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권력과 차별화할 경우 내부 원심력 확대…송영길 등 운동권 리스크도 대권 행보 걸림돌
이 과정에서 이 후보 장점인 직진 본능이 유감없이 발휘되지만, 당 내부에선 ‘짜임새 없는 선거대책위원회는 2007년 대선 이후 처음’이라는 말도 나온다. 특히 이재명 후보 위에는 청와대가 버티고 아래에는 차차기를 노리는 운동권 그룹이 진을 치고 있다. 이 후보로선 이중고에 둘러싸인 셈이다.
“진짜 문제는 시선 돌리기를 할 인물도, 전략도 없다는 것이다.” 여권 한 관계자 말이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선 후보 양옆으로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과 이준석 대표가 포진했다. 원톱인 김종인 위원장 휘하엔 김병준 상임선거대책위원장과 김한길 새시대준비위원장 등 ‘3김 선대위’가 있다. 김한길 위원장은 12월 7일 첫 선대위 회의에 불참했다. 참석한 김종인·김병준 위원장은 서로 말을 섞지 않았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국민의힘도 원팀이 균열됐다”는 우려도 나오지만, 이들의 불안한 동거가 되레 ‘시선 분산 효과’를 준다는 분석도 있다. ‘윤적윤(윤석열의 적은 윤석열)’이라는 신조어처럼 후보 리스크가 클 땐 내부 갈등이 되레 후보 약점을 가리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여권은 정반대다. ‘이재명 이름 석 자’만 보인다. 이재명 선대위 원톱은 이재명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송영길 민주당 대표도 시선 돌리기는커녕 특유의 침묵과 존재감 미비로 ‘이재명 원톱’만 두드러진다. 여권 내부에서 문 대통령과 송 대표가 ‘대선 후보 리스크’만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윤적윤에 버금가는 ‘이적이(이재명의 적은 이재명)’가 존재한 상황에서 이 후보 개인기에 의존하다 보니, 메시지 전달에 연일 적색 경고등만 켜진다. 이 후보가 12월 3일 ‘매타버스(매주 타는 민생버스)’ 일정으로 전북 전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존경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고 말한 게 대표적이다. 이 후보는 청년들과 ‘쓴소리 경청, 나 떨고 있니?’라는 주제로 토크콘서트를 하는 과정에서 “우리 ‘존경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께서도 대통령 하다 힘드실 때 대구 서문시장을 갔다는 거 아닌가”라고 말해 논란에 휩싸였다.
정치권에선 “중도 표심을 의식한 전략적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왔지만, 반이재명 그룹에선 “이 후보 특유의 매표성 발언이 나온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가 역력했다. 다음 날(12월 4일) 전북 군산 공설시장을 방문한 이 후보는 즉석연설에서 “제 출신이 비천하다. (그래서) 주변에 뒤지면 더러운 게 많이 나온다”고 했다. 형수 욕설과 조카 살인사건 변론 논란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됐다. 이양수 국민의힘 선대위 수석대변인은 “지나친 자기 비하로 국민의 눈물샘을 자극,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얄팍한 수”라고 했다.
‘문재인·이재명’ ‘이재명·송영길’ 등의 여권 권력조합 엇박자도 문제다. 임기 말 역대급 지지도인 문재인 대통령 존재는 이 후보 방패막이다. 역대 대선에서 반복된 대통령 탈당 사태가 불거질 개연성은 지극히 낮다. 현재 여권 권력관계에선 이 후보가 문 대통령을 내치는 이른바 ‘미래권력발 살생부’가 발발할 가능성이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후보의 딜레마는 ‘강력한 현재권력’과 ‘흔들리는 미래권력’의 충돌에서 불거진 문제 중 하나다. 앞서 언급한대로 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는 이 후보의 대선 후보 지지도를 웃돈다. 이 후보가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를 시도할 때마다 집토끼(지지층)가 분열된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문(비문재인)인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에 대해 “정말 고민스러운 지점”이라며 “솔직히 엄청 부담스럽다”고 했다.
