계하는 83개국 가운데 벨기에, 홍콩, 인도네시아, 일본, 필리핀, 프랑스 등 36개국에서 1위에 올랐다. 가장 큰 시장인 미국에서도 꾸준히 3위를 기록하고 있다.
6부작 드라마인 ‘지옥’은 예고 없이 나타난 천사에게 지옥행을 예고받고(고지) 정해진 시간에 등장한 지옥사자들에게 지옥으로 끌려가는(시연) 초자연적인 현상을 그린다. 이로 인한 혼란을 틈타 부흥한 종교단체 새진리회와 사건의 실체를 밝히려는 이들이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사실 ‘지옥’ 공개를 앞두고 글로벌 흥행이 가능할지에는 의문부호가 붙어 있던 게 사실이다. 지옥사자들의 모습과 그들이 ‘시연’이라 불리는 지옥으로 끌고 가는 과정만 놓고 보면 특정한 존재나 괴물을 뜻하는 크리처(Creature)가 등장하는 크리처물로 볼 수 있다.
크리처물이 미국 등 서구권에서 인기 있는 장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흥행을 기대할 수도 있지만 사실 ‘지옥’은 크리처물로 분류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지옥사자의 존재가 드라마의 큰 축을 담당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들의 존재는 세상에 엄청난 혼란을 야기하는 촉매제 정도로만 활용되기 때문이다.
종교단체 새진리회가 이야기를 주도하지만 그렇다고 종교물은 아니고, 사이비 종교를 파헤치는 사회 고발 장르로 보기도 어렵다. 굳이 장르를 구분하자면 원작 웹툰 ‘지옥’처럼 스릴러로 보는 게 적합하지만 이 부분 역시 딱 떨어지진 않는다. 해외 매체들은 ‘지옥’을 다크 판타지 장르라고 표현했는데 이 표현 역시 모호하다.
결국 ‘연상호 월드’라는 게 가장 정확한 장르 구분이라는 게 연예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연상호 감독은 ‘돼지의 왕’ 등으로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알려진 뒤 영화 ‘부산행’을 내놓으며 주목 받았다. 이후 애니메이션 ‘서울행’, 영화 ‘염력’ ‘반도’ 등을 연출했다.
감독을 맡은 작품에선 대부분 각본도 직접 썼으며 드라마 ‘방법’과 이 드라마의 스핀오프 영화 ‘방법: 재차의’의 각본을 썼다. 그리고 드라마 ‘지옥’의 원작인 웹툰 ‘지옥’의 각본도 썼다. 연상호 감독이 연출을 맡거나 각본을 쓴 작품들이 독특한 연상호만의 세계관을 구축하면서 ‘연상호 월드’라는 말이 생겨났고, 이번 넷플릭스 K오리지널 ‘지옥’ 역시 연상호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전형적인 ‘연상호 월드’ 작품이다.
‘지옥’이 공개돼 엄청난 화제를 양산하고 있지만 반응이 다소 엇갈리긴 한다. 몰입감이 강하고 흥미진진하다는 반응이 있는가 하면 재미는 있지만 다소 지루하다는 상반된 반응도 있다. 영화 한 편 분량을 6회 분량의 드라마로 억지로 늘려 놓은 것 같다는 반응이 있는가 하면 웹툰 ‘지옥’을 다 담아내기에 6회는 분량이 다소 짧다는 상반된 반응도 있다.
이에 대해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이런 상반된 반응의 주된 원인은 ‘연상호 월드’에 빠져드는 데 개인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며 “연상호 감독이 구축한 ‘지옥’이라는 드라마 속 세계관에 빠져든 뒤에는 흥미진진하고 빠르게 전개된다고 느끼게 되지만 연상호 월드에 빠져드는 데 시간이 걸린 시청자들은 그 과정이 지루하게 여겨졌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지옥’에는 유아인, 김현주, 양익준, 박정민, 원진아 등 검증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데 연상호 감독은 주연 출연진을 드라마 전반부와 후반부에 나눠서 활용해 각각의 배우가 보여주는 캐릭터 하나하나에 시청자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했다. 스타급 출연진이 너무 많이 출연해 이야기의 흐름을 방만하게 만드는 우를 범하지 않은 것.
‘지옥’의 성공으로 연상호 월드가 글로벌 시장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음이 입증됐다. 이는 그 가능성을 미리 읽은 넷플릭스의 투자 결정에 따른 것으로 ‘오징어 게임’ 때와 마찬가지로 ‘지옥’ 글로벌 흥행의 열매도 모두 넷플릭스의 몫이 된다.
사실 연상호 월드의 글로벌 성공 가능성은 어느 정도 이미 예고돼 있었다. 정통 크리처물인 영화 ‘부산행’이 해외에서도 크게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그 가능성을 보고 대대적인 투자를 한 곳이 넷플릭스였다. 국내 OTT 업체들은 그러지 못했다.
최근 CNN은 ‘지옥은 새로운 오징어 게임이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최신 한국 드라마 ‘지옥’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며 “올해 한국 드라마들은 끝내준다”고 호평했다. 그렇지만 이 역시 정확히는 ‘한국 드라마’가 아닌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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