현재권력과의 차별화에 따른 내부 분열은 여당의 아킬레스건이다. 대선 국면에서 이 후보가 차별화할 때마다 여권의 금기어인 ‘조국’과 ‘부동산’이 튀어나왔다. 앞서 이 후보가 조국 사태에 관해 “할 수 있는 아주 낮은 자세로 진지하게 사과드린다”고 하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즉각 “인간 존엄을 짓밟는 것”이라며 “참 무섭다”고 직격했다. 이 후보와 추 전 장관은 민주당 대선 경선 내내 ‘명추(이재명·추미애)’ 연대로 묶인 관계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추 전 장관은 민주당 대선 경선 이후에도 명추 연대 기조를 유지했다. 친문 성역인 조국을 건들자, 공고하던 명추 연대마저 균열된 셈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대변인을 맡았던 고민정 민주당 의원은 최근 “조국 강에 빠져 죽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며 당내 일부를 비토했다. 비대세론 주자가 현재권력과 차별화할수록 ‘내부 분열의 원심력’만 커지는 단적인 사례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차별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라면서도 일각에선 불편한 기색도 역력하다.
‘송영길 리스크’도 암초다.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 핵심인 송 대표는 지난 5월 당 대표 취임 이후 줄곧 당 안팎으로부터 ‘자기 정치’를 한다는 비판에 휩싸였다. 당 일각에선 “후보 리스크를 줄이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근 불거진 ‘조동연 영입 사고’도 이 중 하나다.
송 대표는 조동연 전 상임선대위원장을 선대위 1호 영입 인사로 추천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전 위원장은 송 대표의 동생 송경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인공지능기반정책관과 김윤이 뉴로어소시에이츠 대표 등 16명과 함께 ‘빅 빅처 2017-4차 산업혁명과 고립주의의 역설’을 출간했다. 애초 송 대표의 영입 1순위는 김슬아 마켓컬리 대표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조 전 위원장과 만남 후 영입 방향을 틀었다고 한다.
민주당 수도권 한 의원은 “현미경 검증 없이 밀어붙이면서 사달이 난 것”이라며 “맞는다고 생각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추진하는 게 송영길 리스크”라고 했다. 이 후보가 속전속결로 조동연 사퇴안을 처리한 것도 당의 검증 부실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당 내부에선 “송 대표가 0선인 이 후보를 메워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재명 선대위의 승부수인 매타버스를 둘러싸고도 잡음은 흘러나왔다. 이 후보와 송 대표는 매타버스 일정에서 일종의 ‘역할분담’을 했다. 이 후보가 메타버스를 타고 특정 지역 민심 투어에 나서면, 송 대표가 시도당과 지역위원회 등을 찾아 조직표를 관리하는 식이다. 이 후보는 매타버스의 선행 작업을, 송 대표는 후행 작업을 각각 맡았다. 조직 관리를 맡은 송 대표는 대선 후보급 이상으로 바닥 지역을 훑었다. 이를 본 당 한 의원은 “누가 주연인지 헷갈릴 정도”라고 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함께하는 TV토론 배틀 ‘송이(송영길 이준석 대첩)’를 놓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당 내부에선 “잠행 중인 이낙연(NY) 전 대표의 지지를 끌어내야지, 자기 홍보에 치중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송 대표는 민주당의 유력한 차차기 대선 주자로 꼽힌다. 당 대표 재선 도전에 나설 것이란 예상도 있다. 그만큼 송 대표의 단독플레이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뜻이다.
여의도 한 인사는 이를 ‘독으로 전락한 86그룹의 딜레마’라고 했다. 86그룹은 2000년 총선 직전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새 피 수혈론에 힘입어 정치권에 입문한 이후 권력과 기생하는 이른바 ‘숙주 정치’를 했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그로부터 20년 후 86그룹은 기성 정치권의 대표적 청산 대상이 됐다.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이 후보의 인재풀이 협소하다 보니, ‘86그룹 기용→세대교체 무산’ 등의 악순환이 반복됐다는 비판은 끊이지 않았다.
‘86그룹’은 이재명 선대위 곳곳에 포진해 있다. 열린민주당과 당대당 통합 협상을 맡은 우상호 의원은 선대위 공동 총괄본부장이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4기 의장인 송갑석 의원은 전략기획본부 수석본부장, 김영진 의원은 총괄상황실장, 기동민 의원은 홍보소통본부장, 이해식 의원은 배우자실장을 각각 맡았다. 윤호중 원내대표와 김성환 원내수석부대표, 박완주 정책위의장은 송영길호 핵심 당직자다.
86그룹 핵심인 임종석 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장은 서울 종로 보궐선거 출마자로, 전대협 1기 의장인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차기 대선 주자로 각각 거론된다. 운동권 세대의 퇴조 기조 속에서도 민주당은 ‘이재명 선대위부터 당대표 비서실’까지 86그룹을 요직에 포진시킨 셈이다.
윤지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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